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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암벽여제' 김자인 "가슴 없어지지만…"

[조인스] 기사입력 2012/10/05 15:25

[사람 속으로] 스포츠클라이밍 세계 1위 김자인
암벽 타느라 어깨 넓어졌다고? … 잘 빠진 근육 얼마나 예쁜데요

지문이 거의 지워진 손가락과 곧게 펴지지 않는 발가락, 1m53㎝의 작은 키. 하지만 김자인은 누구보다도 빨리, 높게 오르기에 클라이밍의 여제로 불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br>

지문이 거의 지워진 손가락과 곧게 펴지지 않는 발가락, 1m53㎝의 작은 키. 하지만 김자인은 누구보다도 빨리, 높게 오르기에 클라이밍의 여제로 불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스포츠클라이밍은 비인기 종목이다.

미국 서부의 거벽에 도전하는 야심 찬 등반가들이 평소에도 클라이밍을 할 수 있도록 실내에 인공 암벽을 만들어 즐긴 데서 유래했다. 재미로 시작한 경기는 더 빨리, 더 어려운 루트를 오르는 경쟁적인 스포츠로 발전했다. 산악스키와 더불어 산악 활동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스포츠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국한돼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변방 취급을 받는다. 10여 년 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공 암벽을 앞다퉈 만들면서 인프라는 발전했다. 하지만 등록 선수는 1958명(2011년 기준), 동호회 저변도 10만여 명에 불과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여자부 세계 톱과 남자부 아시아 정상을 꿰차고 있다. 김자인(24·노스페이스)과 민현빈(23·노스페이스)이 그 주인공이다.

김자인은 올해로 3년째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시아 정상을 8년 동안 놓치지 않고 있다. 민현빈은 김자인에게 가려 덜 알려지긴 했지만 2010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올해까지 아시아 톱이며, 동양인 선수는 힘들다는 월드컵대회 결선에 단골로 출전하고 있는 선수다.

지난달 17일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공 암벽을 오르고 있는 김자인.<br>

지난달 17일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공 암벽을 오르고 있는 김자인.

굳은살이 잔뜩 박인 김자인의 손과 발.<br>

굳은살이 잔뜩 박인 김자인의 손과 발.

두 선수는 10년 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인공암장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 키가 작다. 김자인은 1m53㎝, 민현빈은 1m62㎝다. 손가락 몇 개로 홀드(벽을 올라갈 때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곳)에 매달린 채 체중을 이동시켜야 하는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짧은 팔다리는 치명적으로 불리하다. 장신의 유럽 선수들과 겨뤄야 하는 동양인 선수 입장에서는 ‘원숭이 앞의 다람쥐’ 격이다.

둘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이 주최하는 월드컵 4·5차 시리즈를 마치고 지난 2일 귀국했다. 월드컵은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10여 차례 치러진다. 오는 19일에는 전남 목포에서 제7차 월드컵이 열린다. 중국 월드컵을 위해 11일 또다시 출국해야 하는 두 선수를 4일 만났다.

신세대 클라이머는 패션부터 달랐다. 김자인은 물방울 프린트를 수놓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한껏 차려입은 여성스러운 패션이었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곧바로 스포츠클라이밍 경기 복장으로 갈아입어야만 했다. 민현빈도 베이지색 조끼를 받쳐 입은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들어왔다. 보통의 ‘산쟁이’와는 전혀 다른 복장이다. 손에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가 보물처럼 여기는 암벽 등반 신발을 쥐고 있었다.

민현빈

민현빈

●아기 신발 같네요.

민현빈:훈련할 때는 225㎜, 경기할 때는 220㎜를 신어요. 경기할 때는 아무래도 바짝 조여야 하니까. 암벽화는 양말을 안 신는데, 경기에 몰입하거나 긴장하게 되면 땀이 많이 나거든요. 운동화는 240㎜를 신었는데 지금은 235㎜예요. 자꾸 조이니까 발이 작아졌어요. 자인이는 205㎜를 신을걸요.

●손가락보다 발가락에 굳은살이 더 심하네요.

김자인:신발이 작기도 하고, 홀드에 발을 끼워 넣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저는 괜찮은 편이에요. 짬짬이 매니큐어도 칠하고. 노란색을 좋아해 노란색 매니큐어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클라이밍 오래 한 언니들은 정말 험해요.

●클라이밍을 많이 하면 아무래도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줄어들 것 같은데.

김:그런가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잘 빠진 근육을 가진 언니들을 보면 몸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매력 있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클라이밍을 오래 하면 당연히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도 없어지지만 대신 등 근육이라든가 남들이 갖지 못하는 몸을 가질 수 있어요. 저는 꾸미고 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운동 안 할 때는 화장도 예쁘게 하고 다녀요. 하늘거리는 원피스도 좋아하고. 클라이밍 한다고 해서 산쟁이 같은 복장은 아니에요. 저도 나름 스타일이 있어요.(웃음)

●그래서 사진기자가 매니큐어 지우는 게 좋다고 했을 때 안 지웠군요?

김:내가 보기엔 예쁜데. 제 발은 정말 예쁜 편이에요.

●훈련은 얼마나 해요.

김:저는 어려서부터 오빠들이랑 같이 운동을 했고 요즘도 큰오빠가 제 코치로 같이 운동해요. 하루에 5∼6시간 정도 하는 편이에요. 벽에 매달려 있는 시간만. 워밍업하고 그러면 거의 하루 종일이죠.

●악력이 얼마나 돼요?

김:50㎏ 정도? 보통 성인 남자가 30 정도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근데 악력은 엄지손가락이나 손가락의 중간 마디에 들어가는 힘이고, 스포츠클라이밍은 손가락 끝에 걸리는 힘이 더 중요해요. 홀드에 손가락을 살짝 걸거나 세운 뒤 그 힘으로 버텨야 하거든요.

●평소 체중 조절이 중요할 것 같아요.

김:늘 41∼42㎏을 유지해요. 전에는 체중 조절이 쉽지 않았어요. 한창 클 때였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일산에서 가족끼리 외식하고 들어오는 길에 자유로에서 내려 집까지 10㎞를 걸어온 적도 있어요. 모처럼 많이 먹었는데, 생각해 보니 도저히 안 되겠는 거예요. 차에서 내린다니까 가족들이 다 말렸는데 울면서 내려달라고 했어요. 요즘에는 체중 조절이 잘되는 편이에요. 밥은 ‘아점’ 한 번 먹고, 오후에 운동할 때는 음료수·과일만 먹고 더 이상 안 먹어요.

민:최근에 체중 조절에 실패해 애먹고 있어요. 시즌 중에는 49∼50㎏을 안 넘기려고 하는데, 2∼3㎏ 정도 쪄서 고생하고 있어요. 그래서 벨기에 월드컵과 미국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끼니를 굶거나 그러지는 않고요. 아침·저녁 두 끼 먹고, 오후에 운동 끝나고 음료수 마시고.

●술·담배도 안 하겠네요.

김:담배는 안 피우지만 술 마시는 건 좋아해요. 근데 시즌 중에는 마시고 싶어도 못하고 시즌 끝나면 하는 편이죠. 커피도 좋아하고요.

민:술하고 커피는 안 마셔요. 맛이 없잖아요. 담배는 시즌 중에는 안 하고.

●이번에 공항으로 들어올 때 기자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던데.

김: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전에도 우승 많이 했지만 기자들도 그렇고,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공항에 기자들이 10명 정도 나와 있으니까 좋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이제 스포츠클라이밍도 인기 스포츠가 된 걸까’ 이런 생각도 들고. 반면에 부담도 돼요. 스포츠클라이밍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 등반이 이제 과정보다는 결과로 평가를 받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김 선수는 ‘클라이밍의 여제(女帝)’로 불리던데.

김:음, 그 별명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불러주셔서 고맙고요. 현빈이는 중·고등학교 때 새처럼 가볍다고 해서 깃털로 불렸어요.

●10년 동안 곁에서 봐오면서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 잘 알 텐데. 어떤 점이 부럽나요.

민:자인이는 지구력이 좋아요. 스포츠클라이밍의 지구력은 훈련량에서 나오는데, 그만큼 열심히 한다는 뜻이겠죠. 유럽의 큰 선수들도 준결승·결승에 가면 절어요. 근데 자인이는 여유가 있거든요.

●‘절어요’는 인터넷상에서 자주 쓰는 ‘쩔어요’하고 같은 뜻인가요.

민:아니요, 힘들어 한다고요.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 가다가 벽에서 뚝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자인이는 안 그래요. 평소에는 얌전한데 벽에서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여제’ 소리 들을 만하지요.

김:현빈이는 신체 사이즈에 대한 핸디캡이 커요. 유럽 친구들도 여자는 저처럼 키 작은 선수가 꽤 있는데, 남자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 틈바구니에서 세계 톱클래스에 들어간 거니까 대단하죠. 또 손가락 힘이 정말 좋아요. 경기할 때 홀드를 못 잡을 것 같아 보이는데 귀신같이 잡더라고요. 벽에서 퉁겨나가듯 팔을 뻗어 멀리 있는 홀드를 잡는 탄력이 대단해요. 평소 훈련 때도 홀드에 매달려 턱걸이를 10개씩 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점이 부러웠어요.

●언제가 가장 짜릿했나요.

김:루트를 완등했을 때는 매번 좋아요. 스포츠클라이밍은 예선·준결승·결승 이렇게 매번 루트가 달라지는데 갈수록 힘들거든요. 결승에서는 대개 완등이 어려울 정도로 루트를 세팅해요. 그 문제를 모두 풀고 마지막 홀드까지 갔을 때가 가장 짜릿해요. 그리고 10년 이상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다 보니까 암벽에 매달려 있을 때 가장 나답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가 가장 자신감 있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2010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입니다. 당시엔 아시아에도 강한 상대가 많았는데 어렵게 우승했거든요. 단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스포츠클라이머로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돼서 좋았어요. 경기 끝나고 호텔 방에 가서 창문 열어 놓고 소리를 한번 꽥 질렀죠.

●김 선수는 남자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죠.

김:정식 경기는 아니었고, 번외 경기로 2010년 노스페이스컵 남자부에 출전한 적이 있어요. 남녀 선수들이 한데 섞여서 경쟁하는 대회가 있다면 참가해 보고 싶어요. 어렸을 적부터 오빠들과 같이 훈련해서 낯설지 않아요. 또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기도 하고.

●인공 암벽 말고 알프스나 히말라야의 거벽을 오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김:전에는 스포츠클라이밍만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자연 암벽도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엔 클라이머인 아빠 엄마랑 같이 전북 선운산의 난이도 14급쯤 되는 암벽에 오른 적이 있어요.

민:저도 유럽에 가서 알프스나 유럽의 산을 보고 있으면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언젠가는 도전할 겁니다.

●다음 주 열리는 전국체전에 스포츠클라이밍이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데.

민:정식 종목은 내년부터예요. 저희는 중국 월드컵 때문에 출전하지 못하고요. 내년에 스케줄이 맞으면 나갈 생각입니다. 스포츠클라이밍 관람도 재미있는데, 아직 방송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유럽에서 경기를 하면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모이거든요. 우리도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경기를 해서 야구나 축구처럼 관람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김: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의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이 2020년 올림픽 후보 종목에 선정됐어요. 올림픽이 흥미진진한 경기를 우대하는 흐름이라 정식 종목이 될 가능성이 있대요. 그렇게 되면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어요. 2020년이면 제가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이긴 한데, 사실 그때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유럽에서는 서른 넘어서까지 하는 선수가 꽤 있거든요. 열심히 운동해서 꼭 이루고 싶어요.

민:저도 올림픽에 나가는 게 꿈이에요. 저도 그때엔 서른이 넘는데 올림픽을 위해 그때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싶어요.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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