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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솔베이그의 사랑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기브 앤 테이크’의 계산적인 사랑이 있는가 하면 상대에게 무조건 주기만 하는 조건 없는 사랑도 있다. 예술 작품에서 순애보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포장되곤 한다. 이런 경우 성 역할은 정해져 있는데, 대개 주는 쪽은 여자고, 받는 쪽은 남자다.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에 나오는 솔베이그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이다. 솔베이그는 순애보적인 사랑의 표상과 같은 여인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페르 귄트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리그가 연극 ‘페르 귄트’의 공연을 위해 작곡한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솔베이그는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와도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다릴 것이라고 노래한다.   페르 귄트는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솔베이그는 까맣게 잊고 온갖 허황된 꿈을 찾아 이리 저리 돌아다닌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덧 노인이 된다. 늙은 페르 귄트는 그 동안에 번 재물을 배에 하나 가득 싣고 귀국길에 오른다. 하지만 도중에 폭풍을 만나 재물을 가득 실은 배가 침몰하고 만다. 다시 무일푼이 된 페르 귄트는 거지나 다름없는 꼴로 산중 오두막을 찾는다. 그곳에는 이미 백발이 된 솔베이그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다. 솔베이그를 만난 페르 귄트가 묻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후, 페르 귄트는 어디에 있었지? 온전하고 진실한 페르 귄트는 어디에 있었던 거지?” 그러자 솔베이그가 대답한다. “내 믿음, 내 소망, 내 사랑 안에 있었어요.”   페르 귄트는 솔베이그의 무릎을 베고, 그녀가 노래하는 자장가를 듣는다. 여기서 자장가를 부르는 솔베이그는 자신을 어머니, 페르 귄트를 아기라고 부른다. 그렇게 늙고 병든 페르 귄트를 어머니처럼 품어준 것이다. 그 편안한 품 안에서 페르 귄트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솔베이 사랑 순애보적인 사랑 산중 오두막 예술 작품

2024-07-2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양이, 꽃, 말, 새의 봄 소풍

영화 한편을 보았다 ‘내사랑‘, 캐나다의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과 그림에 대한 스토리였다. 모드 루이스에게는 오두막 전체가 캔버스였다.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 하나와 자신을 떠나지 않을 한 사람을 기다리는 오두막이 그녀의 세상이었고 우주였다.     꽃을 그리다 보면 꽃길을 만나게 되고 그 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절망의 어두움에서 멀어져 향기로운 꽃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선천성 류머티즘이라는 희귀병으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그마한 키에 가슴에 붙는 턱, 움츠러드는 어깨, 손가락마저 굳어져 가는 아이여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엄마와 함께 그리며 행복해했던 그녀는 자연스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말이 끄는 눈썰매가 눈 덮인 언덕을 오르고, 깜깜한 밤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하늘을 그리며 그녀의 마음엔 한장 한장 고운 그림이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기쁨이었고 후에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32살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2년 뒤 어머니마저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오빠 찰스가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그녀를 이모 집으로 보내게 된다. 그녀는 오래지 않아 자신을 무시하는 이모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게 된다. 우연히 ’같이 살거나 집안일 해줄 사람 구함‘ 광고를 보고 찾아간 그곳에서 까칠한 에버렛 루이스를 만나 얼마 후 낚은 양말 한 쌍처럼 결혼하게 된다.     에버렛은 생선을 팔아 살고 있는 어부였는데 아주 작고 전기도 없는 어둠침침한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둡고 칙칙한 오두막을 환하고 아름답게 색칠해 갔다. 칙칙한 부엌 벽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 유리에, 들어오는 문에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 에버렛은 그녀가 온 집안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것에 화를 내었다.     그러나 점차 그녀의 그림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린 크리스마스카드를 5센트에 팔던 기억을 살려 틈틈이 그림을 그려 팔기 시작했다. 타고난 재능을 가졌지만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의 그림은 자연스럽고 꾸밈없고 따뜻하였다. 오두막 외벽 나무에도 꽃 그림을 그려 마을 주민들에게 그녀의 오두막은 사랑 받는 명소로 유명해졌다.     마침내 캐나다 CBS 방송에서는 그녀의 삶과 그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굽은 뭉툭한 손으로 그림에 몰두하였다. 캐나다 전역뿐 아니라 미국까지 그녀의 명성이 퍼져나갔다. 캐나다 총리,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그녀의 작품을 구입할 정도로 이미 그녀는 유명화가가 되어있었다.     주문이 밀려왔지만, 처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그림 가격은 5달러, 10달러를 넘지 않았다. 그녀는 물질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감과 행복을 나누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알 필요도 없는 듯 돈을 더 주고 많이 사겠다는 사람들에게도 한 두 점 이상은 팔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녀의 그림을 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나누어 주기 원해서였다.     “바라는 게 별로 없어요. 붓 한 자루면 돼요.“ ”내 인생 전부가 액자 속에 있어요.“ 그녀는 처음과 끝이 같은 여자였다. 좁은 공간에서 시작된 그녀의 행복은 거리로 동네로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67세의 나이에 그녀는 작은 오두막과 그림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작은 오두막에서 남편 에버렛과 욕심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부와 명예에 찌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순수하고, 아름답고, 단순한 그녀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선생님이요, 또 아름다운 화가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삶의 어두움을 극복하고 고양이, 꽃, 말, 새와 평생의 친구로 함께한 캐나다가 사랑한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다. 작은 오두막이 그녀의 가진 모든 것이었는데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했고 그 행복한 시간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남기고 떠났다. 그녀를 생각하는 한낮의 오후는 지나가고 있고 애꿎은 나무는 머리에 자꾸 꽃을 피운다. 꿈을 꾸라고, 행복하라고…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양이 소풍 오두막과 그림들 에버렛 루이스 오두막 외벽

2024-05-06

[아메리카 편지] 캐나다의 오두막 문화

캐나다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울창한 삼림, 자연의 대지에서 무스와 늑대들이 거닐고, 수풀로 둘러싸인 호숫가 캐빈에서 모닥불 피우고 저녁을 보내는 노스탤지어가 가득한 이미지다.     캐나다는 러시아 다음으로 영토가 큰 나라지만, 무려 90%의 인구가 미국과 접한 남쪽 국경에서 160㎞ 이내 지역에 산다. 그래서 더더욱 인가가 드문 북쪽 야생 지대에 대한 낭만을 지니고 있고, 아이스하키나 메이플 시럽 못지않게 ‘오두막 문화(Cottage culture)’가 캐나다의 상징적 이미지로 꼽힌다.   오두막 문화는 평상시엔 도시에 살면서 2∼3시간 운전해서 갈 수 있는 물가나 산속 전원주택에서 주말이나 휴일, 또는 여름을 지내는 관습을 말한다. 캐나다로 이사 온 사람들에게 흔히 “오두막을 갖고 있지 못하면 오두막이 있는 친구를 빨리 사귀어라”라 할 정도로 이들에게는 중요한 일상 문화다.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름 별장을 애용하는 관습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상류층의 특권이며 별장 자체도 호화롭게 짓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캐나다의 오두막은 보통 중산층이 애용하는, 가령 증조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 대대로 물려받는 소박한 집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즉 여가를 보내기 위한 사치가 아닌, 광대한 땅을 대하는 역사적인 개척정신이 깃든 관행인 것이다.   이번 부활절 연휴에 캐나다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친한 친구의 가족이 소유한 호숫가 오두막에 초대되어 갔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는,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하얀 호수 위 저편으로 걸어가는 엄마와 아기 사슴을 보면서 드디어 나도 자연을 사랑하는 캐나다 문화의 단면을 체험하게 되었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핵심은 소박한 가치를 지키는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캐나다 오두막 오두막 문화 캐나다 문화 호숫가 오두막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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