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에이스 이현중이 원맨쇼를 펼치며 한국 농구에 12년 만의 금메달을 안겼다. 대를 이어 아시아를 평정하는 진기록도 썼다.
한국은 20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에서 공·수에서 빛난 이현중의 활약에 힘입어 개최국이자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을 65-57로 물리쳤다. 포워드 이현중은 3점 슛 5개를 포함해 27점 18리바운드로 더블더블(2개 부문 두 자릿수 기록)을 기록했다. 준결승까지 이번 대회 5경기 평균인 23.4점(전체 2위)을 훌쩍 뛰어넘었다. 첫 종합 국제대회 출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하게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다.
여기에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와 끈질긴 수비를 무력화하는 시원시원한 외곽포로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이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이 33-32로 근소하게 앞서던 3쿼터 7분 30초여를 남기고 3점포를 터뜨려 36-32로 격차를 벌렸다. 41-39로 리드하던 3쿼터 5분30여 초를 남기고도 3점포를 꽂아 넣으며 44-39로 또 한 번 점수 차를 벌렸다.
승리를 확정한 뒤엔 기뻐하기보단 일본 선수들과 코치진을 찾아가 악수를 건네며 위로하는 ‘승자의 품격’도 보였다. 이후 그는 동료 품에 안겨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일본 리그에서 활약하며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 도전 중인 이현중은 일본-미국-한국을 오가며 누구보다 많은 이동거리를 소화하며 아시안게임을 준비했다.
승부처마다 신들린 3점포를 성공한 이현중(가운데). 연합뉴스
일본 수비를 돌파하는 이현중(오른쪽). 연합뉴스
이현중은 ‘모자(母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라는 진기록을 썼다. 그의 어머니 성정아 대한민국농구협회 이사는 삼천포여종고 1학년이던 1982년, 만 16세에 국가대표로 뽑힌 여자 농구 레전드 센터다.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다. 성정아는 1984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 이현중의 아버지 역시 농구인이다. NBA 센터 하승진을 길러낸 이윤환 삼일고 농구부 감독이다. 이현중은 이들 부모의 농구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성 이사는 일본 현지를 찾는 대신 한국에서 중계방송으로 아들의 경기를 챙겼다. 성 이사는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 “처음에는 조금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봤는데, 이제는 기우라는 생각이 든다”며 “현중이가 팀 내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하지만 금방 답을 찾아내 즐기면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고 대견해했다. 성 이사는 또 “제가 선수 시절에 탁월한 위치 선정으로 리바운드를 잡아낸 뒤, 지체 없이 빠르고 정확한 첫 패스를 찔러 넣는 아웃렛 패스 능력을 칭찬받았다”며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현중이가 코트에서 그대로 하는 걸 보면 유전자는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어 보였다.
어머니 성정아(오른쪽)의 대를 이어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 이현중. 중앙포토
1984 LA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 성정아(오른쪽)-아들이자 한국 대표팀 에이스인 이현중. 중앙포토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해외 생활을 이어가는 데 가장 큰 변수인 병역 문제를 해결한 이현중은 NBA 무대로 향하는 문도 활짝 열었다. 이달 초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최저 수준의 연봉을 받는 1년짜리 비보장 계약인 이그지빗 10(Exhibit 10) 계약을 체결, NBA행 희망을 살리면서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아 운신의 폭이 커졌다.
수퍼스타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가 다닌 미국 데이비드슨대에서 활약한 이현중은 NBA 문을 꾸준히 두드렸다. 2022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으나 지명은 받지 못한 그는 이듬해 골든스테이트 산하 G리그 구단인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 합류했고, 이후에도 다수 팀의 서머리그에 참가하며 NBA 입성을 노렸다. NBA 팀과의 계약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가운데 그는 실전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다른 외국 리그 생활도 이어왔다. 2025~26시즌엔 일본 B.리그 나가사키 벨카에서 뛰며 우승 주역이 됐다.
이후에도 이현중은 미국 도전을 이어오며 국가대표 일정을 병행해 바쁜 여름을 보냈다. 지난 7월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서머리그에 참가하고 귀국해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지난달엔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미니 캠프에 초청받아 다시 미국에 다녀온 뒤 아시안게임에 나섰다.
이현중은 경기 뒤 “정말 기쁘다. 무엇보다 우리 팀원들에게 감사하다. 한국에서 와주신 팬들의 목소리가 잘 들려서 힘들 때 힘이 됐다”고 했다. 눈물을 보였던 그는 “항상 우승하면 눈물이 나온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눈물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대표팀은 이날 차량이 배치되지 않아 오전 훈련을 하지 못했다. 이현중은 “황당하고 어이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전투력만 상승했다. 마줄스 감독이 흥분하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이야기했다
”며 “팬들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안주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한국 농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