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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마이 코리안 델리

이소영 / 언론인, VA거주
이소영 / 언론인, VA거주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2/05 07:22

‘전형적인’을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부류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전형적이라는 표현을 미국에서 쓸 수 있을까? 인종과 민족이 복잡하게 뒤얽힌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는 ‘전형적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사람 사는 모습이 다양할 뿐이다.

여기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인 장모와 함께 살며 뉴욕에서 편의점을 동업하게 된 백인 사위의 경험담 <마이 코리안 델리>(사진)이다. 문예 계간지 ‘파리 리뷰’ 편집자로 일하는 벤 라이더 하우와 그의 아내 개브는 몇 달만 처가에서 살다 나올 작정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8년 동안 처가 지하방에 얹혀살았다. 생계를 위해 장모와 함께 델리(deli, 잡화점)를 운영하기로 하면서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은 폭발한다.

벤이 자란 배경은 아내, 장모가 자란 배경과 분명 다르다. 벤은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s)라 불리는 백인 청교도 중산층 출신이다. 그 옛날 종교개혁의 뜻을 품고 신대륙에 정착한 선조의 사고를 그대로 따르는, 본인 말마따나 “모든 결정의 순간마다 우주적 의미를 고려하는, 어쩔 수 없는 과민증 부르주아 자기애와 과잉 교육의 결과물”로 자라났다. 그의 장모 케이는 고상한 사위와 대조를 이룬다. 조상님 때문이 아닌 성공을 위해 제 발로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 온 그녀는 한번 결정 내리면 결코 후회하거나 속상해하는 일이 없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그 둘이 꾸려가는 델리 사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게 자리를 어디로 할지, 어떤 물건을 팔지 결정하는 것부터 엇박자투성이였다. 벤은 ‘델리계의 스타벅스’를 꿈꾸며 덜 팔리더라도 비싸고 고급스러운 상품을 들여놓기를 원한다. 현실주의자 케이는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는 ‘월마트식’ 영업을 고집한다. 게다가 돈에 별 관심이 없는 벤을 향해 장모는 왜 우리를 가난뱅이로 만들려 하냐고 소리친다. 결국 델리 사업은 장모 케이가 승리한다. 장모 특유의 사업수완을 셈에 어두운 벤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사위 눈에 비친 장모는 완벽한 슈퍼우먼이다. 성실한 딸, 아내, 어머니 노릇을 하면서 힘든 일까지 하는 것으론 성에 안 차나? 친척들을 위해 집을 하숙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꽃꽂이 수강에, 교회 성경 교사에, 한국 음식 요리 비법 숙달까지 동시에 해치워야만 만족하는 건가? 한국 여자들은 다 이런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런 한국인 장모와 공존해가는 미국 사위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다.이민자로서 스스로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던 장모 인생도, 그런 장모와 부대끼면서 적응해가는 사위 인생도 짠하다.

벤은 직업이 두 개다. 낮에는 맨해튼 한복판에서 문예지 편집자로 일하고, 저녁에는 브루클린 델리로 다시 출근한다. 같은 뉴욕이어도 맨해튼과 브루클린은 강북과 강남 이상의 차이가 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고상한 출판계와 보럼힐의 ‘순수한 투쟁의 세계’를 오가며 벤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벤에게 그저 낯설고 피곤하기만 했던 처가의 생존 정신은 동지애로 발전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이민자들의 억척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비하했다고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벤은 자신이 속한 미국 중산층 또한 자기비하식 유머로 솔직하게 꼬집는다. 처가 식구들을 묘사하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얼마나 애정과 관심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로 대표되는 뉴욕에서 미국 사회의 오랜 숙제인 인종, 문화 갈등을 재미있게 그려낸 점도 흥미롭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소재가 아닌 벤이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좁은 가게 안에서 부딪치는 괴짜 죽돌이 단골들과의 기 싸움, 조폭 같은 도매상과의 줄다리기 거래 등 매일 이어지는 사건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벤은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절대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어쩔 수 없는 백인 청교도 중산층이며, 그저 다름을 인정하는 넓은 시선을 키웠을 뿐이다. 애초에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는 결론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인정과 공존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남겼다. 언론인 P.J. 오루크의 말처럼 이 평범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가 벤의 손을 통해 ‘세속적 재료(델리)를 톡 쏘는 양념(한국인 처가)으로 버무려 자연스럽게 발효(맨해튼의 문학)’시킨 김치 같은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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