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카페]일상과 문학의 이중주, 박숙자 소설가
“이슬 맺힌 커피 한 잔에 인생 한 스푼”
“시, 소설, 수필. 장르도 많은데 왜 하필 소설을 택하셨죠?” 아주 기본적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박 소설가는 “시는 생각 날 때마다 단편적으로 쓰면 되니 손쉬운 반면 화장하듯 예쁘게 꾸미고 단장해 줘야 하는데 다소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소설은 오랜 시간 잘 구성해야 하는 인내가 필요한 대신 내가 가진 창의적인 생각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서 쉽고 좋더라고요.” 제대로 된 궁합을 만나 어려움마저 즐거움이라 말할 수 있으니 박 소설가는 인생에 소설과의 만남을 남편 이상의 ‘인연’이라 표한다.
박숙자 소설가는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다가 영 흥미가 붙지 않아 독성학자의 길을 택했다. 1969년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FDA에서 22년간 의약품 안전성을 심사하는 독성학자로 활약했다. 생리학을 공부하면 무궁무진한 평형상태가 너무 신비스러워 흠뻑 빠져들고, 자연과학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는 박 소설가. 그럼 문학은 대체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
박 소설가는 “태생적으로 글 쓰는데 멍에를 짊어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신문이나 책 등 글로 된 건 죄다 읽을 정도로 글을 좋아했고,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들이 입버릇처럼 ‘너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냥 가볍게 생각해봐도 정말 하고 싶은 건 글 쓰는 거구나 싶으니 멍에가 맞는 거죠?”라며 특유의 투명한 미소로 나머지 답을 대신한다.
아이 셋을 키우며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 간간이 글을 쓰긴 했지만 사실 생업에 소홀할 수는 없는 일.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늘 마음에 체기 가득했던 문학의 열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단다.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그리고 일하면서 틈틈이 정말 열심히 썼다고 회상한다. 박 소설가는 “아직도 매일 새벽 3~4시면 일어나서 이슬 맺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써요. 그 순도 100%의 맑은 순간이 내 인생 전체를 행복으로 채워주는 정점이 아닐까 싶다”며 벅찬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한 열정을 담아 쓴 박 소설가의 첫 소설집은『River Junction』이라는 영문판으로 2015년 출간됐다. 왜 하필 영문판부터일까라는 의문이 들 찰나, 박 소설가는 “지금도 영어권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북한이냐 남한이냐를 묻고 뉴스에서 본 북한의 화제를 먼저 물어온다”며 “50년 가까운 세월을 미국에서 살아온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감성을 담은 내 글을 통해 이민자의 삶과 미국인의 삶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영문 소설집 출간 딱 1년 만에 한글판 <두물머리> 를 출간한 박숙자 소설가. 이번에는 본인의 의도를 그대로 담고 싶어 직접 번역에 편집까지 하는 열성을 담았다. 박 소설가는 “이민 1.5세대와 2세대는 꼭 이 두 권의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아마존에서 ‘River Junction, 두물머리’를 검색해 살짝 들춰봐 주는 관심을 주면 참 좋겠다”고 거듭 당부한다.
인터뷰 내내 내비친 숨길 수 없는 박 소설가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문학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비롯됐을지 못내 궁금했다. 박 소설가는 “자라면서 하도 글 읽기도 쓰기도 좋아하니 부모님이 ‘평생 글을 쓰는데 대체 책은 언제 나오냐’고 물으셨는데 생전에 보여드리지 못한 게 속상하다”며 “내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어주실 분이 부모님이라 생각하면 내가 글을 쓴다는 게 그렇게… 행복하네요”라며 또 한 번 수줍은 미소로 답한다. ‘딸의 책 출판을 기다리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영전에 올립니다.’ 소설가의 책 첫 페이지에 담긴 멍울진 마음이 천리향을 타고 하늘에 닿았기를 바라며 시선이 자꾸 하늘로 향한다.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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