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올해 미국 기업 파산 건수는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현지시간)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 자료를 인용해 올해 11월까지 최소 717개의 기업이 파산 신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4% 증가한 수치로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들은 물가 상승, 고금리 그리고 공급망 교란과 비용 인상을 야기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재정난의 원인으로 꼽았다.
WP는 올해 기업 파산 증가세가 제조업, 건설, 운수 등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되살리겠다”며 강조해온 분야지만 수시로 바뀌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직격탄을 맞았다고 WP는 분석했다. 미 연방정부 자료에 따르면 11월까지 1년간 제조업 일자리는 7만 개 이상 감소했다.
특히 의류와 가구 등 재량소비재(생활필수품을 제외한 소비재) 판매 기업들이 파산 신청 건수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생활필수품 구매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WP는 전했다.
한편, 올해 상반기에는 자산 규모 10억 달러(약 1조4450억원) 이상 기업의 이른바 ‘메가 파산’도 급증했다. 경제 컨설팅업체 코너스톤 리서치에 따르면 1~6월 메가 파산은 17건을 기록했는데,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기 기준으로는 최고치다. 가정용품 소매업체인 앳홈(At Home)과 패션 브랜드 포에버21(Forever21) 등이 포함됐다.
WP는 전문가를 인용해 “관세 정책이 수입 비중이 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며 “기업은 소비자 이탈을 우려해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해 왔다”고 전했다. 11월 물가상승률은 2.7%로 예상치보다 낮기는 했지만, 상당수 기업이 소비자 가격 유지를 위해 상승한 비용을 부담했다는 취지다. 그 결과 재무 구조가 취약한 한계기업이 도태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제프리 소넌펠드 예일대 경영대 교수는 WP에 “기업은 관세 비용과 더 높은 금리를 상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가격 결정권이 있는 기업은 시간을 두고 (소비자에) 비용을 전가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세 인상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방향이 수시로 뒤바뀐 점도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일부 기업은 관세가 낮은 국가로 생산과 자재를 급히 옮기느라 예산을 초과 지출했고 관세 부담을 우려해 주문을 줄인 기업도 있었다고 WP는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소비 심리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11월 전년 대비 약 28% 급락했다. 소비자들은 식료품 등 필수재 소비를 우선시하게 되고 그 결과 공예품, 가구 등을 파는 소매업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WP는 전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그룹 KPMG의 미건 마틴-쇤베르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P에 “수치상으로는 미국 경제가 강해 보이지만 그 성장이 모든 산업에 고르게 반영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7~9월 미국 경제성장률은 4.3%(전기 대비 연율)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는 고소득 소비자와 인공지능(AI) 관련 기업 투자에 의해 견인된 수치란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