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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과거사 피해구제 결정…양승태 사법부 판결논리 뒤집어(종합)

[연합뉴스] 기사입력 2018/08/30 09:20

'과거사·민주화운동 피해 국가배상' 근거법 위헌 결정
'재판취소'는 불인정…대법원과 해묵은 갈등 풀릴지 관심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헌법재판소가 30일 과거사 사건과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가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폭넓게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국가배상 요건을 엄격하게 봤던 판례들을 사실상 뒤집은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신 헌재는 위헌적인 법령을 적용한 재판이 아니라면 헌재가 법원의 재판을 취소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 민주화보상법·과거사 국가배상 소멸시효 위헌 결정…사실상 판례 뒤집어

헌재는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보상금을 받으면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또 과거사 사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때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도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과거사나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도 국가배상을 받지 못한 이들이 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지 못하자 헌재에 소송을 낸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헌재는 법원이 소멸시효 등으로 인해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판결하면서 근거로 삼은 법률이나 법해석이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헌재가 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위헌결정을 근거로 과거사 및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헌재가 위헌성을 지적한 법률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판결 근거로 삼았던 조항들이다. 2013년 12월 대법원은 간첩조작 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가 낸 소송에서 소멸시효를 '재심 무죄 확정 이후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해석했고, 이는 과거사 국가배상 사건의 판례로 자리 잡았다.

대법원은 2015년 1월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날 헌재는 과거사 피해자의 배상 소멸시효 문제에 대해 "국가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을 희생할 정도로 법적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엄격하게 소멸시효를 따진 대법원 판결이 부당했다는 지적으로도 볼 수 있다.

민주화운동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 문제에 대해서도 헌재는 민주화보상심의원회 보상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은 여전히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사건들은 공교롭게도 검찰이 수사 중인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도 관련성이 없지 않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거래를 시도하려 했거나 헌재의 내부 정보를 빼돌렸다는 의혹이 불거진 사건들이다.



◇ '재판취소' 불인정…"헌재가 양보 vs 재판소원 원천 불가능은 아냐"

헌재는 이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긴급조치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하면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의 해석론에 따른 것으로 그 취소를 구하는 심판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합법적인 법률 해석에 따라 판단한 재판에는 헌재가 헌법심판을 통해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법원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선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런 평가는 헌재의 2012년 결정과 이번 결정이 대비되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2012년 헌재는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를 적용한 대법원 판결에 "부칙 23조가 유효라고 판단한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실상 헌재가 재판소원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당시 나오기도 했다.

헌재가 이날 결정을 통해 "합법적으로 내려진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본 것은 법원과의 갈등 내지 위상 경쟁을 지양하려는 뜻이 담긴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아울러 양승태 사법부가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재판소원과 관련된 헌재의 내부정보를 빼돌린 정황이 최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는 등 두 기관의 갈등이 빚어낸 부작용이 사회적 논란이 일자 헌재가 먼저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문을 살펴보면 헌재의 취지는 재판소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보다는 대법원의 법해석에 위헌적 소지가 발견되지 않아 심사가 필요 없다는 뜻에 가깝다는 점이 확인된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들은 헌재의 위헌결정에 반해 긴급조치가 합헌이라거나 합헌임을 전제로 긴급조치를 적용한 바 없다"며 "나아가 긴급조치를 합헌으로 해석하는 취지의 설시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긴급조치 피해에 대해 국가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는 헌법재판을 통해 위헌이 아닌지 따져볼 만한 문제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일 뿐 재판소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의 이런 태도는 함께 청구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에 대한 위헌여부 판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이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해당 조항이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으로 인해 이미 위헌적 요소가 제거됐다는 점을 들었다.

이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일부 위헌적인 법령에 근거한 판결은 가능하다는 취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종적 사법 판단의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를 둘러싼 법원과 헌재 사이의 미묘한 갈등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수 없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법률적 평가를 놓고 헌재와 법원 사이의 견해차가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며 "이를 두고 최고 사법기구로서의 위상 경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는데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hyun@yna.co.kr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임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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