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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0마일 대종주' PCT를 가다] '버리지 못하면 내가 버려지는 길'

[LA중앙일보] 발행 2018/08/22 미주판 1면 기사입력 2018/08/21 23:18

PCT 하이커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외롭게 돌산을 지나고 있다. 하이커들은 하루에 8시간에서 최대 12시간 가령 걸어야 10월까지 캐나다 국경지대에 도달할 수 있다.

PCT 하이커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외롭게 돌산을 지나고 있다. 하이커들은 하루에 8시간에서 최대 12시간 가령 걸어야 10월까지 캐나다 국경지대에 도달할 수 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결혼한 박준식(왼쪽) 손지윤(오른쪽) 부부는 PCT에서 5개월 째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결혼한 박준식(왼쪽) 손지윤(오른쪽) 부부는 PCT에서 5개월 째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다.

올해 도전한 한인들 3배 증가
휴학·퇴직·사업가·신혼부부도

하이킹은 짐 덜어내는 과정
몽당 칫솔·절반 매트리스

자원봉사자 '트레일 엔젤'
도전자들에겐 기적과 응원


총 연장 2650마일. PCT(Pacific Crest Trail)는 4월 중순 캘리포니아 남쪽 국경지대인 캠포(Campo)를 출발해 캐나다 국경지대인 매닝 파크(Manning Park)까지 종주하는 장거리 하이킹 코스다. 미 중부를 가로지르는 CDT(Continental Divide Trail)와 함께 미 3대 트레일로 꼽힌다. 유럽 청년들에게 먼저 알려진 뒤 2015년 셰릴 스트레이드 작가가 쓴 PCT 여행기 ‘와일드(Wild)’가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하면서 한인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유명세를 타면서 한인 도전자들이 지난해 십여 명에서 올해 50명 가까이 급증했다. 이들을 포틀랜드 인근 케스케이드록스에 열린 ‘PCTDAYS’에서 만났다. PCTDAYS는 하이커들이 전체구간의 약 3분 2가 끝나는 지점에서 모여 휴식과 재정비를 하는 축제장이다.


말갛던 피부가 잘 익은 밤색이다. 하이킹을 떠나기 전 4월 초에 만난 조아라(29)씨는 그 사이 몸무게가 8킬로그램 이상 빠졌다. 마라토너 같다.

아라씨는 얼마 전까지 서울에 있는 여행사에서 영상제작일을 하다 사표를 던졌다. 영상 제작은 좋아했지만 광고를 따야 하고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일이 버거웠다. 살도 찌고 급기야 심장에도 무리가 갔다.

아라씨는 “자연을 좋아했어요. 히말라야 트레킹도 해봤고요. 그러다 영화 와일드를 보고 PCT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도전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이킹은 덜어내는 일이다. 하이커들은 짐을 최소화해야 오래 걸을 수 있다. 작은 무게라도 주행 거리가 길어지면 다리와 허리에 무리가 간다.

갈아입을 셔츠와 바지 없이 입고 있는 옷으로 일주일 간 버티기도 한다. 냄새가 진동해 스스로를 ‘하이커 트래시(Hiker Trash)’라고 부른다. 칫솔과 매트리스도 반으로 자르고 상비약도 쪼개서 가지고 다닌다. 물 끓이는 장비를 포기하고 라면을 물에 불려 먹기도 한다.

아라씨는 “촬영을 위해 준비했던 외장하드와 아이패드를 한국으로 보내 버렸어요”라며 “버리지 못하면 내가 길에서 버려질 걸요”라며 해죽거렸다.

하이커들의 말에 따르면 하이커들끼리 물건을 공유하는 상자인 ‘하이커 박스’에는 책, 콘돔, 쉬는 날 입을 원피스 순으로 버려진다고 한다.

트레일에는 기적과 응원이 있다. 우울증을 앓았다던 여성 하이커 김민주(31)씨는 쓸데없는 도전이라는 주변의 눈총을 받으며 길에 올랐다. 그녀는 남성보다 느린 도보 속도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걸어야 했다. 특히 사막구간인 가주 중남부를 지날 때는 곤혹이었다. 하이커들은 이 구간에서 마시는 물에 눈금을 재고 계산하며 마셔야 생존할 수 있다.

민주씨는 “사막구간에서 목이 말라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거에요. 가까이 다가가 모래 위에 놓인 아이스 박스를 열었더니 캔 음료가 한가득이었어요. 세 캔을 허겁지겁 마셨죠.”라고 말했다.

하이커들은 이것을 ‘트레일 매직’이라 부른다. ‘트레일엔젤’이라는 자원봉사자들이 두고 간 선물이다.

경상도 청도군 출신인 이우준(28)씨도 ‘트레일엔젤’ 덕을 톡톡히 봤다. 자기 집을 통째로 비워주는 현지인 집에서 며칠 동안 샤워는 물론 옷장에 있는 옷도 꺼내 입고 식사도 배불리 했다.

우준씨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줘도 되는가 싶을 정도였어요”라며 “하이커들은 미안한 마음에 집 청소나 화장실 문을 고쳐줬죠”라고 말했다.
트레일은 학교 밖 배움터다. 대학교 4학년 휴학중인 주민수(26)씨는 영국, 호주 출신의 하이커와 만나 길을 걸었다. 민수씨는 “물과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었어요. 목표 구간을 채우고 나면 낮잠시간이나 휴식시간을 갖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죠. 유행가가 아닌 컨트리송 등 타인종들의 문화와 습관 등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트레일에서 배울 수 있었죠”라고 회상했다.

지난 3월 결혼한 박준식(37) 손지윤(37) 부부는 신혼여행을 길에서 보내고 있다. 부인 손씨는 “길은 인생을 응축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든 일이 일어날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라고 여행 동기를 말했다. 남편 박씨는 “5년을 연애했으니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걸으며 새로운 점을 많이 보고 있다. 싸워도 작은 텐트에 함께 있어야 하니 대화도 많아지고 화해의 기술도 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풍광 좋은 곳에 도착하면 순백 웨딩드레스와 나비 넥타이를 꺼내 웨딩사진을 찍고 있다.

사업가 조은진(47)씨의 트레일 별명은 ‘어거스트(August)’다. 8월까지, 100여일이 훌쩍 넘는 시간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하는 자기 선언이다. 조씨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까 방황하던 중 힘들다는 길을 일부로 선택해 걷고 있다”며 “이 나이에 완주를 한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겠지만 내가 얼마나 견디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깡으로 걷고 있다”며 “트레일을 다 끝낸 뒤 소주를 제대로 마시고 싶다”고 크게 웃었다.

이밖에 50대 도전자까지 한국에서 온 하이커들 20~30여 명이 흙물이 배인 옷을 입고 거친 산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눈이 내리기 전인 9월 중순 워싱턴 주를 통과해 10월까지 캐나다 국경지대까지 도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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