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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조용한 천재

‘채식주의자’를 내가 처음 읽은 것은 2016년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은 직후였다. 이 책은 한마디로 나를 깊은 충격에 빠뜨렸다. 작품의 소재, 아이디어 착상과 매듭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스토리 전개, 색다른 구성의 3부작 연작소설, 이 모두가 나를 흥분과 설렘의 장으로 몰고 갔었다. 이 책 내용을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당장에라도 독후감을 쓸 수 있을 정도다. 그 후 ‘희랍어 시간’, ‘흰’,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작가의 책을 거의 구입해 읽었지만 역시 나의 관심사는 정치나 이념이 아닌 ‘인간’이기에 이 책은 나를 많이 흔든 작품이다.     문학이 예술의 한 장르이면서도 ‘문학과 예술’이라고 사람들은 둘을 구분해서 말한다. 왜 그럴까. 보통 예술 즉 음악, 미술, 무용은 시공간 예술로 누구나 직접 보고 들으면서 가슴으로 느낀다. 그러나 문학은 다르다. 작가가 쓴 작품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번역되어야만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을 꼭 읽고 독후감을 쓰고 있다.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 선정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시적 산문’이라고 밝혔다. 호사다마라 하였던가. 항간에서는(한국 사람들이) 이 책을 너무 외설스럽고 청소년에게 해가 되는 불량 책으로 받아들여 한림원 앞에서 이 상을 취하해 달라고 시위했다 한다. 통탄할 일이다.     천재는 보통 동시대인에게 외면당한다. 천재는 범인이 보지 못하는 그 이상을 본다. 창조는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다.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정독했다. 작가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독자로서, 또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 선배 작가의 재능을 열린 눈과 마음으로 행과 연을 정성 들여 읽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영혜이지만 영혜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관찰될 뿐이다. 1부에서는 남편, 2부에서는 형부, 그리고 3부에서는 언니가 화자이다. 1부에서 평소 조용하고 평범한 영혜는 어느 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이유는 “꿈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꿈은 추상적이면서도 점차 구체적인 트라우마의 실체를 드러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잔인함과 가부장적인 폭력은 그녀의 명치 끝에 걸려 그녀에게 평생 고통을 준다. 결국 그녀는 채식을 선언한다. 2부에서 형부는 현대 예술을 하는 비디오 작가이다. 성실하고 생활력이 강한 아내를 둔 그는 최근 2년 동안 별다른 작품을 창작하지 못해 매일매일 방황하던 중에 우연히 아내로부터 처제에게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말을 듣게 되고 이 사실은 그에게 큰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를 알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열정이 창조해 낼 작품만을 위해 파멸의 길을 재촉한다.     채식주의자이며 식물 세계를 갈망하던 영혜는 자신이 스스로 식물 세계의 정점인 꽃이 된다는 환영에 들떠 몸과 마음을 슬며시 열기 시작한다. 밝은 연둣빛으로 남아있는 몽고반점을 중심으로 번져나간 가지들, 잎새들, 그리고 화려한 꽃잎들로 보디 페인팅을 한 후 형부에게도 꽃이 되어주기를 주문하며 그 후 꽃들은 교합을 이룬다. 이 둘의 파괴적인 열정에 부딪혀 태어난 예술작품의 결실로 영혜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형부는 폐인이 된다. 3부에서는 풍광 좋은 숲속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영혜는 날마다 먹기를 거부하며 마른나무가 되어간다.     비 오는 어느 날 그녀는 숲속에서 실종된다. 오랜 수색 작업 후 그녀는 땅에 물구나무서기로 머리를 박고 양 손바닥을 땅에 심은 뒤 가랑이를 벌리고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포식 동물과 달리 햇빛만 받으면 살아갈 수 있는 나무가 부러웠던 영혜는 서서히 나무로 변해가고 있었다.     연작소설의 의미가 암시하듯 1부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선언하고 2부에서는 식물 세계의 정점인 꽃이 되었다가 3부에서는 결국 순한 나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선택한 영혜를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 작가는 언니인 인혜가 지켜보고 겪어가는 삶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고 또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인간의 멍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천재 식물 세계 보통 예술 시공간 예술

2024-12-02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순간은 영원하다. 영원 속에 묻혀 사라진다. 그 때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 시공간 또는 지점이다.     키르케고르는 순간을 일체의 과거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을 갖지 않는 현재적인 것 영원과 시간이 서로 접촉하는 이의적(二義的)인 것으로 파악한다.     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의 ‘카이로스’는 ‘기회(찬스)를 의미하는 남자신의 이름이다. 카이로스신은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가 벗겨진 미소년인데 앞머리 밖에 없는 것은 좋은 기회는 빨리 포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왁자지끌 성대했던 행사 마치고 서둘러 밤 비행기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영원한 집두꺼비다. 못난 얼굴로 천천히 내멋대로 돌아다녀도 기죽고 밟힐 일 없고, 눈치 안 보고 소신껏(?) 살 수 있는 내 집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     언제부터인가 타인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시간이 살아 온 시간보다 적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며 살기로 한다. 타인의 방에 세 들어 살듯 부대끼지 않고 숙연하게 홀로 사는 방법을 깨우친다.   집 비운 사이 병풍을 두른 듯 아름드리 선 나무들이 하나 둘 가을옷을 입기 시작한다. 물이 마른 연못에서 갈대 서걱이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온다. 오리들은 어디서 물놀이를 하나. 무리 지어 아름답던 코스모스는 모가지를 꺾고 까맣게 익은 씨앗을 머리에 이고 봄을 기다린다. 몇 주 전에 뿌린 월동춘재, 청두무, 적색갓, 뿌리배추, 엇갈이 등 가을 채소는 며칠 못 본 사이 손바닥만큼 자랐다.     세월이 시계바늘 멈추고 천지가 얼어붙는 계절의 끝을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자연 속에 티끌만한 존재로 태어나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얼마나 바둥대며 살았던가.     꽃이 피는 때와 꽃이 지는 시간이 있다. 정상에 올라 성취감에 젖어 욕망과 교만에 심취돼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며 빛나고 화려한 잔치판을 벌리곤 했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갈구하는 영혼의 풍금소리를 바람에 날려보내고, 귀에 익은 친근한 목소리, 명징한 언어들이 내뿜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아갈 때가 있으면 물러설 때가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생을 담금질하는 때가 있으면 묶인 손과 발의 족쇄를 풀고 퇴진하는 시간이 온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멈춤과 후퇴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이고 반전이다.     정역용은 신유박해에 연류되어 유배생활을 하며 세속의 번거로움에서 벋어나 인공폭포수와 연못을 만들고 채소를 가꾸며 은자의 생활을 즐겼다. 제자를 가르치며 학문에 전념, 목민심서 경세유포 등의 명저를 담은 ‘어유당전서’ 500여권을 저술한다.     세한도(歲寒圖)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귀양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의 제목은 논어 자한편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에서 따왔다.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유배생활이든 귀향살이든 세속과의 번거로운 인연을 끊고 산다는 것은 새로운 모색과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홀로 지낸다는 것은 궁상맞은 외로움이 아니라 스스로를 추스리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다. 버리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순간이던 영원이던, 지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인가를 지독하게 꿈꾼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행복 아닌가.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시간 시공간 소나무 측백나무 제주도 귀양시절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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