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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러튼 경찰 제압 중 남성 사망…과잉 대응 여부 수사

캘리포니아 풀러튼시에서 경찰의 제압을 받던 40대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오렌지카운티 검찰청이 수사에 착수했다.   풀러튼 경찰국에 따르면, 사건은 4월 20일 자정 직후 레몬 공원(Lemon Park)에서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연기가 나는 종이 상자를 들고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남성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물리적으로 저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남성의 거친 저항에 여러 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그를 억제했으며, 이 과정에서 남성이 경찰관의 팔을 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찰은 침을 뱉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스핏 후드(spit hood)’라 불리는 망사형 머리 덮개를 씌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영상에는 한 경찰관이 "두 차례 주먹을 날렸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으며, 수 분간 억제된 상태에 있던 남성은 이후 반응을 보이지 않기 시작해 구급대가 호출됐다.   해당 남성은 46세 호세 루이스 나란호 코르테즈(Jose Luis Naranjo Cortez)로 신원이 확인됐으며, 병원 이송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렌지카운티 지방검찰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며, 체포 과정의 적절성과 과잉 제압 여부가 주요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AI 생성 기사경찰 제압 남성 사망 경찰 제압 과잉 제압

2025-06-04

한나래, 플러싱서 열린 US오픈 본선 진출

    한나래(243위·부천시청)가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6천500만 달러) 여자 단식 본선에 진출했다.      한나래는 26일 뉴욕 플러싱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여자 단식 예선 결승에서 엘리자베스 맨들리크(154위·미국)를 2-0(6-3 7-5)으로 물리쳤다.   이로써 한나래는 28일 개막하는 US오픈 단식 본선에 나가게 됐다.    한국 여자 선수가 메이저 대회 단식 본선에 출전한 것은 지난해 1월 호주오픈 장수정(152위·대구시청) 이후 약 1년 7개월 만이다.    한나래는 2020년 호주오픈 이후 개인 통산 두 번째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2020년 호주오픈 단식 본선 1회전에는 당시 세계 랭킹 179위로 출전, 70위였던 타마라 지단세크(슬로베니아)에게 0-2(3-6 3-6)로 졌다.    왼손잡이인 한나래의 올해 US오픈 단식 본선 1회전 상대는 추후 결정된다.    한국 여자 선수가 테니스 메이저 대회 단식 본선에 나간 것은 2007년 US오픈 조윤정 이후 2020년 한나래가 13년 만이었고, 지난해 장수정이 뒤를 이었다.    이로써 올해 US오픈 단식 본선에는 남자부 권순우(104위·당진시청)와 여자부 한나래가 출전하게 됐다. 권순우는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크리스토퍼 유뱅크스(30위·미국)를 상대한다.    이날 한나래가 제압한 맨들리크는 1980년대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네 차례 우승한 하나 만들리코바(체코)의 딸이다.    이달 초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내셔널뱅크오픈 예선 1회전에서 맨들리크가 2-1(0-6 6-1 6-2)로 이겼지만 이번에는 한나래가 설욕했다. 2세트 게임스코어 4-2로 앞서던 한나래는 상대에게 내리 3게임을 내줬으나, 다시 곧바로 3게임을 연달아 따내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여자 단식 예선 2회전에 출전한 장수정은 매카트니 케슬러(363위·미국)에게 0-2(2-6 4-6)로 져 본선행에 실패했다. [연합뉴스]한나래 US오픈 한나래 본선 진출 권순우 한나래 맨틀리크 제압

2023-08-27

“피해자 돕는 일 하고 싶다”…총격범 제압 브랜든 쎄이

20대 중반의 평범한 청년이라고 했다.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친구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하지만 평범한 대만 출신 청년 브랜든 쎄이(26.사진)의 인생은 지난달 21일 완전히 바뀐다.   바로 그의 가족이 운영하던 ‘라이라이 댄스 스튜디오’에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총격범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미 10분여 거리에 있는 ‘스타 댄스 스튜디오’에서 총기 난사를 자행한 뒤 죽음의 끝에서 다른 살상을 계획한 범인을 온몸으로 그리고 맨손으로 막아낸 것이다.     단숨에 ‘영웅’의 반열에 오른 그는 커뮤니티 설 축제 무대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용기를 냈던 것은 가족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었다고 그의 가족은 설명했다.     그의 어머니는 2017년 54세의 나이로 폐암 투병 중에 사망했다. 대학 수업을 겨우 시작했던 브랜든은 결국 가족을 도와 일을 해야 했다.     그는 LA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순간이 자꾸 떠올라 잠을 못 잔다. 나는 셀레브러티가 아니다. 누군가 해야 했을 일을 한 것이며 오히려 이번 일이 나를 바꿨다. 총격 피해를 본 많은 가족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는 곳마다 기립 박수를 받고, 대규모 방송사들의 줄 인터뷰와 주지사의 방문까지 받은 그의 가족은 당분간 더 많은 전화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퍼스트레이디의 초대로 7일 밤 연방 상하원 대통령 국정 연설 자리에 함께한 그는 또 한 번 기립 박수에 미소로 화답했다.     로버트 루나 LA카운티 셰리프로부터 ‘경관이 되어보라’고 권고받은 그는 가주고속도로순찰대(CHP) 사무 보조원으로 이력서를 제출하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대학에 다시 입학해 사회학을 전공하고 자신이 겪은 일들이 가능한 이유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총격범 브랜든 총격범 제압 기립 박수 라이라이 댄스

2023-02-07

강희제에게 배워라

    중국의 역대 황제 약 230여 명 중 유일하게 천년에 한번 나옴직한 제왕’이란 뜻의 ‘천고일제(千古一帝)’란 호칭을 얻은 청나라의 4대 황제인  강희제.. 그는 중국의 역대 황제 중 재위기간이 61년으로 가장 길게 왕위를 유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순히 오랫동안 천하를 통치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중국 지도자들조차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주인공이 된 것은 한 마디로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강희제는 1654년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청의 3대 황제인 순치제.. 청나라는 태조 누루하치를 거쳐 태종 홍타이지가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굴복시키고 이어 치열한 전쟁 끝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순치제가 베이징에 입성하면서 나라의 틀을 잡아나갔다. 하지만 청 왕조에 닥친 현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시 만주족의 총 인구는 약 100만 명.. 군대는 일당백의 용사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기병군단인 팔기군 15만 명이 국력의 전부였다. 그런 청이 약 1억5000만 명의 명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명 말기 황궁에서 극성을 부린 환관정치의 폐해와 무능한 군주 그리고 이자성의 난 등 각처의 반란 등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당시 베이징 자금성에 들어온 만주족은 황실 일가족과 팔기군 15만 명, 그리고 몇 만의 만주족 백성이 전부였다. 정복은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거대한 중원과 한족을 통치하고 군림할 수 있을까? 그것이 청 왕조의 고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황궁에서는 치열한 세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개국공신과 종친인 친왕들의 세력화 등등 정세는 긴박했고 복잡했다. 이런 와중에 순치제는 가장 사랑했던 후궁의 죽음으로 모든 의욕을 잃고 정사마저 멀리했다. 그러다 천연두에 걸려 불과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순치제에게는 이복의 다섯 왕자가 있었다.  가장 총명했던 현엽이 황제의 위에 오른다. 바로 그가 강희제,. 당시 나이 일곱 살이었다. 강희제는 14세가 되었다. 당시 만주족 황실은 14세가 되면 직접 정사를 돌보게 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황제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려는 강희제에게 네 명의 대신은 강력한 벽이었다. 강희제는 색니의 손녀를 황후를 맞아들여 권력집합체의 분열을 시도했다. 하지만 색니가 죽자 오배는 소극살합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다. 강희제는 오배와 정면 승부를 결정했지만 할머니인 효장태후가 만류하자 일단 힘을 기르는 데 전력을 집중했다. 1669년, 17세가 된 강희제는 드디어 거사를 단행한다. 긴히 할 말이 있다는 전언을 오배에게 보내고 오배가 방심한 채 들어오자 무사들을 매복시켜 그를 잡은 것이다.   내부 정비를 마친 강희제를 기다리는 것은 오배보다 더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들은 청의 개국 공신인 한족 출신 번왕으로 오삼계, 상가희 그리고 경충명이다. 이들 3명의 번왕은 각각의 영지에서 모든 권한과 사병, 그리고 재정까지 독자적으로 행사하며 청나라 안에 세 곳의 영토를 실질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강희제는 이들을 제거해야 진정한 황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상가희가 은퇴를 청원하며 아들에게 영토의 왕위를 세습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강희제는 은퇴는 허락하되 세습은 안 된다는 강한 원칙을 세웠다. 그러자 오삼계를 주축으로 세 번왕은 반란을 일으켰다.  강희제는 강한 결의와 집중력을 발휘해 토벌을 결정, 무려 9년간의 전쟁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세 번왕의 기세가 올랐다. 이들은 파죽지세로 청의 관군을 제압, 강희제로 하여금 수도를 옮길까 고민하게까지 만들었다. 내분이 일어나는 것을 본 외지의 소수 이민족과 명나라의 복권을 꾀하는 세력의 움직임까지 심상치 않았다. 강희제의 고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강희제는 포기하지 않고 전투를 지휘해 점차 승기를 잡아나갔다. 이때 강희제가 세운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반란군에게 강하게 응전을 했지만 항복을 하면 모두 용서하고 재산과 목숨을 보존해주는 정책을 동시에 실행한 것이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점차 명분과 세력을 잃어가던 삼번의 반란군은 전투를 포기하고 강희제에게 항복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전쟁을 치른 끝에 강희제는 이른바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133년간의 태평성대인 ‘강건성세’ 시대를 열기 위한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만주어는 기본이되 전국 통치를 위한 한족어 공부를 시작했다. 굳이 한자를 몰라도 되는 황제의 위치였지만, 직접적인 통치를 원했던 그는 언어 공부부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스승은 명나라 마지막 과거시험의 장원급제가인 제세였다. 당시 명나라 출신 학자들은 청왕조를 철저히 무시했다. 고염무, 황종희, 이곽 등 당대의 한족 유학자들은 청왕조의 부름도 거역했고 특히 이곽은 강희제가 친히 7번이나 찾아가 도움을 청했을 정도로 도도한 태도를 보였다. 강희제는 한편으로 명나라의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이를 한족에게 맡기기도 했고 인재 발굴을 위한 과거시험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첫 번째 과거시험에는 한족이 한 명도 응시하지 않는 등 한족의 인재들로부터 마음을 얻는 데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고심 끝에 우선 천하의 인재를 얻고 민심을 얻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주접’이란 비밀통신조직을 만들어 관리의 부패와 만주족의 한족에 대한 탄압을 보고받고 이를 시정하는 일을 시행했다. 강희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절제와 청빈한 생활의 모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명나라 시절 궁궐에는 무려 1만여 명이 넘는 환관과 궁녀들이 있었는데 대규모 조정 작업을 거쳐 400여 명만 남겼다. 심지어 강희제의 침전을 시중드는 내관의 숫자도 10여 명으로 줄였다. 강희제의 리더십이 가장 돋보이는 개념은 ‘국궁진력(鞠窮盡力)’의 정신이다. 이 말은 삼국시대 촉의 재상이던 제갈량이 후주 유선에게 피를 토하면서 올렸던 〈후출사표〉에 나오는 글귀이다. 즉 국궁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진정 몸을 굽혀‘최선을 다해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라는 뜻이다. 사실 제왕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오히려 신하의 입장에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쓰기에 적합한 것이다. 당연히 강희제의 신하들도 이 점을 지적했지만, 강희제는 “나는 하늘의 신하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당신들은 퇴근해 잠시 쉴 수도 있고 은퇴하면 손자와 다정하게 놀 수도 있지만 나는 단 하루도 쉴 수가 없는 제왕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속마음을 피력했다.  또한 “제왕이 오늘 한두 가지 일을 미루어 놓으면 내일 한두 가지 더 미루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러므로 단 한 가지도 오늘 할 일은 미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강희제의 학구열은 대단했다. 궁극적인 이유는 ‘인재 발굴이었다. 그는 세상에는 수많은 인재가 있지만 그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고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쓰기 위해서는 ‘우선 군주가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지식과 안목 그리고 폭넓은 사유를 통해 한족과 만주족은 물론이고 서양의 선교사 출신 중에서도 인재를 발굴해 측근에 두고 재주를 펼치게 한 것이다.  이런 자세로 무려 61년 동안 청나라를 통치하자. 당연히 나라는 더욱 융성하고 백성의 삶은 즐겁게 변해갔다.   하지만 강희제의 마음을 어둡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만주족과 한족의 진정한 통합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거대한 한족의 문화에 만주족의 문화가 흡수되는 통합이 이루어지겠지만 지도자 그룹에서만이라도 강희제는 마음을 여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첫 번째 조치로 궁중이나 귀족 그리고 지도자 그룹에서도 만주어가 아닌 한자를 쓰게 했다. 일단 언어적인 통합의 길을 연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같은 자리에서 같이 음식을 먹는 것이다. 강희제는 ‘향음주례’ 시  반드시 만주족과 한족이 함께 할 것을 명했다. 서로 살아온 전통이 다르고 그로 인해 조상신을 숭배하는 방법이 같지 않은 두 민족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조치였다. 반발이 있었지만 강희제는 강력하게 이를 제압하고 만주족의 음식과 한족의 음식을 네 가지로 분류해 한 상에 올릴 것까지 지시했다.  강희제의 재위 61년은 그가 미리 쓴 유서격인 〈고별상유〉에 나오는 글귀처럼 치열한 자기와의 투쟁이었다. 강희제는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 한 순간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후대에 우환을 남긴다”는 말과 함께 하루하루 온 힘을 다해 정사를 돌보았던 마음을 남겼다. 어쩌면 강희제는 앞으로 섬김과 소통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이뿐이랴. 우리 같은 필부도 그에게서  배우는 것이 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김지민 기자강희제 김건 제압 강희제 이때 강희제 황제인 순치제

2022-03-23

테네시주 목사가 예배중에 맨몸으로 총든 남성 제압, 참사막아

테네시주의 한 교회 목사가 예배중에 총을 들고 나타난 남성을 맨 몸으로 제압하며 총격을 저지해 참사를 막았다고 AP통신과 현지방송 WKRN TV가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메트로 내슈빌 경찰은 지난 7일 테네시주 내슈빌 라이트 미션 오순절 교회에서 예배중인 교인들에게 총기를 휘두르며 위협한 20대 남성인 데지레 바간다(26)를 16개 중범죄 가중폭력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이 남성은 지난 7일 이 교회 일요일 예배시간에 예배당 오른쪽 맨 앞줄에 앉아있다가, 목사의 설교가 끝난 후 갑자기 일어나서 연단 앞으로 다가갔다. 연단에 오른 남성은 허리춤에서 총을 뽑아 휘두르기 시작했고, 예배 중이던 68명의 교인은 혼란에 빠졌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 교회의 에스겔 느디쿠마나 목사는 위협을 무릅쓰고 남성의 뒤로 몰래 다가갔다. 느디쿠마나 목사는 남성의 뒤에서 자신의 몸을 날려 남성을 들이받았고, 이 남성은 넘어지면서 총을 놓쳤다. 교인들은 쓰러진 남성에게 달려들어 제압한 후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다행히 총은 한 발도 발사되지 않았다"며 "목사의 영웅적 행동이 추가 폭력을 방지했다"고 밝혔다. 체포된 남성은 데이비슨 카운티의 구치소에 수감됐고, 37만5천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됐다.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남성은 경찰에게 자신이 예수이며 "모든 교회와 학교에 총을 쏘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총격사건을 막은 느디쿠마나 목사는 2007년 부룬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후 2009년부터 이 교회를 이끌어왔다. 그는 "남성이 총을 쏘기 전에 붙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가족과 같은 교인들이 다치지 않아 무엇보다도 다행"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테네시주 참사막 테네시주 목사 남성 제압 테네시주 내슈빌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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