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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법률칼럼] 차용 예술의 저작권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2/20 미주판 7면 기사입력 2019/02/20 12:09

장준환/변호사

현대 예술의 주도적 경향의 하나로 포스트 모더니즘이 꼽힌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개인적은 생각으로는 탈 중심과 해체가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미 우리 사회에서 현대성으로 정립되었다고 여겨지는 가치, 이론, 전통, 관행을 부정함으로써 독특한 미학에 도달하는 것이다. 예술에서는 기존에 아름다움과 가치로 숭상받는 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하거나 심지어 조롱함으로써 새로운 미적 의미에 도달하고자 시도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패러디가 중요한 방법으로 이용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술 용어로 차용 또는 전유(appropriation)라는 기법이 흔히 사용된다. 과거 작품의 전체나 일부를 가져와서 이것의 맥락을 부인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미 주어졌던 가치에 딴죽을 걸며 신화화된 대상을 허물어뜨려 버린다.

차용 예술은 부정과 해체 또는 조롱의 대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존 작품을 가지고 와서 재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작권 침해 소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차용이 고유한 미학을 창조했는지 아니면 차용을 빙자해서 교묘한 저작권 침해를 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저작권 케이스를 다루는 법원은 이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리라 본다.

차용 예술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제프 쿤스(Jeff Koons)이다. 그는 ‘포스트모던 키치의 제왕’으로 불린다. 기존 창작품을 아무런 허락 없이 빌려와 과감하게(혹은 뻔뻔스럽게) 모방하면서 ‘재창조’를 선언해버린다. 창작 방식도 독특하다. 수십 명의 조수를 거느리고 자신이 아이디어를 낸 작품을 공산품처럼 만들도록 한다. 그는 예술적 차용과 저작권 침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부와 명성을 쌓았다.

2018년 11월 예상하던 일이 터졌다. 프랑스의 광고 제작자 프랑크 다비도비시(Franck Davidovici)는 제프 쿤스가 자신의 광고를 표절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눈 위에 여성이 누워 있고 그녀의 머리 부근에 돼지 한 마리가 있는 광고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베껴서 조각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겨울 사건(Fait d'Hiver)’이라는 제목조차 똑같았다. 법원은 제프 쿤스의 표절을 인정하고 손해 배상을 판결했다. 하지만 제프 쿤스의 작품이 늘 표절로 판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안드레아 블랜치의 광고 작품인 ‘실크 샌달’을 패러디해서 ‘나이아가라’라는 작품을 발표했었다. 안드레아 블랜치는 저작권 침해로 법원에 고소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 2006년의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겨울 사건’이 경매 시장에서 40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는 것이다. 상업 광고의 표절작이 거액의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아이러니가 빚어졌다.

고급 예술과 대중적 취향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어찌 보면 조잡하고 유치하며 예술적 품격이 없는 데다 다른 이의 작품을 베낀 저급 예술이 사회적으로 혹은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차용 예술을 대하는 법률적 판단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어떤 해석과 판례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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