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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모순과 집착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삽니다. 나의 지향과 삶의 방향이 서로 엇갈리며 부끄러운 삶을 삽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 모순투성이인 나의 모습에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모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물질적 풍요를 부러워합니다. 여태껏 살아온 삶이 그러하고, 앞으로의 삶도 그러할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생을 물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지만, 문득 다가오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갖고 싶은 게 많다기보다는 놓치지 않고 싶은 게 많습니다. 물욕은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머릿속은 온갖 집착입니다.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집착임을 알고 있지만, 살면서 오히려 집착이 늘어납니다. 집착 중에서도 제일 괴로운 집착은 자식에 대한 집착입니다. 떼어낼 수 없는 집착에 삶의 무게가 짙어집니다. 어쩌면 물욕의 근원에서도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집착과 사랑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여, 자유를 잃습니다.   나이 들면서 집착은 고집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것, 믿는 것이 유일한 가치인 양 생각하여 머리가 굳어갑니다. 유연성이 사라진 사고가 남을 가볍게 평가합니다. 젊은 사람의 행동을 퇴폐라고 진단하고 욕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세상을 몰래 엿보기도 합니다. 사고와 감정이 모순됩니다. 내가 내린 평가가 오히려 한없이 가볍습니다.   ‘요즘 것들은’이라고 쉽게 평가하면서도, 나의 과거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가벼운 음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어느새 내 발은 박자를 맞추고 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기도 합니다. 젊은이의 옷차림을 비난하면서도 그런 모습을 힐끔거리며 쳐다봅니다. 젊음을 부러워하면서도 욕하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제일 심한 모순은 정치를 보면서 일어납니다. 정치가를 욕하고, 정치의 타락과 권력의 타락을 비난하지만, 권력에 기대고 맙니다. 나에게 돌아올 혜택을 반기고, 나에게 발생할 불이익에 화를 냅니다. 정치에 대한 기준이 나에게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부끄럽기도 합니다. 욕하면서 욕심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순 속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 속에 가득한 모순을 덜어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철학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삶이 바빠서 철학에서 멀어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철학에서 멀어져서 삶이 바쁜 것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철학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나를 붙잡아주는 책이나 사상은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요즘 다양한 책을 보고, 다양한 강의를 듣습니다. 논어나 맹자, 도덕경이나 장자, 법화경이나 금강경, 요한복음 등 고전을 읽고, 또 읽습니다. 좋은 강의도 영상매체 속에 한가득 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삶의 지혜가 수천 년간 이어져 오고 있음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곧바로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립니다.   살고 싶은 삶과 살고 있는 삶의 모순이 참으로 큽니다. 모순으로 가득한 삶을 살기에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습니다. 식은땀을 한바탕 흘리고 나니 정신이 아득합니다. 아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남은 날을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모순과 집착은 불안의 원인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모순 집착 타락과 권력 금강경 요한복음 물질적 풍요

2025-04-2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방패와 창, 짧지만 길게 산다

나를 지키는 힘은 내게서 나온다. 타인이 막아주지 못한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는 병기다. 방패를 가지면 심리적으로 안정돼서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만든다. 살면서 항상 기댈 수 있는 방패가 돼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창은 인류 역사 초창기부터 사냥용으로 쓴 무기다. 길다란 장대 끝을 뾰족하게 만들거나 칼날을 달아 찌르고 베고 던져 사냥을 했다. 역사학자들은 인간은 수십만 혹은 수만년 전부터 가는 곳마다 대형 포유류를 멸종시켜 왔는데 그 원동력은 창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확실하게 먹이사슬 최정상에 올라선 시점은 창을 쓴 후부터라는 설명이다.     초나라 ‘무기 장사꾼’이 “이 방패는 아무리 날카로운 창도 막을 수 있는 대단한 물건 입죠. 요즘 같은 ‘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방패고 이 창은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천하제일 창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정말 훌륭한 창과 방패구려. 근데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라고 물었다. 장사꾼은 판을 거두고 줄행랑을 친다.     모순(矛盾)은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형용 모순(形容 矛盾, Oxymoron)은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키는 수사법이다. 그리스어로 ‘Oxy’는 날카로운(Sharp), 예리한(Keen)을 의미하고 ‘Moran’ 은 바보(fool)로 ‘똑똑한 바보’란 뜻이다. 아들녀석이 내 별명을 ‘모란’이라 불러 뜻을 찾아봤더니 저능아였다. 틴에이저 둘 건사하며 제정신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몇 있을까.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달콤한 슬픔’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이순신 장군의 명언)처럼 상반된 어휘의 배열은 의미를 증폭시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갈라치기와 흑백이론, 금수저와 흙수저. 무한 경쟁과 성공 강박, 목숨 건 당파싸움, 한 쪽이 패망해야 다른 한 쪽이 살아남는 처절한 생존 경쟁,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전인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넣는다는 뜻으로 자기 이익만 챙기고 유리한 방향으로 궤변을 늘어놓는 처사를 일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창과 방패는 양날의 검이다. 진검승부는 패하면 생명을 잃을 정도로 명예와 권위를 다투는 대승부다. 사익과 말바꾸기, 거짓과 모함으로 언론을 도배질하는 추태를 보는 국민은 피곤하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이 바닥을 헤매는 서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허기진 몸을 방패 삼아 하루를 버티고,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등 굽은 백발 할머니의 두 손은 찌그러진 생의 병기다.       상식(Common Sence)을 고수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일반적인 지식과 이해력, 판단력으로 분별하고, 자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 상식이 된 사회,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진보적이며 역사를 부정하지 않고, 모순에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주견의 함몰되지 않고 치열하고 담담하게 살면 사상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매일 반전을 꿈꾼다. 어제 보다 다른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반전의 기회는 늘 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역사는 반복과 반전을 통해 발전한다.     꿈꾸는 사람,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능가하는 인생의 성공은 없다. 방패와 창을 버리고 사랑과 화합의 꽃이 만발하는 세상이 오면 그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세월의 파도 속에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세상의 끝이 안 보여도, 남은 시간을 아껴 쓰면 인생이 길어진다. 짧지만 길게 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방패 형용 모순 무기 장사꾼 역사가 그것

2023-10-10

[문화 산책] ‘천천히 서두르라’

작은 거인, 침묵의 소리, 뜨거운 얼음… 이런 표현을 ‘형용모순(Oxymoron)’이라고 부른다.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나 이미지를 빚어내는 수사법이다. 모순 어법 또는 역설적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옥시모론이란 낱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날카로운 예리한 저능아, 즉 ‘똑똑한 바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 자체에 이미 모순이 드러나 있다.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형용모순은 우리 생활에서 뜻밖에 많이 쓰이고 있다. 문학 작품에도 즐겨 등장한다. 예를 들면 빛나는 어둠, 눈 뜬 장님, 산송장,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을 듣는 이등 많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나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는 말도 모순 어법이다.   정치판에 형용모순이 등장하면 위험하다. 보수적 진보, 진보적 보수 따위의 말장난은 속임수다.   종교에서도 형용모순은 널리 쓰인다. 일상에 대한 각성의 장치다. 도를 도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다. 부처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고 부처가 없으면 더 냉큼 지나가라. 가난하고 비통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형용모순은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히 모순되고 부조리해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진실을 담고 있는 진술로, 일반적인 상식이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과 사고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내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라는 말도 형용모순이다. 라틴어 명언인데,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널리 영향을 미친 가르침이라고 한다. 의미가 참 깊고 슬기로운 가르침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가르침인데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젊은 시절부터 좌우명으로 삼아온 “게으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라는 말과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기둥으로 삼으면 내 삶도 한결 든든해질 것 같다. 여기에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을 더하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송구스럽지만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지나치게 서두르는 바람에 망친 일이 너무도 많아 후회스럽다. 인생살이에서도 그랬고, 연극이나 글쓰기 같은 작업에서도 그랬다.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면, ‘순발력과 지구력의 조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날에는 패기와 번뜩이는 순발력에 기대어 살 수 있지만 나이 들면 점점 어려워진다. 생각도 행동도 걸음도 느려진다. 그러니 끈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매사에 진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하지만 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쉬엄쉬엄 차근차근 걷다 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서둘러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빨리 가야할 필요도 없다.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뭐가 그리 급한지 요리조리 추월해가며 위험 운전하는 차를 자주 본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해도 그다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같지도 않다. 서두르더라도 천천히 서두르는 것이 슬기롭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모순 어법 보수적 진보 고대 그리스어

2022-03-23

[문화 산책] ‘천천히 서두르라’

작은 거인, 침묵의 소리, 뜨거운 얼음… 이런 표현을 ‘형용모순(Oxymoron)’이라고 부른다.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나 이미지를 빚어내는 수사법이다. 모순 어법 또는 역설적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옥시모론이란 낱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날카로운 예리한 저능아, 즉 ‘똑똑한 바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 자체에 이미 모순이 드러나 있다.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형용모순은 우리 생활에서 뜻밖에 많이 쓰이고 있다. 문학 작품에도 즐겨 등장한다. 예를 들면 빛나는 어둠, 눈 뜬 장님, 산송장,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을 듣는 이, 찬란한 슬픔, 달콤한 슬픔, 쾌락의 고통, 차가운 아름다움, 달콤한 이별, 강철로 된 무지개, 젊은 현자, 위대한 절망, 상처뿐인 영광, 조용한 시위, 네모난 동그라미 등 많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나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는 말도 모순 어법이다.   정치판에 형용모순이 등장하면 위험하다. 보수적 진보, 진보적 보수 따위의 말장난은 속임수다. 하긴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80년 광주를 상징하는 ‘시민군’이라는 말은 어떤가? 시민과 군인?   종교에서도 형용모순은 널리 쓰인다. 일상에 대한 각성의 장치다. 도를 도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다. 부처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고 부처가 없으면 더 냉큼 지나가라. 가난하고 비통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형용모순은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히 모순되고 부조리해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진실을 담고 있는 진술로, 일반적인 상식이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과 사고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내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라는 말도 형용모순이다. 라틴어 명언인데,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널리 영향을 미친 가르침이라고 한다. 의미가 참 깊고 슬기로운 가르침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가르침인데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젊은 시절부터 좌우명으로 삼아온 “게으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라는 말과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기둥으로 삼으면 내 삶도 한결 든든해질 것 같다. 여기에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을 더하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송구스럽지만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지나치게 서두르는 바람에 망친 일이 너무도 많아 후회스럽다. 인생살이에서도 그랬고, 연극이나 글쓰기 같은 작업에서도 그랬다. 예를 들어 급하게 책을 내놓고는 늘 후회막급이었다. 성급하게 서둘러서 제대로 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 매서 쓸 수는 없다”는 옛 말씀이 꼭 맞다.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면, ‘순발력과 지구력의 조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날에는 패기와 번뜩이는 순발력에 기대어 살 수 있지만 나이 들면 점점 어려워진다. 생각도 행동도 걸음도 느려진다. 그러니 끈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매사에 진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하지만 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쉬엄쉬엄 차근차근 걷다 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서둘러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빨리 가야할 필요도 없다.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뭐가 그리 급한지 요리조리 추월해가며 위험 운전하는 차를 자주 본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해도 그다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같지도 않다. 서두르더라도 천천히 서두르는 것이 슬기롭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모순 어법 보수적 진보 고대 그리스어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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