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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빠까'의 정치학

[LA중앙일보] 발행 2019/05/1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5/14 20:30

BC 5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장군인 아리스테이데스는 마음이 깨끗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또 아주 공평했기 때문에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도편추방(陶片追放:시민들이 도자기 조각에 투표해 쫓아 내는 것)을 당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투표 당일, 한 시골 출신 문맹자가 아리스테이데스에게 도자기 조각을 건네면서 자기가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누구 이름을 적어 넣을까요?" 묻자, 문맹자는 "아리스테이데스"라고 했다.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했습니까?" "그런 건 하나도 없어요. 사실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왜?

오는 23일 서거 10주년을 맞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빠'라는 정치적 접미사(노빠)가 붙은 사실상 첫 인물이다. 빠는 속된 말로 열렬한 지지자·그룹을 뜻한다. 연예인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집단(fan)을 '오빠 부대'라 부른 데서 나왔다는 설이 대세다. 빠는 원래 뉘앙스가 지지자 그룹을 비하(빠순이·빠돌이)하는 게 목적이었다. 천박하거나, 철없는 것들 정도의 중의적 표현.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한 여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여학생들이 "창이 오빠"라며 박수를 치자, "여러분들을 보니 빠순이 부대가 많은 것 같아요"라고 응답해 곤욕을 치렀다. 빠순이는 술집 바(Bar)에 나가는 유흥업소 종사 직업여성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대쪽 이미지에 근엄한 판사 입에서 나올 단어가 아니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가리켜 '문빠' '달창'이라고 언급했다. 문빠야 그 뜻을 바로 알아챘지만, 달창은 생전 처음 들었다. 문 대통령의 '문'을 달(moon)로 빗댄 건 알겠는데, 달창은 뭐지? 요즘엔 하도 줄여 쓰는 단어들이 많아 도무지 감이 안 왔다. 알고 보니 '달빛 창녀단'이란다.

빠야 일상 용어가 되면서 듣는 빠들도 과히 싫어하지 않는 눈치지만, 달창은 너무 나갔다. 과거 이회창의 '빠순이' 검은 그림자보다 더하면 더했다. 역시 판사 출신에 자칭 '예쁜 누나'가 뱉을 단어가 아니다.

맹목적 열렬 팬들은 안티를 만들어 낸다. 이를 속된 말로 '빠가 까를 만든다'고 한다. '까'는 빠의 반대 세력을 지칭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2500년 전 도편추방 투표날 그 문맹자는, 알지도 못하고 나쁜 짓도 안 한 아리스테이데스를 내쫓는 데 한 표를 던졌다. 그는 이유를 말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가리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 지겹고 짜증나서요."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달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현대 정치는 '빠까'의 전쟁터가 됐다. 무한정의 온라인에서 빠는 여기저기 생겨난다. 곧이어 까가 생겨나고, 그 까는 빠를 결집시키는 이분법적 악순환이 무한대로 계속되고 있다. 명백히 안 좋은 부분까지도 마냥 좋게 포장하는 '빠짓'과 괜한 트집을 잡아 물고 늘어지는 '까짓'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자들을 빨아들인다.

빠(까)가 뜨거우면, 수면 밑은 까(빠)의 부글거림이 맹렬차다. 중도층이 원하는 생산적인 토론이나 이성적 시시비비는 그 거품에 함몰될 뿐이다. 사실 인간은 좋고 나쁘고가 먼저다. 옳고 그름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명의 논리일 뿐. 선거에서는 더더욱 '모 아니면 도'의 논리가 편하다. 중간의 '개걸윷'은 복잡하고 피곤하다. 종국엔 빠까의 진영이 거의 절반씩을 점하는 이유다. 최근 미국과 한국 대선의 지지율이 이를 증명한다.

현대 선거전은 누가 1%를 더 챙기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문제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말실수를 가장한 빠(까)짓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지지율은 '빠까' 사이에서 '욱' 터지며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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