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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피해자 코스프레

코스프레는 ‘costume’과 ‘play’가 섞여진 혼성어(混成語)다. 위키피디아에는 ‘cosplay’라 나와 있으나 우리는 일본식 영어발음으로 ‘코스프레’라 표기한다. ‘motorist’와 ‘hotel’이 섞여진 ‘motel’, 또는 라면, 떡, 채소 따위를 섞어 만든 ‘라볶이’ 따위가 혼성어의 좋은 예다. 두 단어가 섞일 때 한 단어의 일부가 없어지는 것이 혼성어의 특징이다.   위키피디아는 코스프레를 1984년 로스앤젤레스 ‘Science Fiction Convention’에 참가한 일본인 노부유시 다카하시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 명시하고 다른 영어로 ‘Playing Victim, 피해자 놀이’라 풀이한다.   2023년 4월 4일에 전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맨해튼 검찰청에 기소된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가 오래전 관계를 가졌던 포르노 여배우를 입막음하는 돈을 공금에서 떼어 썼다는 죄목이란다. 미 건국 이후 형사법정에소환당하는 첫 번 대통령이라고 뉴스 앵커들이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트럼프가 “차라리 나를 수갑 채워 데려가라!”며 언성을 높인다. Twitter CEO ‘Elon Musk’는 만약 그가 수갑을 차게 되면 내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치 탄압 피해자의 화려한 영광을 예단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의상을 입고 하는 연극이다.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위세 앞에서 속수무책이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이 어마어마한 환경에 대한 공포를 숨기고 사는 우리는 대체로 가해자를 규탄하고 피해자를 동정한다. 가해자를 무서워하고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여론조작의 첩경이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극적인 자세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떠맡기는 마음가짐이다. 대중을 선동하는 짓을 일삼는 질이 나쁜 정치인들의 못된 습관이다.   정신분석의 대상관계 이론, ‘Object Relations Theory’에 의하면 코스프레는 ‘false self’, 즉 ‘허위 자아’를 뜻한다. 지구촌에 ‘fake news, 가짜 뉴스’라는 컨셉을 널리 전파해 준 트럼프가 미간을 찌푸리며 ‘가짜 자아’를 내세운다.   환자 중에 혼자 묵묵히 정신적 혼란과 아픔을 견뎌내는 성격의 소유자들을 존중한다. 대인관계의 갈등으로 생겨나는 혼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그들의 인간성에는 어떤 경건성이내재해 있다. 대인관계가 좋은 환자는 쉽사리 정신병동에 입원하지 않는다.   ‘indict’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기소(起訴)하다’라는 뜻이다. ‘검사’가 사건을 담당해서 공소를 제기한다는 구체적인 의미로 ‘prosecute’도 있는데 이 또한 사전에 ‘기소하다’로 나와 있다. 전자에 비하여 후자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검찰이라는 말이 사극에 나오는 포도청을 연상시키는 때문인지.   박해하고 핍박한다는 뜻의 ‘persecute’를 생각해 보라. 피해자의 아픔과 억울함이 대뜸 느껴지지 않는가. ‘persecutory anxiety, 피해 불안’, ‘persecutory delusion, 피해망상’도 사실 그다지 전문용어가 아닌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검찰이 체포해서 감옥에 집어넣는 뉘앙스의 ‘prosecution’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종교적 박해가 떠오르는 ‘persecution’이 알파벳 둘만 다르고 똑같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이 글이 게재되기 하루 전날 이미 도널드 트럼프의 기소과정이 어떤 결론이 내려졌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코스프레 피해자 코스프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2023-04-04

[별별영어] 이해 부족

이태원 참사를 접하며 소통의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문화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만 시켰지 그들이 어려서부터 핼러윈을 알았고 코스프레 문화도 자연스레 접했다는 건 몰랐습니다. 한류가 알려져 좋았지만 남의 문화는 이해하지 못했지요. 10월 마지막 날이 기독교의 ‘모든 성인의 날(All Hallow(Saints)’s Day)’ 전야인데 일찍이 브리튼에서 살아온 켈트족의 연말 풍속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날이라서 귀신도 놀랄 복장을 하고 즐기는 축제의 날이 된 것도요. 코로나로 갇혔던 마음에도 공감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서울에 서양 귀신이 웬 말이냐고 그들을 나무랐어요.   그 기저에는 우리의 권위적인 문화가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문화죠. 어느 사회에나 사람들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강조하는 반면 서구 사회는 평등을 지향합니다. 언어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요.   영어는 대등하게 말하기 쉬운 언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대를 지칭하는 대명사 ‘you’이지요. 이것 하나로 친구나 선생님, 할머니와 사장님과도 편히 말할 수 있어요. 또한 대부분 서로 ‘이름(John)’을 사용합니다. ‘타이틀과 성(Dr. Smith)’ 같은 존중의 표현이 있지만 웬만하면 처음 만난 사이라도 사장과 사원도 이름을 부르며 상하관계보다 친밀함에 가치를 둡니다.   이에 비해 한국어는 서로 나이와 직위를 살펴 알맞은 호칭과 경어법을 골라 써야 합니다. 상명하복 문화 속에 말로 무수히 상처받아 본 우리에겐 영어의 친밀함과 단순성이 낯설기도 하죠.   본래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지만, 거꾸로 언어를 조율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도 합니다. 최근 IT업계와 스타트업 회사에서 시작된 서열 파괴와 호칭 평등화 움직임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지요. 요즘은 직함과 직위를 내세우는 것이 좀 구태의연해 보일 정도예요. 하지만 변하지 않은 영역이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에도요.   이름 하나로 대표되는 개인, 수평적인 관계야말로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형식과 허세를 내려놓고 위계를 넘어 사람들 사이에 평등하고 진솔한 관계가 만들어질 때 진짜 소통이 이뤄지지요.   우리가 예측도 방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참사를 겪게 된 데는 그간 여러 영역에서 소통과 이해가 부족했다는 원인도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안타깝게 떠나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understanding lack 코스프레 문화 상명하복 문화 호칭 평등화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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