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가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전사자 18명을 ‘2개의 별도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분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된 이후 확대되고 있는 미군의 피해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벌인 전쟁과 관련한 법적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이란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의 유해 송환식에 참석해 거수 경례로 예를 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앙일보가 25일(현지시간) 미 국방부가 운영하는 공식 전사자 통계 사이트(DCAS)를 확인한 결과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은 ‘장대한 분노(Operation Epic Fury)’와 ‘해외 작전(Overseas Operations)’ 등 2개 항목으로 구분돼 있다.
국방부는 각각의 작전으로 사망한 전사자의 숫자를 14명과 4명으로 기재했다. 이번 이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18명의 전사자가 ‘다른 전쟁’에서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3일 국방부가 18명으로 기재했돼 있던 이란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 숫자를 14명으로 수정해 게시하자, 그동안 미 국방부가 전쟁의 피해 상황을 축소하거나 은폐해왔던 정황과 연관지어 비판을 가했다.
중앙일보가 25일(현지시간) 미 국방부의 전사자 통계 시스템(DCAS)를 확인한 결과 이란전쟁으로 사망한 전사자 18명이 '장대한 분노(14명)'와 '해외 작전(4명)' 등 2개의 별도의 전쟁으로 사망한 것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이에 대해 조엘 발데스 국방부 대변인 대행은 NYT에 “웹사이트상의 일시적인 데이터 오류이며 즉시 수정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날 본지의 확인 결과 국방부는 이란 전쟁을 2개로 구분해 각각의 전사자까지 분류하는 방식의 수정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이란 전쟁의 전사자 숫자를 축소한 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실제 군 관계자는 NYT에 “최근 요르단과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4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휴전을 선언한 이후 사망했기 때문에 집계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과 댄 케인 합참의장이 지난 22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진행된 이란 전쟁 전사 장병 유해 송환식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와 관련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5월 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장대한 분노 작전 종료에 대해 의회에 통보했다”며 “현재 그 단계는 끝났고, 우리는 지금 ‘해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은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양해각서는 사실상 파기됐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의회에 공식 서한을 보내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 재개됐다”고 통보하며 의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60일간 진행할 수 있는 새로운 ‘별도의 전쟁’이 개시됐다고 주장한 상태다.
미 중부사령부는 지난 17일 이란의 군사 시설을 겨냥해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을 공개했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이란과의 전쟁을 국방부가 자의적으로 별도의 전쟁으로 구분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해왔던 말과도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육군 소속 4명의 유해 운구식에 참석했고, 이튿날 연설에서도 다른 전쟁들과 이란 전쟁을 비교하며 “단 한 명의 희생도 너무 크지만, 이번 전쟁 사망자는 18명”이라며 2월말에 시작된 이란 전쟁이 지속되고 있음을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군 관련 단체들은 반발했다. 해군 참전용사이자 보훈 단체 ‘오퍼레이션 R.J.S.’의 설립자인 타냐 스타모스는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장병들의 수를 낮추는 것은 역겨운 일”이라며 “정부가 이들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것은 유가족과 군인들의 뺨을 때리는 격”이라고 했다.
미국 의회도 국방부를 상대로 고강도 검증을 예고했다. 민주당 상원의원단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이번 전쟁에서의 전사자 및 부상자 수에 대한 ‘전면적인 전수 조사 및 보고’를 요구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2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AFP=연합뉴스
앞서 미군 3명이 사망한 이란의 요르단 공격 일주일 전에도 이란의 공격으로 수십 명의 미군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국방부가 이를 즉각 공개하지 않은 바 있다. 의원들은 서한에서 “미국 국민과 의회, 군인과 그 가족들은 전쟁의 대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국방부의 늑장·부실 보고를 강력히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