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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트로피 사진이 영정사진 됐다…한국 그리던 19세 소녀의 죽음

중앙일보

2026.08.16 14:00 2026.08.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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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상을 떠난 제시카 방(한국명 방수민)의 빈소. KLPGA 투어 데뷔를 꿈꿨던 제시카 방은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져 지난 13일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고봉준 기자

최근 세상을 떠난 제시카 방(한국명 방수민)의 빈소. KLPGA 투어 데뷔를 꿈꿨던 제시카 방은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져 지난 13일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고봉준 기자

“지난주 토요일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이 아빠가 유골함을 안고 그 비행기를 탈 줄이야….”

어머니는 우승 트로피를 들고 찍은 딸의 영정사진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씩씩하게 꿈을 키워나가던 19살 호주 교포 골퍼 제시카 방, 아니 수민이는 훈련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열흘 넘게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빈소가 마련된 16일 경기도 용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9호실은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했다. 빈소에서 만난 아버지 방재연씨는 “하나뿐인 딸이 뭐가 그리 급했나 싶다. 수민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지 못한 내가 죄스러울 뿐이다. 이제 나와 아이 엄마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라며 고개를 떨궜다.

비극은 지난 1일 태국 방콕의 피닉스 골드 골프장에서 발생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인터내셔널 퀄리파잉 토너먼트(IQT) 출전을 위해 미리 대회장으로 건너간 제시카 방은 아버지와 함께 샷 점검을 하던 오후 1시쯤 갑자기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더니 쓰러졌다. 급성 뇌출혈이었다.

구급차를 불러 인근 병원으로 이송시켰으나 해당 병원에는 뇌출혈을 수술할 전문의가 없었다. 큰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출혈량이 많고, 뇌압도 올라 수술은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 방씨는 “한국으로 이송하려고 했지만, 딸이 호주 국적이라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07년 한국에서 태어난 제시카 방은 어머니 강은정씨를 따라 호주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한국에서 살고 초중고를 한국에서 나온 한국인이다. 골프는 둔전초 5학년 때 연을 맺었다.

방씨는 “맞벌이 부부라 딸을 돌보기가 어려워 아는 골프 코치에게 부탁했다. 사실 골프보다는 퇴근하기 전까지 봐 달라는 정도였는데 딸이 스윙에 소질이 있어서 선수의 길을 가게 됐다”면서 “외동이지만 사춘기도 없이 컸다. 골프도 성격처럼 침착하게 잘 해왔다. 성인이 된 올해 시험 삼아 KLPGA 투어 3부 격인 점프투어에서 간간이 뛰었다. IQT만 잘 통과하면 다른 선수들처럼 멋지게 활약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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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호주 여자 뉴사우스웨일스 오픈 지역 예선에서 5타 차로 우승하며 상승세를 탄 터였다. 그러니까 수민이는 한국 KLPGA 투어 문턱까지 왔다가, 그 앞에서 삶을 마감했다.

빈소 한쪽에는 골프계에서 보낸 조화가 늘어서 있었다. 임희정은 과거 전지훈련을 함께한 인연이 있었다고 했다. 일면식조차 없던 성은정도 “전혀 모르는 선수지만, 골프라는 스트레스 많은 운동을 하다 떠난 선수의 아픔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김시현은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 최종라운드를 뛰고 있었다. 같은 아카데미에서 함께 땀 흘리던 후배를 먼저 보낸 그는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마지막 홀까지 걸었다. 순위를 다투는 경기 안에서도, 떠난 후배를 향한 마음만은 내려놓지 않았다.

빈소를 지키던 방씨는 “많은 분께서 위로해 주셨다. 수민이가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낯익은 얼굴도 다녀갔다. 배우 하윤경이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마음씨 좋고 다정하며 배려 깊은 친구로 그려졌던 그를, 생전의 수민이는 유난히 좋아했다. 수민이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부산까지 팬 사인회를 따라갈 정도였고, 그렇게 쌓인 인연이 하윤경의 발걸음을 빈소로 이끌었다.



고봉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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