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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 신의 숙제

오린은 부싯돌을 집어 들었다. 입을 벌리고 아래위 앞니를 부싯돌로 딱딱 쪼아댔다. 단단한 생이빨을 두드려 망가뜨리려 하는 것이다. 후까사와 시찌로가 『나라야마 부시고』를 발표했을 때 일본 문단은 “우리는 이런 소설을 50년 기다렸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 신주, 첩첩 산골짜기 작은 촌락, 예순아홉의 오린은 20년 전 남편을 잃고 외아들과 같이 살아왔다. 정월이 오면 그녀는 줄 참나무 산으로 올라가려 한다.

해가 바뀌면 가능한 한 빨리 아들 지게에 올라 산으로 버려지러 가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멀쩡한 이를 뽑아내며 늙은이 시늉을 한다. 줄참나무산은 일곱 골짜기와 세 개의 못을 지나야 한다. 사람들은 거기 하나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오린은 산에 오르기 전 동네 사람들에게 대접할 술도 장만했고 산에서 깔고 앉을 깔판도 3년 전 이미 만들어 두었다.

마지막 날 밤 술 대접엔 산에 다녀온 사람만을 초대한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산으로 갈 때 꼭 지켜야 할 일들을 한 가지씩 일러둔다. 첫째 산에 가거든 말을 절대 하지 마세요, 둘째 집을 나설 때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떠나야 합니다, 셋째 부모를 산에 두고 돌아올 땐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산에 오르는 날 눈이 오면 행운이라 했다. 몹시 춥고 어두운 밤, 아들 닷배는 엄마 오린을 등판에 앉히고 떠났다. 몇 개의 계곡을 넘고 못을 돌아 줄참나무산까지 거의 다 왔다고 짐작되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해골들이 하얗게 깔린 게 보였다.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이 갓 죽은 사람도 있었다.

엄마는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발을 굴렀다. 내려놓으라는 독촉이었다. 빈 바위 옆에 내려진 오린, 그녀의 얼굴엔 이미 죽은 이의 모습이 어려 있었다. 오린은 아들의 몸을 지금까지 왔던 쪽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아들의 등을 왈칵 떠밀었다. 아들은 걷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면 안 된다기에 그냥 걸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비틀비틀 산에서 내려오는 아들의 눈에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줄참나무 사이로 눈이 내리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 아!” 하고 소리 지르며 산의 예법을 어기고 엄마가 있는 산을 향해 달렸다. “엄마! 눈이 와요, 눈이 와요, 엄마 춥지요?” 엄마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내려가라고, 돌아가라고. 결핍 속에 살아남기 위한 질서가 이렇게도 눈물겹고 아름답다.

날이 갈수록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 희대의 살인마가 나타나 노인 260명을 몰살시키겠다고 공언을 하고, 19명 노인을 흉기로 살해하고 26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일이 있었다. 심각한 가족해체가 고장 난 세상을 알리는 것 같다.

한국도 별 차이 없이 이런 길로 가고 있나 보다. 시설이 부실한 양로원에서 불이 나 질식사한 노인이 한둘이 아닌가 하면, 얼마 전엔 치매 부모를 감당하기 어려워 집에 불을 지른 자식이 있었다. 몇 년 전엔 DC에서 84세의 아버지를 총기로 살해하고 자살한 54세의 딸 얘기도 있었다. 유난히도 사이좋았던 부녀, 그러나 알츠하이머의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어 함께 생을 마감한 딸, 미국판 『나라야마 부시고』가 아닐까. 먹을 것을 아끼느라 70이 되면 스스로 산에 오르던 시대는 갔다. 그러나 달라진 게 무얼까. 노인은 더 외로워져 갈 뿐이다. 신의 숙제가 무겁기만 하다.

김령/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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