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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좌선과 경전은 수행의 기본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LA중앙일보] 발행 2018/12/11 종교 26면 기사입력 2018/12/10 19:22

과거에는 직업이 있으면 진리공부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가정과 직업을 놓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선비가 마당에 있는 곡식이 빗물에 떠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독서에 전념했다는 예로 생활과 동떨어진 공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시끄러운데 처해도 고요함을 잃지 않고, 욕심 경계 가운데에서도 편안함을 지키는 것이 수행의 궁극적 목적이다. 우리가 선 공부를 하고 경전을 읽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기른 마음의 힘과 지혜를 실지 경계에 활용하고자 함이다.

지당한 말이다. 우리가 어떤 물건의 사용설명서를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는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대종사께서도, "공부하는 사람이 현묘한 진리를 깨치려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실생활에 활용하고자 함이니, 만일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다면 이는 쓸 데 없는 일이라" 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불가에서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主坐臥 語默動靜)',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하여 생활 속에서 진리의 실천을 강조했고, 원불교에서도 정할 때 공부와 동할 때 공부를 아우르는 무시선(無時禪)을 가르치고 배운다.

정할 때 공부와 동할 때 공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수행의 목적이 시끄럽고 요란한 경계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경전 공부에만 그쳐는 것은 문제지만 경전공부 없이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지혜의 힘을 기를 수 있을까? 어느 곳에 처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만 조용하고 경계가 없는 때조차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 시끄럽고 요란함 속에서 고요하고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부처님께서는 근기 따라 세 가지 경전을 읽게 하셨다. 첫째는 종이에 기록된 경전이고, 둘째는 삼라만상으로 나열되어 있는 현실의 경전이며, 셋째는 우리 자성에 담겨있는 무형의 경전이다. 기본적인 농구 규칙을 모르는 사람은 경기를 충분히 즐길 수 없듯이, 산 경전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종이로 된 경전을 통한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지천에 진리의 소식이 널려있다 하더라도 산 경전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왕과직(矯枉過直,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곧음을 지나침)의 고사에서 경계하는 것처럼, 정할 때 편중된 과거 도가 공부의 폐해를 지적하다가 오히려 정할 때 공부를 소홀히 여기게 된 것은 아닌지.

운전을 배우는 목적은 도로상에서 자유롭게 운전을 하기 위함이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은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운전학원을 다니지 않고 실제 도로에서만 운전을 익힌다든지 군사훈련 없이 실전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으려 한다면, 발전이 더디고 힘들 뿐 아니라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공부와 생활이 둘이 아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고 공부의 목적이 요란하고 시끄러운 경계 속에서도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할 때 공부(염불, 좌선, 경전)가 바탕이 될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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