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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미쳤던' 밀입국 소녀

[LA중앙일보] 발행 2008/03/08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8/03/07 16:01

수잔 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전문의

애리조나 사막을 통해 밀입국 하려던 소녀는 이민국 국경수비대원에게 들켰다고 한다. 함께 붙잡힌 삼촌은 곧장 엘살바도르에 있는 고향집으로 보내졌고 소녀는 두달간을 대기소(?)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LA에 살고 있는 오빠집으로 보내졌다. 결국 엄마가 원하던대로 소녀는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숱한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채….

성인인 오빠와 소셜워커를 따라 USC 의과대학 정신과를 찾아 온 소녀는 15세라는 나이에 비해 훨씬 가녀리고 어려 보였다. 영어를 전혀 못하지만 소셜워커의 통역을 통해 또렷하게 정신과 수련의사의 질문에 답했다. 그 옆에 앉아서 수련의를 관찰하는 나에게 별 저항도 없이.

소녀의 정신적 문제는 사랑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12세 때부터 였다고 한다. 가끔 할머니의 얼굴이 거울에 보이고 할머니의 음성이 귀에 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소녀가 '미쳤다'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어느날 저를 겁탈했어요. 그리고 누구에게 이야기하면 우리 식구를 모두 죽인다고 겁을 주었지요. 게다가 제가 미쳤으니까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13세에 임신이 된 소녀는 딸을 낳아 엄마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이웃 남자'의 협박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가 생각한 길은 미국으로의 밀입국이었단다. 이민국 대기소에서 두 달을 억류돼 있는 동안 소녀는 다시 할머니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너는 죽어야 돼!"라고.

이민국 관리들이 보내주어서 만난 정신과 의사는 항정신제 약을 처방해주었는데 차츰 환청이 사라지고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늘 여기에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환자의 병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측정해 보려는 수련의사의 사려깊은 질문이다. "제가 쓰던 약과 똑같은 것을 받아 치료 받으려고요." 한 점 부끄러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소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또렷이 밝혔다.

"그리고 학교에도 빨리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누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인지 소녀는 자신이 'Strong Case'(문제없이 이 곳에서 살 수 있음을 뜻함) 라며 추방당할 걱정은 없는 듯했다. 수련의인 닥터 A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신병 환자인 경우 어떤 이민법 조항이 적용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USC 의과대학 교수와 수련의들이 치료를 담당하는 이곳 LA 카운티 병원에는 이처럼 불법 이민자들이 많이 온다. 그들의 배경에는 이 소녀처럼 숱한 마음의 상처(가족과의 이별 육체적이나 성적인 학대 등)들이 아물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게다가 이 환자처럼 우울증 증상이 심해 '미쳤던' 경우에는 병이 재발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정신분열증같은 정신병에 사용하는 항정신제가 이런 경우에도 효과가 크다.

흔히 '미쳤다'(crazy)고 부르는 정신증세는 자신의 생각과 현실세계를 혼동하는 상태다. 그러니 술이나 마약의 남용 또는 이 물질을 갑자기 끊을 때 오는 금단현상 심한 우울증이나 조울증에도 올 수 있다. 그래서 '미친 사람'을 보면 우선 원인을 찾는 감별진단을 해야 한다. 그 후에는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 그 결과는 아주 좋다. 현대 의학의 찬란한 발전이다.

이 소녀가 복용했던 '아빌리파이'(Abilify)도 그런 약품종류의 하나다. 이제 다시 약을 계속 쓰며 소셜워커의 주선으로 상담을 받고 학교에 입학할 꿈에 소녀는 미소를 짓는다. 환자를 추방하는 대신 치료를 받게 해 준 인정많은 사회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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