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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촌 건설 위해 필리핀 방문에 나선 도산

[LA중앙일보] 발행 2018/02/05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8/02/04 14:04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도산 공화국(20)

도산의 비교적 말년 사진. 왼쪽부터 몽양 여운형,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도산의 비교적 말년 사진. 왼쪽부터 몽양 여운형,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하와이 체류 불허로 6시간 만에 떠나
부인 이혜련 여사와는 마지막 작별

미국 이민국과 달리 호주는 편견 없어
상해서도 한인들의 열렬한 환영 받아

마지막 이별


샌프란시스코 엔젤 섬 1926년 2월 23일자 이민국 문서 (12025/14120) 역시 "중국인 도산 안창호가 소노마호에 승선한 것을 사진과 함께 확인했다"고 쓰고 있다.

또한 같은 문서 밑에 "1926년 2월 23일 이 항구를 출발했다가 수리하기 위해 돌아왔으며 1926년 3월 2일 떠났다"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따라서 안창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926년 2월 23일 소노마호를 타고 출항했다고 배가 고장 나서 회항하고 1926년 3월 2일 다시 출발하여 1926년 3월 8일 하와이에 도착한 것이다.

'신한민보' 1926년 3월 4일자 기사에서는 '안 도산 또 다시 발정(發程). 기선의 프로펠러가 상하여서'라는 제목으로 그의 귀항 소식을 전하고 있다.

"도산 안창호씨는 그 선편으로 떠난 후 약 600마일의 항해를 한 뒤에 그 배의 프로펠러 한 개가 상하여 물 속으로 떨어진 바 오직 남아있는 한 개의 프로펠러로써 중양 만 리의 항해를 계속하기 불능인 고로, 다시 회정하여 상항 만에 도착하여 그 프로펠러를 수선하여 가지고 떠나셨다. 안 도산이 600해리의 여행을 하고 회환하게 됨은 이상과 같거니와, 그 소식을 들은 안 부인 혜련 씨는 원래 상항까지 와서 그 가장을 전송하려고 하였으나 안 도산의 권고로 인하여 문 앞에서 멀리 떠나시는 이에게 '굿바이'를 고한 후 항상 서운한 마음이 산같이 쌓였든 차에 기선의 무엇이 상하여 회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금 2일에 상항에 안착하여 동양으로 떠나는 배 머리에서 전별을 고하게 되었다. 때는 정히 달밤이었다. 전기등과 달빛이 휘황한 부두에서 가시는 이와 보내는 이들이 서로 서로 이별을 아쉬워하매 수십 줄기의 색종이 실을 맞쥐고 사랑의 정을 전하였다. 그러나 사정없는 기적 소리를 좇아 그 종이 줄이 툭툭 끊어지며 뱃머리가 금문 만 어구를 향할 때에 송별인 일동의 오직 행동은 갓 벗어내어 두르기와 손수건 흔드는 것인데 그중 안 부인은 섭섭한 정에 못 이기는 목소리로 '평안히 가십시오! 평안히 가십시오!' 하매 가시는 안 선생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쉴 새 없이 햇(모자)만 두르더라."

이처럼 '신한민보'는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여사의 마지막 송별 모습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이혜련 여사의 목 메이는 "평안히 가십시오"가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여사의 마지막 대화이며 이제 영영 다시 보지 못하는 이별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창호는 원래 하와이에 도착 후 약 2주간 체류하면서 동포들과 만나고 상해로 출발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김형찬은 "안창호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갈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민국 직원이 '흥사단은 나쁜 조직이고 나쁜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하와이에 체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민국 직원이 그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증빙 서류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이번 연구로 밝혀졌다. 콩 왕과 찰스 홍 이가 이민국에 제출한 투서로 안창호에 대한 이민국 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안창호 신분이 최종적으로 '유보'되었다. 그리고 비자가 만기되자 추방당한 것이다.

'신한민보' 역시 도산 안창호가 하와이 도착 후 동포들과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민국에서 2주간의 체류를 허가하지 않아 부득이 그날 바로 떠났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신한민보' 1926년 3월 25일자 기사에 '안도산 6시간 호항에 하륙 후'라는 제목으로 "안창호 씨는 금월 8일 하오 4시경에 호항에 안착하였는데, (안창호) 씨의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 당지 독립단에서는 만찬회와 환영회를 준비하였으나, 불행히 당지 이민국에서 씨의 예정하였던 2주 동안 체류하려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므로 사세 부득이 당일로 떠나게 된바 그 날 저녁에 호항 감리교 예배당에서 약 150명이 모인 청중에게 약 한 시간 반 동안 연설한 후에 섭섭히 작별하였다는데, 그때는 시간은 동 하오 10시라 하였더라"고 쓰고 있다.

소노마호 승선 기록에도 소노마 호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로 계속 항해라는 문구가 필기체로 적혀 있다. 즉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서 안창호가 하와이에 체류하는 것을 불허하고 같은 배로 미국 영토를 떠나야 한다고 명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안창호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부득이 오스트레일리아로 강제로 출국되었는데 도산 안창호가 1926년 3월 25일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다고 '신한민보'는 1926년 4월 29일에 보도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3월 25일에 오스트레일리아에 무사 안착하였다는 통신이 있는데 거기에서 동양 양반에게 좀 관대함인지 상륙할 때에 이민국에서 '빤'도 요구하지 않으며 또한 관리의 검사도 심하지 아니하여 차별적 대우의 태도가 미국에 비하야 적은 듯하다고 하였고 선생은 금월 14일 선편으로나 28일 선편으로 중국에 건너갈 예정이라 하였더라."

미국 이민국에서 조사를 받고 추방당한 것과 비교하여 오스트레일리아 관리들이 상대적으로 편견과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는 보도는 안창호가 미국 이민국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창호는 5월 20일쯤 상해에 도착한 듯하다. '신한민보'는 1926년 6월 24일에 도산 안창호 환영회가 1926년 5월 22일 개최되었다고 보도했다. '안도산 환영회'라는 제목으로 "5월 22일 밤 여덟 시에 상해에 있는 동포들은 3.1당에 모여서 민단장 조상섭 씨의 사회로 도산 안 선생의 환영회를 열었는데, 꽃다운 어린 학생들의 환영가 속에서 화환을 드렸으며, 이어 선생의 열열한 연설이 잇따르니 만장한 청중은 모두 쾌한 느낌이 있었다더라. 5월23일 상해서"라고 보도했다.

안 도산은 상해에 체류하면서 임시정부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을 처리하고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고 이상촌 건설을 위해 필리핀을 순방하고 왔다. '신한민보'는 도산 안창호의 필리핀 순방을 여러 번 보도했다.

'신한민보'는 1929년 2월 21일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지난 달 그믐께 필리핀 마닐라에 거류하는 동포들의 청요함을 받고, 당지에 전왕하였다가 약 1주 후에 중국 모처로 회정할 예정이라더라"고 보도했다.

또한 '신한민보'는 1929년 5월 16일에 '안도산은 중국 모방면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필리핀 순방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도산 선생께서는 이곳에 오신지 50여 일 동안 그 섬 북부에 거류하는 동포들을 심방하는 동시에 이곳 사람들의 사는 정황도 대강 시찰하고 그 경비 문제로 동포에게 손해가 될까 근심하시고 3월 30일 출발하는 선편으로 일반 재류 동포들의 뜨거운 송별에서 떠나 중국 모방면을 향하셨다더라. 본사 필리핀 통신."

<21회로 계속>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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