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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카페] “수묵화 한 폭과 같은 풍경을 담은 시”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3/22 07:19

‘상쾌한 들꽃 감성’ 김행자 시인

“나에게 소박한 산골 동네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게 지금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문학회 특강 자리에서 들었던 이 한마디가 귓전에 걸려 며칠 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니 분명 이 시인의 감성엔 깊숙한 추억이 스며 있는 듯했다. 인터뷰를 위해 단둘이 마주 앉은 자리. 산골 동네를 예감하고 만난 것에 비해 세련된 폼으로 나타난 시인. 의외의 궁합에 시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자극됐다.

숙명여대 1학년 때 신춘문예 당선.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시인에 대한 정보다.“숙대 국문과 졸업하신 거죠?”“아뇨? 숙대 약학과 졸업했어요.” 아차. 일찌감치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하니 당연히 문학도로 착각하는 실수부터 범했다.

김행자 시인의 본디 직업은 약사다. 시인과 약사의 끈은 꿈과 생업 정도로 묶으면 된단다. 김 시인은 “저희 집안이 아들 다섯에 딸 넷, 9남매예요. 아버지가 생업을 위해서는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고 아들은 모두 공대로, 딸은 간호대·약대·교대로 보냈다”고 전했다. 그렇게 약사가 되어 결혼을 하고 1976년, 미국에서 약사가 귀하던 시절 약사 직업을 그대로 안고 온 가족이 이민을 왔다. 한국서 아무리 귀한 일을 하다가 와도 제 직업을 버리고 상상조차 힘들게 이민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아버지의 혜안은 지금 생각해도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라 생각한단다.

생업은 그렇고, 그럼 글과의 인연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때는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책과 글을 좋아도 했거니와, 이를 알아본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머들령 문학회’를 소개하면서 ‘시인 김행자’로서의 본격적인 문학 행로가 시작됐다. 머들령 문학회는 충청 시단의 선구자로 불리는 ‘소정 정훈 시인’이 1960년 그의 집에서 발족한 문학 모임으로 당시 대전 시내에서 문학 하는 학생들은 중고등 청소년까지 드나들며 공부, 수많은 문인이 배출돼 주목 받은 문학 동인회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김 시인은 “대학시절보다 고등학교 때 이 문학회 활동을 통해 정말 많은 습작과 합평회를 거치면서 내 글이 성장기를 맞았던 것 같다”며 “이때가 나의 문학적 감성 폭발기로 기억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탄탄하게 갈고 닦은 실력으로 김행자 시인은 1968년 대학 1학년의 이른 나이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좋겠어요, 소녀는’이 당선되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정작 첫 시집 <눈감으면 그대>는 이로부터 27년 뒤인 1995년 발간, 두 번째 시집 <몸 속의 달>은 또다시 10년쯤 뒤인 2004년 발간됐다. 시인으로 살아온 50여 년의 세월에 단 두 권의 시집. 이를 두고 김 시인은 “그동안 생업과 육아, 습작.. 세 다리를 걸쳐 작품활동을 했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시는, 고여야 세상 밖으로 탄생할 수 있는 감성의 결정체 같은 것”이라며 “고이고 고여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집으로 엮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시인의 시집을 펼쳐본다. 두 번째 시집 가장 첫 페이지에 쓰여진 글귀 “한때 나를 일으켜 준 삶의 흔적들을 묶어 두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나는 자꾸 부끄럽다. 아. 삶도 그렇게 깊을 수 있다면.”

책 속 김행자 시인의 시에서는 유난히 ‘호박꽃, 선인장, 목련꽃 나무, 병든 사과나무, 들꽃, 오동나무, 장미꽃’ 등 자연의 소재가 눈에 도드라지게 박힌다. 그러고 보니 김 시인의 고향이 충북 영동이라 했던가! 고향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더니 그보다 더 큰마음의 고향 풍경이 쏟아져 펼쳐진다. 김 시인은 “충북 도가실 마을 가는 길은 버스에서 내려 황톳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유원지를 지나, 독골재라는 고개에서 쉬엄쉬엄 한참을 가면 어둑한 밤이 돼서야 할머니 집에 도착하는데, 할머니 집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바람이 불면 스산한 소리가 빚어지고, 집 뒤로 물방앗간에 있는 웅덩이에는 새파랗다 못해 검푸르게 바닥을 비추는 투명한 물빛이 고여있는 한 편의 수묵화 같은 풍경”이었다며 아직도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풀어도 풀어도 끝없이 나오는 충만한 감성이 금세 터져버릴 것 같다. “두 번째 시집 이후 13년이 지났는데, 이제 또 한 권 낼 때 되지 않으셨어요?” 질문에 김 시인의 답변은 무척 견고하다. “서정춘 시인은 등단 30년 만에 첫 시집을 냈어요. 그때 그분이 전하더라고요. ‘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이 되어야지,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고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덧붙인다. “시는 하나님이 숨겨둔 신비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평생을 찾아도 다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 죽는 날까지 써야죠. 안 쓰면 안 되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수첩을 덮으며 스쳐 들은 말이 더욱 깊은 여운으로 머리를 맴돈다. ‘안 쓰면 안 되니까, 죽는 날까지……”


숲에 가면

사는 것이 울적해지면
숲으로 가네
마음은 먼저가 흰 들꽃
따라 눕고 비릿한 젖 내음
발목을 타고 오르네
숲에 가면 초록이
온통 나를 빨아들여
존재의 빈 껍데기만 남네
오 너희들은
보이지 않는 나의 힘
밤마다 비명도 없이
어린 잎들을
틔워 내고 착하게 살아
있는 것들을
보듬어 안네
사는 것이 울적해지면
숲으로 이사 가고 싶네
숲에 가서
길을 잃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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