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58.0°

2019.05.23(Thu)

북한 “영변 핵시설 폐기” … 미국은 “모든 시설 사찰 받아야”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20 09:26

비핵화 요구 수준 다른 북·미
“북한, 신고 시설만 공개 원하지만
미국, 390개 건물 IAEA 사찰 목표”
태영호 “북, 특별사찰 수용 못할 것”
북·미, 실무협상서 첨예 대립할 듯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DDP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를 하고 방북 성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9·19 평양공동선언으로 멈춰 있던 한반도 비핵화 시계의 초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계침이 계속 정방향으로 갈지, 아니면 또 거꾸로 갈지가 재개되는 북·미 핵 협상에 따라 갈린다. 가다 서다를 또 반복할 수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비핵화가 여전히 속내가 다른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식 비핵화 방안’을 받아든 미국의 첫 반응은 긍정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공동선언 합의문을 통해 비핵화 조치의 종류와 순서를 제시했다. ▶북한이 먼저 유관국 전문가 참관하에 동창리 엔진 시험장 및 미사일발사대를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미국이 6·12 센토사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른 상응 조치를 취하면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게 골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성명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영변 핵 시설 폐기와 관련한 내용이 평양공동선언과 차이가 났다.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엔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입회하에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것을 포함해… 환영한다”고 돼 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없는 ‘미국과 IAEA 사찰’이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폐기 대상도 공동선언에는 ‘영변 핵시설(nuclear facilities in Yeongbyeon)’로만 돼 있는데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에서 ‘영변의 모든 시설(all facilities)’이라고 했다.


여기서 미국이 원하는 바가 분명하게 읽힌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IAEA 사찰단의 복귀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 사찰이다. 외교 소식통은 “영변 핵시설은 규모가 어마어마해 공개된 것만 해도 최소 건물만 약 390개에 이른다. 6자회담 9·19 합의 때도 5개 정도밖에 사찰하지 못했다”며 “이번에 미국이 꺼낸 사찰은 북한이 신고한 시설만 보는 일반사찰이 아니라 IAEA가 임의로 북한 핵시설을 지목해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사찰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야심차게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내놓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은 뒤 특별사찰을 얹어 베팅, 판돈을 키운 셈이다. 이는 비핵화의 핵심이자 지금껏 북핵 협상에서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는 사찰·검증을 기정사실화해 굳히기에 들어가겠다는 심산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0일 오전 남북 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가 마련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브리핑을 하고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에) IAEA 사찰단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나오는데, 이제 협상 초기 단계에서 (북·미가) 서로 생각하는 것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특별사찰을 수용한 적이 없다.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는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북핵 폐기의 최종 단계는 검증인데, 북한 내부의 정치범 수용소와 김씨 가문만 사용하는 특수 지역을 수없이 갖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죽어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 특별사찰을 자주권 유린이나 체제 위협으로 거부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에 김 위원장의 시선은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에선 빠진 ‘미 측의 상응하는 조치’를 향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원하는 상응조치는 굉장히 많고 또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우리와 다를 때도 있기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진지한 협상 속에서 밝혀지고 조정되는 것”이라며 “상응조치야말로 비핵화 협상의 핵심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북한의 속내에 대해 “전부 다 얹어놓고 하자는 것”이라며 “미국이 그간 요구해 온 핵 리스트 제출을 포함해 미국이 원하는 것과 북한이 원하는 것이 한 협상 테이블에 모두 올라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한 개의 비핵화 조치 대 한 개의 보상이라는 1대1 주고받기가 아니라 패키지를 묶어 몇 개씩 주고받는 방식으로 향후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북한이 평양공동선언에서 ‘상응 조치’를 종전선언 등으로 특정해 거론하지 않은 것을 놓곤 양면적 해석이 나온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종전선언이라고 아예 걸어서 말해 거기에만 국한시키면 오히려 미국이 더 받기 힘들 수 있다”며 “명료하지 않은 것이 협상 동력 측면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측면이 있다”고 봤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을 해줘도 “이 정도로는 등가가 아니다”며 추가 보상을 요구할 여지를 만들기 위해 종전선언으로 특정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19일 평양 기자회견에서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땅”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게 미국이 원하는 북핵 폐기와는 다른 맥락일 수 있다. 북한은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비핵화 5대 조건을 요구하며 핵 타격 수단의 한반도 전개, 핵 사용권을 갖고 있는 주한미군의 철수 등을 거론했다. 북한이 그간 주장해 온 ‘핵 위협 없는 한반도’는 북핵뿐 아니라 남핵, 즉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폐기도 포함된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결국 조만간 재개되는 실무 핵 협상에서 북·미는 진실의 순간을 맞는다. 25일 한·미 정상회담 및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북·미 외교장관 회담, 빈 실무협상 등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11월 미 중간선거 전에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에는 북한이 확실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상 중간선거 전에 굳이 정치적 부담이 큰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필요없다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미국은 영변 폐기를 놓고 각종 시설과 고농축우라늄 보유량 등을 다 들여다보려 할 텐데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에서만 보여주려 할 테니 결국 빈에서 이뤄질 핵 실무협상에서 이 부분이 가장 첨예하게 부닥 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지혜·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관련기사 트럼프, 김정은 친서- 2차 정상회담 준비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

핫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