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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레이건과 오코너가 보여준 용기

무거운 이야기에 앞서 마음을 살짝 풀어주는 서양의 치매 유머 하나를 소개한다.                                                   한 남자가 친구에게 말했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나빠졌어. 아내 이름도 가끔 까먹어.” 친구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어떻게 불러?”     남자가 “음… 그 5월에 피는 예쁜 꽃 이름이 뭐지?” 친구가 “Rose?” 하니까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외친다. “Rose! 내 옆에 이 친구 이름이 뭐였지?”   LA에 사는 여고 동창 대여섯 명이 모이는데 그중 두 명의 남편이 치매라고 한다.   한 명은 아내를 가끔 못 알아볼 때가 있고 다른 분은 외출했다 집을 못 찾기도 한다고 한다. 남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깜빡 깜빡하는 경우가 많아서 만나면 치매 걱정이다.     최근 많은 이들이 암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한다고 한다.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은 많은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육체적 고통보다 일상이 무너지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 어제 뭘 했는데 이렇게 피곤할 까 생각해 봤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남편에게 “어제 내가 뭘 했죠?” 물으니 한심한 듯 쳐다보며 “큰일났군! 새벽부터 하루 종일 바빴잖아” 라고 했다.   ‘새벽부터’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제 일이 주르륵 떠올랐다. 일요일 오전 8시에 시작하는 1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6시에 일어났는데 서머타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서 새벽처럼 느껴졌다. 오후 1시 반부터는 일 년에 한번 있는 대심방이라,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 후에는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한 구역식구 심방을 갔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6시가 됐다. 그 많은 일들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다니! 그렇지않아도 요즘 깜빡거리는 증상이 잦아져 치매가 아닌가 걱정이 많았는데,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생각했다.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니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기억이 순간적으로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중에 어떤 단서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면, 치매가 아니라 건망증에 가까운 현상일 가능성이 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휴~ 살았다.”   그런데 그 뒷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최근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셨나요? 단어나 사람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는 경향이 있다면 치매의 증상일 경우가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나는 치매다.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그런 증상들이 꼭 치매 초기 단계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어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지 기능 저하일 수도 있고 피로, 스트레스, 수면 부족, 약물 부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내가 치매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아리송했다.   치매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94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여 자신이 치매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충격을 주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최근에 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수백만 미국민들 중의 한 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낸시와 나는 이 사실을 우리의 개인적인 비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사람에게 알릴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림으로써 이 병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유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괜찮다고 느끼는 지금, 나는 신이 나에게 준 이 땅위에서의 나머지 인생을 지금까지 항상 해온 일들을 하면서 지낼 것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여정을 사랑하는 아내 낸시와 내 가족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일할 수 있었던 큰 영광을 준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언제일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집으로 나를 부를 때, 나는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조국의 장래에 대한 영원한 희망을 지니고 떠날 겁니다.”     후에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잊었다 한다. 치매 환자임을 공표한 직후 레이건은 그의 아내인 낸시와 국립 알츠하이머병 재단과 함께 치매 치료 연구를 위한 로널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창설했다.   또 한 사람, 미국 최초 여성 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이다. 오코너는 종신직인 대법관 자리에서 2006년 조기 퇴임했다. 그 이유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던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드라마틱한 것은 그녀의 남편 존은 정작 그녀에 대한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피닉스의 요양원에 만난 ‘케이’라는 할머니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뒷바라지에 헌신적이었던 오코너는 남편의 이런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큰아들 스콧은 방송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요양원 생활에 만족해 하고 행복해하는 데 대해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했다.   배우자가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보며 충격과 배신감,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고통이 복잡하게 얽힐 수 있다. 그것이 질병의 영향 때문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함과 외로움이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힘 있는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이 말년에 보여준 용기 있는 행보는 특별한 울림을 주고 있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이다. 아무리 영민한 사람도 걸릴 수 있다.   앞서 말한 여고 동창 남편 두 분은 의사다. 평소에 남들보다 더 이지적이고 의식이 강한 분들이었다. 치매 환자의 배우자로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익숙했던 남편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고, 하루 종일 붙어서 돌봐야 하는 부담도 크다. 단순한 신체적 부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사람이 성격이 변하고, 때론 낯선 사람처럼 대할 때 그 상실감과 두려움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족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치매에 걸리면 안 되겠다. 의사선생님께 치매를 예방하는 약은 없느냐고 물으니,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치료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신약 개발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살라고 했다. 집순이인 내가 특히 새겨 들어야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게 알츠하이머병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정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치매라고 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레이건 오코너 치매 환자 로널드 레이건 치매 치료

2025-05-08

오코너 전 연방대법관 별세…첫 여성 연방대법관 기록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대법관직을 맡았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사진)가 별세했다. 향년 93세.   1일 연방대법원은 오코너가 애리조나의 자택에서 알츠하이머와 연관된 노인성 치매 등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오코너는 지난 1981년부터 판사 경력을 시작해 시작해 2006년 은퇴했다.   그가 일을 시작한 1981년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로, 여성으로 사법부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코너는 유리천장을 깬 후 중도 성향으로 버티며 민감한 판결마다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30년에 태어나 16세에 스탠퍼드대학교에 입학, 19세에 동대학 로스쿨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했다. 로스쿨 최고 성적에도 로펌 취업이 힘들자 그는 캘리포니아주 검찰 사무실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1973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애리조나 주상원을 이끌었고, 다음 해에 주 판사가 됐다.   보수 성향이라고 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여성과 소수인종 보호 등 미국의 핵심 가치를 수호했다. 특히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 ‘로 대 웨이드’ 당시에는 중도 역할을 자임했다. 2003년엔 대학 입시에서 소수 인종을 배려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옹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강민혜 기자연방대법관 오코너 여성 연방대법관 연방대법관 별세 데이 오코너

2023-12-01

삭발 여가수 시네이드 오코너 별세…회고록서 “나는 저항하는 가수”

아일랜드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네이드 오코너(사진)가 56세로 별세했다고 26일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아일랜드 공영방송 RTE와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오코너의 가족은 성명에서 “사랑하는 시네이드의 죽음을 알리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라고 밝혔다.   오코너는 1990년에 팝스타 프린스의 곡 ‘낫씽컴페어즈 투 유’(Nothing Compares 2 U)를 불러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1987년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스튜디오 앨범을 총 10장 발매했다.   머리를 삭발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는 1990년대 초 음악계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바꿨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그는 종교, 성, 페미니즘, 전쟁 등에 관한 견해를 뚜렷이 밝히고 순응하지 않는 태도로 음악 외적으로도 눈길을 끄는 인물이었다.   예능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연 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는 행위도 했다.   그는 2021년 발표한 회고록에서 “나는 저항하는 가수”라며 “유명해지고 싶은 열망은 없다”고 말했다.   더블린 출신의 오코너는 2018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름을 바꿨지만, 활동명은 그대로 유지했다.   지난해 17세 아들이 사망한 뒤 세 자녀가 남았다.시네이드 오코너 시네이드 오코너 오코너 별세 아일랜드 공영방송

2023-07-26

[그 영화 이 장면] 사랑은 비를 타고

전설의 뮤지컬이 재개봉된다. 스탠리 도넨과 진 켈리가 공동 연출하고 켈리가 주연을 맡은 ‘사랑은 비를 타고’(1952)다. 올해 70주년이 되는 이 영화는 ‘라라랜드’(2016)나 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뮤직비디오처럼 최근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뮤지컬 장르의 모든 것이자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는 완벽한 엔터테인먼트다.   진 켈리와 도널드 오코너의 춤과 당시 신인이었던 데비 레이놀즈의 풋풋한 매력이 잘 어우러진 이 작품은 흥겨운 음악과 수많은 명장면의 연속이다. 특히 진 켈리가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을 부르며 거리에서 춤추는 대목은 영화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한 장면이다. 문 앞에서 키스를 나눈 연인은 집 안으로 들어가고, 진 켈리는 거리에 홀로 남았다. 그의 몸과 마음은 로맨스의 여운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에너지를 발산하듯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춘다. 우산 하나와 오로지 배우의 개인기로 만들어진 이 장면은 약  3분 30초 동안 이어지는, 영화사상 가장 행복한 러닝타임이다. 마치 모든 것을 성취한 듯, 억누를 수 없는 감정으로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조율된 춤을 추는 진 켈리는 퍼포먼스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원래는 세 명이 함께할 예정이었지만 진 켈리가 솔로를 고집했는데, 컨셉트는 단지 ‘빗속에서 노래하며 걷는다’ 정도였다고. 촬영 당시 그는 39도 고열에 시달렸다고 한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사랑 뮤지컬 장르 퍼포먼스 이상 도널드 오코너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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