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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훔쳐보는 평온한 일상, 세트일까 진짜일까…개봉 25주년 ‘트루먼 쇼’

트루먼은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한다.  자신이 지금 관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는 ‘시청자들’의 훔쳐보기 욕구를 만족하게 해주고 있는 TV쇼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트루먼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커다란 세트장이란 사실도, 자신의 삶이 시청자들에게 낱낱이 공개되는 관찰 예능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미 관찰의 시선을 느끼고 있다. 마치 꿈인 듯한 현실 속, 나 트루먼은 과연 누구일까. ‘트루먼 쇼’라는 세계 속에 ‘나’라는 진정한 자아는 과연 있는 걸까. 기획되고 연출된 나, 나는 나의 삶을 조종하는 저들에 저항해야 하나?     인간의 삶 자체가 타인에게 관찰되고 있다는 전제, 나의 삶은 내가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한 연기였다는 사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 존재가 되고 관계의 메커니즘 안으로 던져진다. 그 사회성에 매개하지 않는 순수한 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나’로서가 아니라 ‘남들의 나’로 살아가는 나, 남들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너’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1998년 개봉한 SF 드라메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는 현실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인생 연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실시간 방영하는 TV 리얼리티 쇼에 관한 이야기다. ‘위트니스’ (1985),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호주 출신 감독 피터 위어의 연출작이다.     주인공 트루먼은 태어났을 때부터 30세 어른이 된 지금까지 씨헤이븐(Seahaevan)이라는 도시에서 살아왔다. 보험 회사에 다니는 그는 흰색 울타리로 둘러싸인 그림 같은 집에서 완벽한 아내와 함께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주변이 어색하고 모순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22년 전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던 아버지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면서 트루먼은 엄청난 인식의 혼란에 빠진다.     여태껏 현실로 믿어왔던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이윽고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연출된 드라마였다는 거, 그리고 자신이 어떤 거대한 연극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왠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접지 못하던 트루먼의 마음속 깊이에는 대학 시절 스치듯 만났던 신비로운 여인 실비아가 있었다. 그는 단짝 친구에게 그녀와 함께 지구 반대편 피지 섬으로 떠나겠다고 말했었다. 트루먼은 이제 진정한 자유, 그의 첫사랑을 찾아 씨헤이븐을 떠나겠다고 마음먹는다.       영화 ‘트루먼 쇼’는 비인격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방송 매체들의 속성과 ‘관찰 예능’의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루먼 쇼’의 종결부에서 트루먼이 자아의 쟁취를 꿈꾸며 씨헤이븐이 제공하는 안온함을 뒤로 한 채 과감히 떠나기로 결정하는 장면에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기뻐하면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토록 애정과 공감을 보이던 그들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보다 재미있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그들의 애정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영화 속 영화 ‘트루먼 쇼’에는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라는 또 다른 핵심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트루먼의 부모와 친구, 학교와 직장, 결혼 문제까지 결정해 온 제작자이며 연출자이다. 트루먼의 삶 전체를 마치 줄인형을 움직이는 조종자처럼 주관하고 있었던 그를 신에 비유하는 시각도 있다. 신은 트루먼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 트루먼은 마침내 씨헤이븐이라는 신의 보호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떠나려 한다.     완벽을 자부하던 통제 상황에 발생한 문제로 인해 트루먼이 자신의 실체를 알아 가고 또 변심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 인간의 운명과 의지를 통제하려는 신과 그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저항이라는 암시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불편한 대목이다. 트루먼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쎄헤이븐을 떠나려 하자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트루먼의 자유의지를 제어하려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자비심이란 전혀 없는 신의 모습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트루먼의 관찰자이지만, 그들 역시 시청자들에 의해 관찰을 당하는 입장이다. 시청자들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을 당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TV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트루먼의 삶을 향한 ‘훔쳐보기’의 시선들은 ‘나’와 ‘너’의 접점에서 발견되는 모순이며 ‘나’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수많은 ‘너’의 담론들이다.     ‘트루먼 쇼’ 안에는 우리의 현실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 숨겨져 있었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인생 여정에서 순간순간 부딪히게 되는 불편한 질문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말로 현실일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고 진실된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들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김정 영화평론가트루먼쇼

202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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