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Clear
54.4°

2018.12.11(TUE)

[j Global] 반 년을 남자로 산 이 여자,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이혜리

[조인스] 기사입력 2011/01/14 18:23

“남자로 살면 좋을 줄 알았다 근데 그들 삶은 외롭고 괴로웠다”

6개월 동안 남장을 하고 다니던 2000년 모습(위)과 최근 모습.

6개월 동안 남장을 하고 다니던 2000년 모습(위)과 최근 모습.

이혜리(Helie Lee). 1990년대 후반부터 『할머니가 있는 풍경(Still Life with Rice)』 『태양 없는 곳에서(In the Absence of Sun)』 등 자신이 겪은 이산가족과 탈북자 문제를 논픽션 소설로 출간, 미국을 뒤흔든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한국인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엔 무대 위에 올랐다. 글로써만이 아니라 직접 관객과 호흡하며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연극 제목은 ‘나 같은 남자(Macho Like Me)’다. 6개월간 여성이란 사실을 숨긴 채 완전히 남자로 변신해 살았던 독특하고 실험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1인극이다. 곱상하고 가녀린 외모의 그녀가 남장을 한다고 누가 믿을까 생각되지만 사실이었다. ‘나 같은 남자’는 스포츠형 머리에 헐렁한 남자 옷을 입었던 그 시기의 기록이자 감상이다. 이씨는 이번 작품의 제작·극본·연기까지 1인 3역을 소화했다. LA 인근 샌타모니카 코스트플레이하우스에서 14일부터 시작된 공연은 다음 달 13일까지 이어진다.

글=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사진=LA중앙일보 김상진 기자

● 공연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입니다.

“처음엔 책을 쓰려고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제가 남자로 산 6개월간 찍었던 영상을 너무나 흥미롭게 보더라고요. 재미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다는 평가였어요. 이를 토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먼저 만들어 각종 영화제에 참석하게 됐고, 이어 라이브 쇼로도 제작하게 됐습니다. 전 훈련된 배우도 아닌 데다, 공연을 위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소설을 쓸 때와는 너무도 달라 힘든 점이 많았어요. 타이밍, 운율, 길이나 공간의 제약 등 고려해야 할 일도 많았죠. 소설을 쓸 땐 컴퓨터와 마주 앉아 혼자 작업하면 됐지만 공연을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야 한다는 점도 달랐고요. 하지만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남들은 평생 겪지 못할 경험과 느낌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공연에 임하게 됐습니다.”

● 왜 남자로 살아야 했나요.

“1997년 북한에 있는 친척들과의 접촉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때였어요(혜리씨는 할머니를 위해 북한에 있던 친척 9명을 탈북시켰다. 97년 8월 탈북 귀순한 이용운씨 가족이 그들이다. 이 과정을 다룬 그녀의 책과 이야기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비롯해 CNN, NBC, AP, LA타임스 등 미국 유수 언론에서 앞다퉈 소개했다). 당시 저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자립한 성인 여성이었는데도 많은 사람이 ‘남편이나 아버지를 데려오라’며 저를 무시했죠. 화도 났고 여성이기 때문에 얻지 못한 것들, 남자로 태어났다면 누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2000년에 실험을 감행하게 됐습니다.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머리를 깎고 남자 옷을 입은 채 남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거죠. 당시엔 아무도 저를 여자로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운전 중 경찰에게 정차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들도 면허증을 보기 전까진 제가 남자인 줄만 알았죠. ‘나 같은 남자’ 홈페이지(www.macholikeme.com)에 올라와 있는 짧은 영상을 보시면 당시 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렇다면 공연은 남자로 살 때 얻었던 특권들 얘기겠군요.

“정반대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럴 줄 알았어요. 하지만 6개월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남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괴로운 일인지를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됐습니다. 삶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언제나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가족이나 친구와 어울려 수다를 떠는 것도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남성들의 부담과 고립감, 그리고 이것을 이기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 같은 남자’는 이런 의외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남자로 사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무대에서 자세히 이야기하지만, 저는 6개월 동안 남자로서 플레이보이 맨션에도 가보고, 바에서 다른 여성에게 작업을 거는 친구들과도 어울리기도 했으며, 게이나 트랜스젠더처럼 행동해 보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인상 깊은 경험들이었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에피소드를 고르자면 다른 남자들과 농구경기를 했을 때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정말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고, 팀 플레이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충돌도 마다 않고, 마찰이 있었는데도 악수 한번으로 그 자리에서 끝내 버리는 남자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어요. 사실 사람들은 남자로 살았던 시간들이 흥미진진했을 거라고만 생각하는데, 저에겐 일종의 트라우마이기도 합니다. 여러 경험을 통해 많은 충격을 받았고 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고 남자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관계에도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됐지요.”

● 관객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내용의 일부를 맛보기 형식으로 몇 차례 시연해본 적이 있습니다. 짧은 데모 공연이었는데도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들 공감하고 재미있다고 칭찬해 주시더군요. 흥미로운 것은 결혼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하는 분들이 저를 찾아와 다음 공연 일정을 묻거나 공연 DVD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묻곤 한다는 점입니다. 남녀 간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죠. 데모 쇼를 보고 남편이나 아들, 아버지를 데리고 다시 공연장을 찾는 여성도 많았고, 남편과 별거 중이었는데 공연을 보고 다시 합쳤다는 친구도 있었어요. 여성들은 남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남성들에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과 아픔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 정체성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써 온 소설들은 모두 가족을 통해 나를 찾는 여정, 딸이란 존재로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 등을 다루고 있지요. 이번 연극도 여성으로서의 제 정체성에 관한 내용이고요. 하지만 정체성에 관한 관심은 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생을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제 작품활동도 그 연장선에 있을 뿐입니다.”

● ‘아메리카스 넥스트 톱 모델’ 등의 인기 리얼리티 쇼를 제작한 할리우드 유명 프로듀서이자 당신의 남편인 켄 목이 이번 작품의 총괄 제작을 맡았습니다. 남편과 함께 일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남편은 이 경험이 보다 나은 결혼 생활을 하는 데 너무도 큰 도움을 줬다며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둘 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고 서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만큼 함께 일하면서도 좋은 성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총괄 제작자의 자격으로 ‘예산이 초과됐다’고 저를 혼내거나 ‘극이 너무 길다’며 대본을 마구 수정할 때는 저도 모르게 화를 내기도 하죠.”

● 그간 소설과 강의에서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습니다. 최근의 한반도 상황도 주목하시나요.

“물론입니다. 특히 최근 상황을 보면 미국인들이 여전히 한반도 문제에 왜곡된 정보나 인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일례로 남편이 제작하는 ‘아메리카스 넥스트 톱 모델’의 다음 시즌 촬영지가 한국으로 예정돼 있다가 최근의 남북 긴장 때문에 무산됐습니다. 오랜 분단 역사와 정치적 상황 등에 대한 무지 때문에 한국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지역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해 아쉬웠습니다. 제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단체 중 ‘미국 교육자를 위한 한국 아카데미’(KAFE·The Korea Academy For Educators)라는 곳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들을 먼저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든 단체죠. 작품활동도 바쁘지만 7년째 계속하고 있는 KAFE 일도 절대 소홀히 할 수가 없겠단 생각이 든 요즘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LA를 시작으로 미국 타 도시에서도 ‘나 같은 남자’ 공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동안 작가로서 강연을 많이 다녀서인지 하버드·예일·프린스턴·스탠퍼드 등 유명 대학들과 각종 단체들이 이번 공연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준비 중입니다. 15개월 된 쌍둥이의 엄마로서, 늦은 나이에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나누고자 합니다.”

이혜리

서울에서 태어나 4세때 도미. UCLA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체험하고자 1년 동안 한국에서 영어학원 강사로도 일했다. NBC, CBS 등에서 스크립터, PD 등으로 일하다 1996년 첫 소설 『할머니가 있는 풍경』을 발표했다. 한국 분단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할머니 백홍용씨의 삶을 그린 논픽션으로 미국에서만 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혜리씨는 할머니의 구술을 담은 50여 개의 테이프를 자료로 옌볜과 베이징 등을 방문 취재해 소설을 썼다. 소설 출간 후 혜리씨는 자신의 책과 ‘북한에 있는 아들 이용운을 만나게 해달라’는 할머니의 편지를 유엔 주재 북한대사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북한 정부의 탄압을 받게 된 이용운씨 가족은 탈북을 결심, 97년 8월 압록강을 넘어 귀순했다. 혜리씨는 2002년 소설 『태양 없는 곳에서 』를 통해 이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 미국 출판계에 화제가 됐었다. 이어 혜리씨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이산가족의 고통과 탈북자들의 현실을 미국에 알리기도 했다.
..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