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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가 하지 말라는 일 골라 하다 몰락

“세계엔 네 종류의 나라가 있다. 선진국, 후진국, 일본, 그리고 아르헨티나.”     1971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의 말이다. 아르헨티나가 그만큼 특이한 나라라는 뜻이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세계 5대 부자에 꼽히던 금수저 국가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프랑스·독일보다 높았고, 스페인의 거의 배에 달했다. 당시 유럽 이민자들이 뉴욕으로 갈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갈지, 고민했을 정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엔 LA보다 80년이나 앞선 1913년 지하철이 개통됐다. 지금도 건재하다.   그러다 대공황에 이어 포퓰리즘과 군부독재의 실정을 거쳐 쇠락했다는 건 다 알려진 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릴리아나 프랑코는 분배 중심의 정치를 쇠락의 범인으로 지목한다.   “분배 중심의 정치가 자리 잡으면서, 저축 인내 노력과 같은 기본적인 가치들이 약화됐다. 이렇게 몇 세대가 지나자, 국가는 마치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이며, 복지를 책임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페로니즘은 이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가가 뭐든 다 해주다 보니,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여느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라졌다. 가전업체 피바디의 사주 최도선 회장은 포퓰리즘에 길든 근로자들의 가치관을 지적한다.   “포퓰리즘으로 인해 3~4대째 정규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아버지가 매일 출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시간 지켜 일하러 나가는 걸 문화적으로 못 받아들인다.”   포퓰리즘과 동의어로 통하는 페로니즘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세상만사, 객관적 여건과 주관적 의지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법. 대공황 이후 서서히 하락세를 보인 아르헨티나에선 과거 번영에 대한 향수와 상대적 박탈감이 쌓여갔다. 이게 기성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겹쳐 곧 폭발할 듯한 거대한 정치 에너지로 부풀어 올랐다.   이 흐름을 포착해 권력을 잡은 인물이 후안 페론(1895~1974)이었다. 그는 부인 에바와 함께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언동으로 대중을 결집하고, 국가가 불평등을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페론의 포퓰리즘은 단순한 인기영합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상실감에 대한 정치적 응답이었다. ‘피크아웃 코리아’ 국면에서 포퓰리즘 공약이 활개 치는 한국도 그와 다르지 않다.   누구 말처럼, 페로니즘이 서민을 위한다니까 진짜 서민을 위했다고 보면 오산이다. 페로니스트 정권은 부유층의 기득권도 인정해줬다. 연방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아르헨티나에선 주 정부가 지방세로 상속세를 걷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 상속세율 최고 구간이 9.51%로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방대한 재정지출을 감당해야하는 페로니스트 정권은 법인세·소득세·부가세를 두루 무겁게 만들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35%. 이게 적용되는 과세표준은 30만 달러 초과에 불과하다. 웬만한 중소기업은 죄다 최고세율이다. 한국은 과세소득 3000억원(약 2억1000만 달러)을 넘어야 최고세율 24%를 낸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35%인데, 이 역시 연 소득 약 6000달러만 넘으면 다 내야 한다. 부가세도 21%로 북유럽 국가와 맞먹는다.     세율을 높이면 세금이 많이 걷힐까. 천만의 말씀이다. 아르헨티나 최대 회계법인 리식키리트빈의 세자르 리트빈 대표는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전형적인 ‘래퍼 곡선’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세율이 어느 선을 넘어 높아질수록 세수는 되레 감소한다는 게 경제학자 아서 래퍼의 이론이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 감세정책의 이론적 근거였다. 래퍼 곡선의 세수 위축 효과가 아르헨티나를 괴롭혀온 것이다.   기업들은 법인세에다 약 5%의 지방세와 각종 준조세를 더 낸다. 이게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전체 공급망의 효율을 떨어트린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아르헨티나 산업연합회(UIA)의 마르틴 라팔리니 회장은 이를 ‘아르헨티나 비용(Argentine cost)’이라고 부른다. 그는 “세금·규제 등 모든 문제가 응집된 결과 높은 가격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우리 기업인은 그 체제의 생존자들”이라는 표현도 썼다.     무거운 세금을 다 내고, 까다로운 규제를 다 지키며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피해가는 길을 찾기 마련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금부담액이 기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국가별로 계산한 결과 아르헨티나는 106.3%에 달했다. 번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뜻이다. 이게 100%를 초과하는 나라는 아프리카의 콩고와 코모로 정도다. 있을 수 없는 구조인데도 돌아가는 걸 보면, 세금을 제대로 안 걷고 안 내거나, 지하경제가 크게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은퇴한 한인 사업가 고훈 씨의 얘기다.     “예전엔 세관에 돈을 집어주면 뭐든 수입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에 무엇을 넣어 들여오든 통관서류엔 못을 수입한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그게 단가가 제일 싸니까. 그런 식의 밀수로 돈 번 사람들이 많다.”   생활 속의 세세한 규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물류회사 LK글로벌의 케빈 강 이사의 경험담이다.   “2023년 9월 캐나다의 친구가 생일 축하 엽서를 보내왔다. 그거 한장 받는데 세금만 20달러 냈다. 그마저도 받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그게 당시 아르헨티나 상황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살아야 했다. 뭐가 어떻게 바뀌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다른 나라에선 몰라도 될 일들을 자세히 알아야 했다.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단원 구스타보 에이리즈는 요즘 살림이 어떠냐는 질문에 휴대폰을 꺼내 환율, 주가 차트를 펼쳐 보인다. 해외녹음으로 번 외화를 언제, 어떻게 들여오느냐를 놓고 애널리스트처럼 시장을 분석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거의 준경제학자다. 인플레가 심하고, 경제사정이 어지러워 나 같은 뮤지션도 경제지식이 많다. 상황에 맞게 다들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했다.”   포퓰리즘 체제에선 경제적 보상 구조도 사회주의를 따라간다. 미국에선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사의 초임이 이곳에선 월 1000달러에 불과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사로 일하는 모니카 마르티네즈(55)는 “수많은 의사가 힘들게 일만 하다가 최저 연금으로 은퇴한다”고 말했다. 또 사립병원 영상의학과 의사 김 캐롤라인(31)은 “의사들이 보통 2~3개 병원에서 동시에 일한다. 한계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와 곧 결혼할 케미컬 엔지니어 이 우리엘(33)은 전공을 포기한 채 포스코 현지법인에서 월급 3500달러를 받고 통역사로 일한다. 그는 “의사, 엔지니어보다 통역사가 돈을 더 번다는 건 이상한 일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결혼 후 다른 나라로 갈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유능한 인재들의 선택은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라나시옹 등 현지 언론 분석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약 30만 명의 전문직 인재가 해외로 유출됐다. 정착지는 주로 스페인·브라질·미국이었다. 애써 인재 키워 남의 나라 좋은 일 해주고 있다.   커나가야 할 기업은 발목 잡히고, 능력 있는 인재는 떠나고, 일해야 할 사람은 손 놓고… 100년 전 부잣집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이런 지경이 됐다. 자유주의 경제이론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골라 하다 말이다. 관련기사 밀레이 ‘전기톱 개혁’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       □ 도움말 주신 분(무순)   기예르모 모레노 (원칙과가치 당대표)   마르틴 라팔리니 (산업연합회 회장) 세자르 리트빈 (회계법인 리식키 리트빈 대표)   에두아르도 헤커 (전 방코나시옹 행장)   마티아스 쿨파스 (전 산업부 장관)   릴리아나 프랑코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 칼럼니스트) 다리오 쿠신스키 (UNPAZ 총장)   실비나 카탈디 (UNPAZ 국제국장)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 엘리오 델레 (금속산업협회 회장)   리안드로 모라 알폰신 (전 생산개발부 산업정책국장)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학 아시아연구센터 소장)   알레한드로 젠타일 (테친그룹 디렉터) 바우티스타 부르디외 (킨토투자자문 애널리스트) 에르난 로메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출판사)   구스타보 에이리즈 (라플라타 시립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   마르티나 이바르 (케네디대학)   엘피나 로한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학생)   알레한드로 김 (변호사)   조애나 메사 알페르트 (콘덕토라 칼럼니스트) 이용수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 유정아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참사관)   남선우 (코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 배성용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부관장)   최도선 (피바디 회장)   정유석 (중남미한상연합회 대표)   강태민 (LK글로벌 대표) 케빈 강 (LK글로벌 이사)   양수민 (강남익스프레스 대표)   김광복 (전 포스코 아르헨티나 법인장)   김미숙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장) 정세훈(신성교회 목사) 고훈 (신성교회 장로) 박진성 (사업가)   조연미 (사업가)   황진이 (변호사)   이 우리엘 (포스코)   캐롤라인 김 (부에노스아이레스 병원 의사)   김소희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생) 부에노스아이레스=남윤호·장열 기자, 사진=김상진 기자자유주의 몰락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 법인세 최고세율 포퓰리즘 공약

2025-05-12

[글로벌 아이] 블링컨의 식탁·메뉴론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20일 서울에서 폐막했다. 배제된 중국은 관영 통신사를 통해 개최국 한국을 미국의 ‘졸(馬前卒)’에 비유했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관뚜껑이 덮였다며 ‘개관논정(蓋棺論定)’에 이번 회의를 비유했다. 중국은 왜 이렇게 흥분했을까. 배경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식탁·메뉴 발언이 자리한다.   “국제 시스템 안에서는 테이블에 없다면, 메뉴에 오르게 될 것이다.” 지난달 17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한 말이다. 독일·인도 외교장관과 함께한 세션에서 사회자는 “미·중의 긴장이 더 큰 분열로 이어지고 있고, 미·중이 동맹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며 미국의 입장을 물었다. 미국 외교 사령탑은 이때 작심하고 식탁·메뉴론을 꺼냈다.   중국·북한·대만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중 경쟁이 새롭게 격투기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우선 중국. 관영 신화사가 영문 칼럼에서 블링컨을 소설·영화 속 식인범 ‘한니발 렉터’에 비유했다. “워싱턴이 무자비한 제로섬을 추구한다”고 했다. 환구시보가 이어 “중국어로 번역하면 ‘칼자루를 잡지 못하면 고기가 된다’는 뜻”이라며 “약육강식의 세계관에 오싹한 냉혹함과 한기가 배어 있다”는 비난 사설을 실었다. 북한의 반응은 좀 늦었다. 이달 1일 노동신문에 “미국이 더 이상 ‘식도락’을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맹비난 논평을 실었다.   대만 신문은 “미국의 전략과 지정학적 사고가 바뀌고, 미국 국력이 쇠퇴하면서 나온 발언”이라며 “트럼프 같은 고립주의 성향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다는 자체가 자유주의 가치외교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우려했다. 또 “식탁 아니면 메뉴는 적나라한 비유이지만 현실적”이라며 집권당에 경종을 울렸다.   최근 미국 의회는 틱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유튜브·페이스북 등을 금지하면서도 “조폭의 논리”라며 반발했다.   중국의 격한 반응에 조바심이 묻어난다. 중국은 지금도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와 휴전협상을 병행했던 마오쩌둥의 양수론(兩手論)에 충실하게 미국을 상대한다. 블링컨의 발언은 쇠퇴하는 미국이 더는 호락호락하게 페어플레이만 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내년 백악관의 주인은 미·중 경쟁을 더욱 과격하게 몰고 갈 것이다. 바이든의 신(新)합종정책이 시즌 2를 맞을지,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폭풍이 몰아칠지는 알 수 없다. 두 시나리오별로 대응반이 가동돼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총선 후부터라도 외치에 힘을 모으기 바란다. 나라를 메뉴판의 고기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신경진 한국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글로벌 아이 메뉴론 식탁 메뉴 발언 신고립주의 폭풍 자유주의 가치외교

2024-03-22

[중국읽기] ‘자유·국제주의’ 사조의 사망

중국 국무원(정부) 산하 발전연구중심(DRC)은 대표적인 정부 싱크탱크다. 경제 정책을 기획하고 제시한다. DRC가 세계은행과 함께 ‘차이나 2030’ 보고서를 낸 건 2012년 2월이었다. 중국 경제의 장기 발전 방향을 담았다. 보고서 작성을 기획한 사람이 바로 27일 고인(故人)이 된 당시 국무원 부총리 리커창(李克强)이었다.   핵심 키워드는 두 개, ‘시장’과 ‘글로벌’이었다. 보고서는 모든 경제 정책 결정에서 시장을 중심에 두고, 세계 경제와의 동반 성장 체제를 구축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권력층의 주류 사조였던 자유주의, 국제주의가 반영됐다. 리커창이 꿈꾸던 2030년 중국의 미래 모습이기도 했다.   리커창은 보고서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려 애썼다. ‘대중창업 시대를 열자, 모든 사람을 혁신에 뛰어들게 하라!’ 그는 총리 2년 차였던 2014년 9월 톈진(天津)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이렇게 외쳤다. IT분야 청년들이 환호했다. ‘대중창업, 만중혁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이라는 슬로건은 금방 경제 현장으로 퍼져나갔다.   창업, 혁신 붐이 일었다. 중국은 어느 다른 나라보다 먼저 인터넷 쇼핑을 정착시켰고, ‘인터넷 택시’를 도입했다. ‘베이징에서는 거지도 위챗으로 구걸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즈음이다. 마윈(馬云)이 당시 세계 최고가로 알리바바를 뉴욕 증시에 상장한 것도 2014년 9월의 일이다. 인터넷 혁명으로 시장은 활력이 돋고, 기업은 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리커창 경제’는 바로 그 시간 내부 깊은 곳으로부터 도전받고 있었다. 그해 6월 베이징에서 중국 공산당의 경제 관련 최고 협의기구인 중앙재경영도소조(中央財經領導小組)가 열렸다. 소식을 전한 신화통신 보도에 뭔가 특이사항이 하나 있었다. 관행적으로 총리가 맡아오던 소조 조장에 ‘시진핑(習近平)’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 경제 권력은 빠르게 시진핑 일인(一人)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시진핑 세상’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리커창의 ‘대중 혁신’ 대신 국가가 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하는 신형 거국체제가 강조된다. 민영기업보다 국유기업에 돈이 몰리고, 글로벌 협력보다 자력갱생이 중시된다. 당(黨)을 앞세운 시진핑의 10년 통치에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중국 정계에 자리 잡았던 자유, 국제주의 사조는 명맥이 끊길 처지다. 대신 ‘중화 권위주의’가 그 자리를 채운다. 리커창의 죽음은 그렇게 자유, 국제주의의 사망과 맥을 같이한다. 명복을 빈다. 한우덕 / 한국 중앙일보 차이나랩 선임기자중국읽기 국제주의 자유 자유주의 국제주의 리커창 경제 경제 정책

2023-10-30

[칼럼 20/20] 바이든 대통령의 ‘고깃값 전쟁’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새해 첫 업무로 ‘고깃값 전쟁’에 나섰다. 연초 휴가에서 복귀한 바이든 대통령은 소규모 농장과 목장 업주 등과 육류가격 인하를 위한 화상회의를 가졌다. 육류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16%가 올랐고 소고기만을 보면 20.9% 폭등했다.     바이든이 이들 업계와 회의를 가진 이유는 육류가 대표적인 독과점 품목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상위 4곳의 대형업체가 소고기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돼지고기는 54%, 닭고기는 70%를 차지한다. 이들 대형회사에 의한 가격 변동성이 크다. 바이든은 이날 소규모 가공업체에 10억 달러 예산을 지원하고, 경쟁 위반사항을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한다. 산업 각 분야에서 경쟁을 통해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그럼에도 독점 규제에는 엄격한 칼날을 들이댄다. 대표적인 것이 1890년 제정된 ‘셔먼법(Sherman Act)’으로 불리는 반독점법이다. 기업들의 가격 담합과 불공정 행위를 금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에서 출발한 규제로 대형 석유기업 ‘스탠더드 오일’이 34개 회사로 분할됐다. 그 결과 1911년 지금의 모빌, 셰브런 등의 회사가 탄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상회의에서 대형 육류 회사들의 ‘패커스 앤 스토키야즈법’ 위반 여부 조사를 지시했다. 1921년 제정된 법은 육류 업체들의 불공정 거래와 가격 정책 등을 규제하고 있다.     바이든의 육류 기업 ‘손보기’는 고물가 시대에 설득력을 갖지만 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급조한 ‘국민 달래기’ 이벤트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도 고물가의 책임을 대기업에 전가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물가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39년래 최고치인 6.8%를 기록했다. 물가급등은 바이든을 공격하는 빌미를 공화당에 제공하고 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3%대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로 시중에 풀린 자금과 수요·공급의 불일치기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이었는데 올해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불만은 크다. 여러 경제지표가 청신호를 보내고 있어도 국민의 인플레에 대한 반감은 높다. 주식 시장의 호황보다는 일반 시장의 물가안정이 더 중요하다.     경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바이든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44%로 추락했다. 4일 CNBC가 발표한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의 ‘국정수행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56%로 나왔다. 취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바이든의 경제정책 중 물가정책에 대한 반대가 72%로 가장 높았다. 조사자의 84%는 생필품 가격이 1년 전보다 올랐다고 답했다. 올해 물가가 내려갈 것이라고 답한 경우는 23%에 불과했다.     또한 설문 대상자들은 인플레 원인 순위에서 ‘코로나19’와 ‘기업’에 앞서 대통령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1위로 꼽았다.     바이든 지지율이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하원 다수당 지위 상실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양당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에게 근소한 차이로 역전을 당했다. 지난해 5%포인트 이상으로 앞섰던 민주당이었지만 고물가의 경제 실책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신년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잡기에 돌입했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고물가가 11월까지 이어질 경우 선거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다. 인플레와 선거의 함수관계를 시험할 중간선거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대통령 전쟁 자유주의 시장경제 육류가격 인하 고물가 시대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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