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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오늘 4·29 폭동, 한인 사회를 바꾼 그날의 기억

  ━   LA폭동 의미 새기고 행동해야 한인사회 성장     고 민병수 변호사 아내 캐롤 민 여사 회고 많은 한인 상점이 약탈당할 때 그날 경찰 어디 있었는지 의문 한인사회 폭동 상처 딛고 성장 젊은 세대 협력 분위기 강해져   33년 전 오늘, LA시를 휩쓴 폭동은 한인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수많은 한인 상점이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보호를 요청하는 한인들의 외침에도 경찰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인들은 고립된 채 홀로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단, 절망 속에서도 한인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LA폭동은 오히려 한인 사회의 단결과 성장을 이끌어낸 전환점이 됐다. 4·29 폭동 33주년을 맞아 당시 한인 사회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던 고 민병수 변호사의 아내, 캐롤 민 여사를 만나 그날의 기억과 이후 변화한 한인 사회의 모습을 들어봤다.   지난 1992년 4월 29일, 민 여사는 TV 뉴스를 통해 폭동 소식을 처음 접했다. 당시 그는 한인타운에서 약 3마일 떨어진 파크 라브레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긴박한 뉴스를 본 민 여사는 곧장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한인타운 쪽을 바라봤다.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민 여사는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며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폭동이 더 큰 규모로 번지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덧붙였다.   민 여사는 남편 민 변호사와 함께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인 사회의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민 변호사는 즉시 11명의 변호사와 함께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 산하에 법률 지원 조직을 결성하고 절도, 화재, 파손 등 각종 피해를 본 한인 업주들을 지원했다.   민 여사는 “당시 많은 한인 업주가 가게가 불타거나 약탈당하는 상황에서도 경찰을 기다렸지만, 끝내 그들은 오지 않았다”며 “지금도 경찰들이 그날 어디에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폭동 당시 민 변호사는 집에 머무는 날보다 한인 사회 복구를 위해 밖을 뛰어다니는 날이 더 많았다.   민 여사는 “남편이 집에 온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며 “동료 변호사들과 피해 복구 방안을 논의하고, 직접 피해 현장을 발로 뛰며 꼼꼼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민 여사는 늘 일에 매달리던 민 변호사가 자녀들에게 미안해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늘 바쁘다 보니 두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아이 중 한 명은 ‘아빠가 나랑 시간을 더 보내주면 좋겠는데, 또 일하러 가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민 여사 부부는 한인들이 무고한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주류 언론이 한인 사회를 폭동 발발의 원인처럼 몰아간 현실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민 여사는 “한인 사회는 폭동의 원인도, 문제의 당사자도 아니었는데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며 “한인 사회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한인타운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흑인 사회가 자신들의 분노를 아무 관련 없는 한인들에게 폭력으로 표출한 것은 비합리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참혹했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민 여사는 4·29 폭동이 한인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는 “폭동 이후 한인들이 한인타운을 떠나면서 구심점은 약해졌지만, 한인 사회의 정치력과 경제력은 눈부시게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인 출신 판사,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이 늘어난 것은 한인 사회 전체에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 여사는 차세대 한인들의 협력과 연대 의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과거에는 분열과 이권 다툼이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가 서로 돕고 협력하려는 분위기가 훨씬 강해졌다”며 “한인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LA폭동의 의미와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민 여사는 “LA폭동은 한인 사회가 상처를 딛고 성장한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역사”라며 “한인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LA폭동은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폭동 아픔 한인 사회 사회 상처 한인 업주들

2025-04-28

“산불로 인한 고국의 아픔, 달라스 한인사회가 함께 합시다”

 달라스 한인회(회장 김성한, 이하 한인회)가 최근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한국의 산불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기 위해 모금 운동에 나선다. 한인회는 김성한 회장, 황철현 이사장, 그리고 이사 및 임원진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4월4일(금)부터 5월1일(목)까지 약 한달간 모금 운동에 나선다고 밝히고, 달라스 한인사회의 동참을 호소했다. 김성한 회장은 “최근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깊은 절망과 고통 속에 놓였다”며 “이 가슴 아픈 재난 앞에서, 달라스 한인회는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며 진심 어린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집과 생계를 잃고 삶의 기반이 무너진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며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와 나눔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것을”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한 회장은 “달라스 한인회는 조국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피해 복구를 지원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비록 저희의 힘이 미약할지라도, 그 마음만큼은 절대 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금이야 말로 우리 동포 사회가 한마음으로 뭉쳐야 할 때”라며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복구되고, 피해를 입은 분들이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의 정성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한인회는 앞서 무안공항 사고 유가족을 위한 성금을 전남미래교육재단을 통해 직접 전달한 바 있다. 한인회는 앞으로도 조국과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한 지원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한 회장은 “모국과 달라스 동포 사회가 하나 되어 이 시련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이 더욱 강하고 따뜻한 나라로 다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성금 모금 기간은 4월4일(금)부터 5월1일(목)까지다. 참여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인회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수표(체크)나 크레딧카드로 성금을 내는 것이다. 한인회 사무실 주소는 11500 N Stemmons Fwy, #160 Dallas, TX 75229로, 로얄레인 한인타운에 위치해 있다. 한인회 사무실 방문이 어려울 경우 우편으로 체크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수취인(Payable To)을 Korean Society of Dallas로 해서 체크를 우편(주소 11500 N Stemmons Fwy, #160 Dallas, TX 75229)으로 발송하면 된다.                                                 〈토니 채 기자〉한인사회 달라스 달라스 한인사회 달라스 한인회 아픔 달라스

2025-04-04

해고 공무원 아픔 나누는 가톨릭…연방의사당서 정기 기도회

가톨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해고되거나 휴직 처분을 받은 연방 공무원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   크리스천 사회정의 단체인 '소저너스(Sojourners)'는 지난달 매주 수요일 정오에 연방 의사당에서 연방 정부의 대규모 해고와 지원금 삭감에 반대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전국교회협의회 회장인 바시티 매켄지 주교는 지난달 19일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해고되거나 혜택을 잃은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켄지 주교는 "우리 중 한 명이 공격을 받으면 우리 모두가 공격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도회에 참여한 신앙 공동체들에게 프로그램과 일자리 삭감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하라고 촉구했다.   첫 번째 기도회는 지난달 5일 재의 수요일에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일에는 두 배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 단체는 26일에 마지막 기도회를 열었다.   지난달 20일에는 워싱턴DC의 성 마태 사도 대성당에서 연방 공무원을 위한 미사가 열렸고, 100명 이상이 참석했다. 평일 미사 참석자 수의 3~4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미사를 집전한 W. 로널드 제임슨 주임신부는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임슨 주임신부는 희망의 해로 알려진 올해에 연방 공무원들에게 희망이 존재한다고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마태 사도가 공무원을 보호하는 성인이라며 "마태 사도는 공무원이었다. 세리였다"고 말했다.   제임슨 주임신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일요일마다 성당에서 해고된 신자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22년 경력의 국방부 직원인 저스틴 델 로사리오는 "사무실에서 대화가 위축되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게 뭐 있어?'라는 식으로"라고 말했다.   연방의사당 근처 성 페터 성당의 다니엘 카슨 신부는 "이런 일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카슨 신부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건 다들 동의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은 인격을  폄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연방 공무원은 240만 명에 이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중순까지 10만 명 이상의 연방 공무원을 해고했다. 안유회 객원기자공무원 가톨릭 공무원 아픔 트럼프 행정부 미사 참석자

2025-03-31

[벽화로 남는 폭동의 기억] 사라진 4·29…타운 기념행사 전무

4·29 LA폭동 31주년을 맞은 오늘(29일), 정치권과 한흑사회가 잠잠하다. 지난해에는 30주년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열었지만, 올해는 이를 알리는 기념행사조차 갖지 않고 있다.     본지 조사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일부 주류 방송을 통해 LA폭동일을 알리는 보도가 가끔 나오고 있지만 한인 커뮤니티가 입은 피해 내용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사건의 원인으로 한흑갈등을 조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정치권 역시 별다른 언급 없이 이날을 보내고 있다. LA시장실에 따르면 캐런 배스 시장은 오늘 오전 글로리아 그레이 잉글우드 시의원 취임식에 참석하고, 30일에는 웨스트 밸리 지역에서 열리는 커뮤니티 청소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전부다.     결국 30여년이 지났지만 LA폭동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던 정치권은 물론, 한흑사회가 가진 인식에는 여전히 커다란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인 커뮤니티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배스 LA시장이 한인 커뮤니티에 관련 행사가 있으면 초대해달라고 했지만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고 말해 아쉬움을 줬다.   다만 LA한인회는 이날 유일하게 한인타운의 한 레스토랑에서 흑인 커뮤니티 관계자들과 조용히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밝혔다.   LA한인회 제프 이 사무국장은 “한인타운에 흑인 대표 교회인 제일흑인감리교회FAME) 등 흑인 커뮤니티 대표 10여명을 초대해 지금까지의 관계를 조명하고 개선점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며 “서로 만나서 대화를 통해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페이스(FACE)의 임혜빈 회장은 “흑인 커뮤니티는 폭동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폭동이 발생하던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강도 등에 의해 사망한 한인 리커스토어 업주는 무려 25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사실을 아는 흑인들은 거의 없으며 주류사회에서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부터 제대로 된 LA폭동의 진실을 아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FACE의 경우 히스패닉 커뮤니티에서 진행하고 있는 LA폭동 관련 영화 및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폭동 당시 한인타운에서 거주하거나 일했던 라틴계 주민들의 증언과 한인 업주 등의 증언을 담을 예정이다.   한편 LA시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존 이 시의원(12지구)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LA폭동을 기리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의원은 “LA폭동은 우리에게 LA시민이 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나라에서 소수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해줬다. 그날의 사건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남아 있고, 상실감과 아쉬움의 일부가 한인사회에 오래 머물겠지만, 폭동에서 나온 좋은 점은 적어도 한 가지는 있다”며 한인 정치력 향상을 예로 들었다.     이어 “이 도시가 다시는 그런 종류의 폭력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내 부모님과 같은 사람들이 이웃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벽화 분노 아픔 한인 업주 잉글우드 지역

2023-04-2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아름답고 슬픈 만남을 위하여

아들이 집에 온다. 집 근처로 출장 오게 돼 잠시 들린단다.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린다. 달력에 동그라미 치며 기다렸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아들은 애들이 어리고 직항 비행기가 없어 한동안 다니러 오지 못했다. 대신 딸네 가족이 사는 뉴저지에서 온 가족이 뭉치거나 우리가 샌디에이고로 가서 상봉을 했다.     새 집 지어 이사온 뒤 첫 방문이라서 잘 보이려고(?) 부지런을 떤다. 닦은 바닥 또 닦고 귀한 손님 맞듯 깔끔을 떤다. 나이 들면 사는 게 허접해지기 쉽다. ‘노티나는 모습’ 보고 아들이 아파할까 봐 단도리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죽어서라도 아이들 가슴 속에 봄이면 피어나는 목숨줄 끈질긴 찔레꽃 향기로 남고 싶다.     회의 끝난 뒤 저녁에 들린다는데 ‘뭘 해주나’ ‘무슨 말을 하나’ 며칠 동안 혼자 싱글거리며 별의별 궁리를 한다. ‘저녁은 뭘로?’ 물었더니 어릴 적 좋아하던 식당에서 케리아웃 해서 먹는다나. 반 평생 가까이 살아도 미국은 타향, 동성로 따로국밥을 내가 그리워하듯 아들은 어릴 적 입에 밴 그리운 고향맛을 찿는다.   지금 출발한다는 문자 받고 황새처럼 목 길게 빼고 길목을 지켜본다. 기다림은 행복한 고통이다. 짜릿한 환희 속에 헤어질 시간의 아픔이 가슴을 짓누른다. 사는 날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설렘과 아픔, 그리움의 언덕을 헤매야 하나.     늦둥이로 태어나 개구쟁이로 철없던 막내가 우람한 체구로 와락 껴안는다. 내 품속을 파고들며 옹알이 하던 아들 품에 안긴다. 왠지 슬픔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둥지 떠난 파랑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름답고 슬픈 만남과 이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울보다. 좋아도 울고 슬퍼도 울고 기뻐도 눈물 흘린다. 떠나간 계절이 안스러워 눈물 찔끔거리고 잊지 않고 돌아오는 계절이 고마워 운다.     내 유년은 물안개 속에 아롱거린다. 내가 두 살 때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울보인 딸을 강인하기 키우려고 정성을 다했다. 당신 등에 지워진 생의 업보를 감당하는 것이 딸의 앞날을 무탈하고 행복하게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타작마당에 팔 다리 묶인 볏짚들은 마른 얼굴로 겨울을 맞는다. ‘훠어이 훠어이’ 타작이 끝난 마당에 삼만이 아재가 참새떼나 까치를 쫒는 시늉을 할 동안 가마솥 뚜껑에 배추전 무우전 부치는 옥이언니의 양볼은 복숭아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멍석에 떨어진 쌀은 그대로 두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추수할 곡식이 없는 가난한 아낙들은 앞치마에 낱알을 주어 담았다. 어머니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를 믿었다.     우리집 크고 둥근 밥상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배고픈 사람, 끼니가 없는 사람은 누구던 밥상에 낄 수 있었다. 저녁거리가 없는 사람은 굴뚝에 연기 나는 집 앞에 서성이면 끼니를 해결 할 수 있는 시절이였다.     만남은 짧고 이별의 기다림은 길다. 번개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재물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목숨 조차도 잠시 육신에 묶어둔 꽃잎이 아니던가.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내 몸에서 싹이 돋아 세상을 덮고도 남을 기쁨을 주는 내 아들아,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 환희고 슬픔이라 해도, 대대손손 꿋꿋이 자라 뿌리 내릴 그 땅에서 행복해라. 잘 살아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가을 추수가 아픔 그리움 아재가 참새떼

2023-02-28

[이 아침에] 외로워도 괜찮아요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가슴이 벅찬 적이 언제였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의 도가니에 온몸 적시며 심장이 힘차게 뛰던 적이 있었던가. 거북이 등처럼 말라버린 고목에 기대 소리죽여 흐느끼던 외로움은 무엇이었나.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기로 독하게 마음먹고도 또다시 사랑하는 바보 같은 날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안주 삼아 밤이 깊도록 논쟁을 벌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막걸리가 이조주촌의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서 떨어지면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를 외며 뿔뿔이 흩어졌다.     돌아가는 길, 비에 젖은 가로수에 걸린 달빛이 처량해도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밤안개에 앞이 안 보여도 날 밝으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비록 남루하고 잡히지 않는 환상이라 해도 희망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절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두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짓이다. 절망은 포기가 아니라 마침표다. 포기는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실존 철학에서 절망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달았을 때 모든 희망을 체념하는 정신 상태라고 설명한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바람 부는 날에는 뼈마디 마디마다 찬바람이 지나가고 눈 내리는 날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든다. 외로움은 슬픔처럼 생의 어느 순간도 스쳐 비껴가지 않는다. 참고 견디고 어루만지며 살아갈 뿐이다. 자식과 가족, 친구와 이웃이 있어도 외롭다. 군중 속에 있을 때도 외로움은 허무의 갈비뼈를 치고 달아난다.     나는 자기중심적 인간이다. 빌붙지 않고 청승 떨며 살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 사생활을 남에게 고자질하듯 나열하고 광고하는 것이 싫고, 타인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꿰고 있는 것을 거부한다.     잔칫상을 떠벌리게 차려도 좋아하는 몇 가지만 골라 먹는다. 사는데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다. 정예요원만 있으면 된다. 용건 없이 연락해 뜬금없이 ‘잘 지냈어’ ‘안 죽고 아직 살아있니?’라고 안부 묻는 친구 몇 명만 있으면 된다     나이 들어 할 일은 줄이고 없애고 덜어내고 버리는 일이다. 물건도 사람도 버리면 편해진다. 고통과 아픔, 외로움은 오롯이 내 몫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해 뜨는 풍경 바라보며 모닝커피 함께 마실 친구 있으면 외로움의 강 건널 수 있다.   외로워도 괜찮다. 낯선 길 모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람이 허리를 감아도 혼자가 아닌 나를 바라보며 내게 안부를 묻는다.     12월의 마지막 날 밤, 아무도 누더기 차림의 소녀 안나의 성냥을 사주지 않는다. 언 손을 녹이려고 성냥 하나를 켤 때마다 안 나가 꿈꾸던 따뜻한 난로, 화려한 만찬,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산다는 것은 환영을 보는 것인지 모른다. 지구를 불태울 용기도 사라지고 미친 사랑의 상흔 지울 수 없어도, 성냥개비 한 개로 가슴 따스하게 데울 수 있다면, 외로움은 후 불면 날아가 버릴 민들레 홀씨 아닐는지.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아픔 외로움 가족 친구 만찬 크리스마스트리

2023-01-15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외로워도 괜찮아요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가슴이 벅찬 적이 언제였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의 도가니에 온몸 적시며 심장이 힘차게 뛰던 적이 있었던가. 거북이 등처럼 말라버린 고목나무에 기대 소리 죽여 흐느끼던 외로움은 무엇이였나.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기로 독하게 맘 먹고도 또 다시 사랑하는 바보 같은 날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안주 삼아 밤이 깊도록 논쟁을 벌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막걸리가 이조주촌의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서 떨어지면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를 외며 뿔뿔이 흩어졌다.     돌아가는 길, 비에 젖은 가로수에 걸린 달빛이 처량해도 가슴은 뜨겁게 달아 올랐다. 밤안개에 앞이 안보여도 날 밝으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비록 남루하고 잡히지 않는 환상이라 해도 희망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였다.       절망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다. 두 손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짓이다. 절망은 포기가 아니라 마침표다. 포기는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실존 철학에서 절망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달았을 때 모든 희망을 체념하는 정신 상태라고 설명한다.     외롭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바람 부는 날에는 뼈마디 마디마다 찬바람이 지나가고 눈 내리는 날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 든다. 외로움은 슬픔처럼 생의 어느 순간도 스쳐 비껴가지 않는다. 참고 견디고 어루만지며 살아갈 뿐이다. 자식과 가족, 친구와 이웃이 있어도 외롭다. 군중 속에 있을 때도 외로움은 허무의 갈비뼈를 치고 달아난다.     나는 자기 중심적 인간이다. 빌붙지 않고 청승 떨며 살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 사생활을 남에게 고자질 하듯 나열하고 광고하는 것이 싫고, 타인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꿰고 있는 것을 거부한다.     잔칫상을 떠벌리게 차려도 좋아하는 몇가지만 골라먹는다. 사는데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다. 정예요원만 있으면 된다. 용건 없이 연락해 뜬금없이 ‘잘 지냈어’ ‘안 죽고 아직 살아있니?’라고 안부 묻는 친구 몇 명만 있으면 된다     나이 들어 할 일은 줄이고 없애고 덜어내고 버리는 일이다. 물건도 사람도 버리면 편해진다. 고통과 아픔, 외로움은 오롯이 내 몫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해 뜨는 풍경 바라보며 모닝커피 함께 마실 친구 있으면 외로움의 강 건널 수 있다.   외로워도 괜찮다. 낯선 길 모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람이 허리를 감아도 혼자가 아닌 나를 바라보며 내게 안부를 묻는다.     12월의 마지막 날 밤, 아무도 누더기 차림의 소녀 안나의 성냥을 사주지 않는다. 언 손을 녹이려고 성냥 하나를 켤 때마다 안나가 꿈꾸던 따뜻한 난로, 화려한 만찬,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 앞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산다는 것은 환영을 보는 것인지 모른다. 지구를 불태울 용기도 사라지고 미친 사랑의 상흔 지울 수 없어도, 성냥개비 한 개로 가슴 따스하게 데울 수 있다면, 외로움은 후 불면 날아가 버릴 민들레 홀씨 아닐런지.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아픔 외로움 가족 친구 만찬 크리스마스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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