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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과 그랜드캐니언의 데브리스 플로우가 ‘괴물’이 된 이유

중앙일보

2026.09.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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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니언 빌리지에서 바라본 브라이트 엔젤 크릭의 캠프 사이트. [AFP=연합뉴스]

그랜드캐니언 빌리지에서 바라본 브라이트 엔젤 크릭의 캠프 사이트. [AF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에서 대규모 돌발홍수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집중호우로 브라이트 엔젤 크릭(Bright Angel Creek)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물과 암석·토사·잔해가 협곡을 휩쓸었다. 팬텀랜치(Phantom Ranch) 일대의 다리가 잇따라 파괴됐고, 사고 뒤 팬텀랜치와 노스카이밥 트레일(약 23㎞) 등이 폐쇄됐다. 미 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약 30분간 6~19㎜의 비가 내렸다.

피해가 컸던 이유는 단순히 강물이 불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좁고 가파른 협곡으로 물이 집중되면서 계곡 바닥과 사면의 퇴적물까지 함께 쓸려 내려갔다. 물에 암석과 흙이 뒤섞이면 데브리스 플로우(debris flow, 토석류)로 발전할 수 있다.

데브리스 플로우는 물에 토사가 단순히 실려 내려가는 것과 다르다. 흐르는 물이 계곡 바닥과 사면의 퇴적물을 계속 깎아 끌어들이면서 질량이 커진다. 계곡이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물질의 덩치를 키우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랜드캐니언에서는 이런 현상이 드물지 않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1984~2003년 지류에서 발생해 콜로라도강까지 도달한 데브리스 플로우는 101건으로, 연평균 5건이었다.

특히 이번 피해는 지난해 발생한 드래건 브라보(Dragon Bravo) 산불도 영향을 미쳤다고 AP 등 외신은 전했다. 산불로 식생이 사라진 유역에서는 빗물이 땅에 스며들기보다 빠르게 흘러내려 돌발홍수와 데브리스 플로우 위험을 높인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은 매년 450만~500만 명이 찾는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지난달 26일 네팔·중국(티베트) 국경 인근 랑탕리룽(7234m) 북면에서 발생한 빙하·암석 붕괴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보여준다. 출발점은 달랐다. 랑탕리룽은 산사면에서 떨어진 얼음과 암석이, 그랜드캐니언은 폭우가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좁고 깊은 계곡에 들어선 뒤 주변 물질을 끌어들이며 규모를 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랑탕리룽에서는 해발 약 5200m에서 떨어진 얼음·암석 덩어리가 계곡을 타고 내려가며 주변 퇴적물을 끌어들였다. 거대한 토석류로 변한 흐름은 약 22㎞를 이동해 중국 지룽 국경검문소까지 도달했다.
돌발홍수가 휩쓸고 간 그랜드캐니언의 브라이트 엔젤 크릭. [AP=연합뉴스]

돌발홍수가 휩쓸고 간 그랜드캐니언의 브라이트 엔젤 크릭. [AP=연합뉴스]

그랜드캐니언 사례가 트레커에게 주는 경고는 분명하다. 협곡에서는 내가 서 있는 곳의 날씨만 봐서는 안 된다. 상류에 내린 폭우가 좁은 계곡으로 집중되면 현지에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갑자기 거대한 물의 흐름이 밀려올 수 있다.

실제로 그랜드캐니언에서는 사고 지점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는데도 상류의 폭우로 발생한 홍수에 트레커가 휩쓸린 사고가 있었다. 1997년 9월 팬텀 크릭 유역을 걷던 트레커 3명이 갑자기 밀려온 물벽에 휩쓸려 2명이 숨졌다. 당시 세 사람은 물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 바위 뒤로 몸을 피했지만 거센 물살에 휩쓸렸다. 한 명은 살아남았지만 두 명은 숨졌다.

협곡에서 홍수의 위험은 비가 얼마나 내렸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상류에서 내린 비가 어떤 지형을 타고 내려오느냐가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평범한 소나기일지라도 그랜드캐니언 같은 좁고 깊은 협곡에서는 거대한 물의 흐름으로 변할 수 있다.

김영주 기자 [email protected]


김영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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