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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불견이라고?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글 낙서가 반가웠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2/08 08:02

산티아고 순례길 탐방기-2 카미노와 관광 콘텐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만난 풍경.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중대한 결심을 앞두지 않아도 일부러 찾아가서 걸을 만한 관광 콘텐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에 품었던 질문은 하나다.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걷는가. 이 천 년 묵은 옛길이 21세기에도 세계적인 관광 콘텐트로 추앙받는 까닭은 무엇인가. 여행기자로서 응당 던져야 하는 질문이었다.

순례와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곳곳에서 만나는 십자가. 순례자들이 여러 소지품을 놓고 간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느 트레일과 태생부터 다르다. 성서에서 기원이 시작하는 기독교의 오랜 문화유산이다. 누천년에 걸쳐 신화가 포개지고 역사가 얹혀 길은 스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순례는 육체적 희생을 동반하는 참회의 행동이다. 하여 이 긴 길을 걷는 건 신앙과 관계없이 순례의 의의를 지닌다. 하루에 25㎞씩 여러 날을 걷는 건 누구에게나 고통이어서이다. 중세의 순례길은 지금보다 위험했다고 한다. 늑대·곰 같은 야생동물이 수시로 습격했고, 곳곳에서 강도도 출몰했다. 중세 교회는 참회 순례를 제도화했다. 죄를 지어도 순례를 통해 성지를 방문하면 속죄해줬다. 그 속죄와 구원의 의식이 전통으로 뿌리내렸다. 미국의 어느 인류학자는 산티아고의 순례자를 ‘걸어 다니는 상처(Walking Wounded)’라고 정의했다.



순례자 여권. 교회나 교회가 지정한 장소에서만 발급한다. 하루에 도장 3개 이상을 찍어야 한다.








순례길을 걷다가 점심으로 먹은 순례자 메뉴. 피자 같은 빵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사발에 따라서 마시는 포도주였다. 순례길에서는 포도주를 우리네 막걸리처럼 마신다. 스폐인은 세계 3위의 와인 생산국이다.





중세의 순례자는 대부분 가난했다. 그들의 순례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지원했다. 그 전통이 아직도 알베르게(Albergue)라는 순례자 전용 숙소로 남아 있다. 알베르게는 크리덴시알(Credencial)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다. 시설은 조악해도 싼값에 먹고 잘 수 있다. 공립 알베르게는 교회·선교회 등 기독교 기관과 단체에서 운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해 순례 증명서를 받은 32만7378명 중 종교적 이유만으로 순례길을 걸은 사람은 25%였다. 종교와 상관없이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다는 사람은 9%였다. 순례자의 66%는 종교와 문화 모두를 이유로 들었다. 사무국은 콤포스텔라(순례 증명서)를 발급하기 전에 인터뷰를 한다. 이때 길을 걸은 이유를 묻는다. 20년쯤 전만 해도 인터뷰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순례자 자격을 획득해도(최소 100㎞ 이상 걸어야 한다) 종교적 동기가 약하다고 판단되면 순례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풍경. 서양 순례자들이 비틀즈의 '애비 로드' 앨범 재킷을 흉내를 내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제 즐거운 하이킹 코스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종교와 무관하게 순례길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800㎞나 되는 전체 코스를 한 번에 다 걷는 순례자도 있지만, 요즘에는 구간별로 순례길을 체험하는 여행자가 훨씬 많다. 버스나 오토바이로 주요 도시를 찍고 다니는 여행자도 있고, 순례자를 겨냥한 사설 알베르게와 호텔도 즐비하다. 스페인의 여러 도시에서 순례길을 걷는 주말 행사가 진행된다.

그래도 순례길이 갖는 애초의 의의는 유효하다. 놀고먹고 마시고 떠드는 여느 여행과 순례길을 걷는 고행의 여정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진실한 사랑을 다른 사랑과 어떻게 구별하나. 가리비 껍데기, 모자, 순례자 지팡이, 그리고 샌들을 통해.’ 『햄릿』에 나오는 대사다. 셰익스피어가 쓴 ‘사랑’ 대신에 ‘여행’을 넣어도 무방해 보인다.

순례 또는 관광



순례길을 걷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하늘이 개곤 했다. 잠깐 하늘이 열리자 그림 같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국내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루는 패키지상품이 여럿 있다. 트레킹 전문 여행사나 성지순례 전문 여행사가 판매하는 보름 여정의 상품이 대부분이다. 보통 순례길 200㎞를 걷는다. 유럽 패키지여행 상품 중에 하루 이틀 순례길을 경험하는 여정도 있고, 프랑스 길 풀코스 상품을 운용하는 여행사도 있다.

나는 7박9일 인천∼산티아고 직항 여행상품을 이용했다. 일정 중 닷새를 꼬박 걷기만 했다. 775㎞ 길이의 프랑스 길 가운데 막바지 115㎞를 걸었다. 전체 코스의 7분의 1 정도를 걸은 셈이다. 나에게는 이 여정이 적당했다. 직장인의 경우 1주일만 휴가를 내고 참여하면 순례를 인정받을 수 있어서였다. 최소 32일 걸린다는 800㎞ 순례는 아무에게나(혹은 아무 때나) 허락된 도전이 아니다.

우리 일행은 모두 42명이었다. 인솔자가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순례길은 순례길이네요. 패키지여행에 혼자 참가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이네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모두 8명이 개인 참가자였다. 이 먼 나라까지 돈을 내고 혼자 걸으러 온 사람들. 800㎞ 순례는 엄두를 못 내고 대신 115㎞라도 걷겠다고 나선 사람들. 어렵게 결단까지는 성공했는데, 아직은 다 잘라내지 못한 사람들. 이들의 어정쩡한 용기에 나는 공감했다.

일행의 60%는 기독교 신자였다. 그들 대부분은 정말 신앙의 힘으로 길을 걸었다. 한 중년 여성은 이틀째 되는 날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가이드가 말렸는데도 끝까지 걸었다. 순례 증명서를 받고서 그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말씀을 받았어요. ‘일어나 걸어라.’ 그래서 기쁘게 걸었어요.” ‘일어나 걸어라’는 성경 말씀이다. 또 다른 신자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와 함께함이니라’는 성경 말씀을 암송하며 걸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되뇌는 말씀이라고 했다. 일행 42명 모두 콤포스텔라를 받았다.



순례길 이정표. 온갖 언어의 낙서로 이정표가 어지럽다.








낙서는 벽에도 수두룩하다.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낙서를 한 순례자의 정성(?)이 각별하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낙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장식된 낙서판. 태극 문양과 '환영합니다'는 한글 낙서가 나는 반가웠다.





순례길을 걷기 전 한국인이 순례길 이정표에 낙서했다고 고발하는 방송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순례길에서도 사고를 쳤나 싶었다. 지난해만 한국인 5665명이 콤포스텔라를 받았다. 잠깐 구경만 하고 돌아간 한국인은 더 많았을 터이다.

그러나 길에서 발견한 한국인의 흔적은 볼썽사납지 않았다. 순례길에는 무수히 많은 낙서가 있었다. 스페인어·영어·아랍어·일본어·중국어 등 전 세계의 온갖 언어가 이정표와 담벼락에서 보였다. 그림도 꽤 많았다. 낙서 대부분은 응원 문구였고, 종종 욕설도 눈에 띄었다. 최근의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구호도 있었다. 어 어지러운 낙서 속에서 한글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되레 나는 반가웠다. 물론 욕설은 없었다.

카미노와 여행기자



산티아고 순례길의 숲은 의외로 깊었다. 깊은 숲에 마침 햇볕이 들었다. 비가 내려 가방에 넣었던 카메라를 얼른 꺼냈다. 셔터를 몇 번 누르자 다시 비가 내렸다.





나는 십수 년을 여행기자로 살았다. 수없이 많은 밤을 여행 가방을 싸며 보냈다. 하나 이번처럼 설렜던 전날 밤은 기억에 없다. 아니, 설렜다기보다는 심란했다. 나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무언가를 내려놓거나 무언가와 헤어져야 할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여태 걸었던 수많은 길 중에서도 순례길은 손에 꼽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종교적 동기나 문화적 호기심이 없어도, 이전의 일상과 결별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없어도 이 길은 일부러 찾아와 걸을 만한, 아니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유칼립투스 숲길. 높이가 50m는 족히 될 법한 거목 아래를 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유칼립투스 나뭇가지에 누가 걸어놓은 신발 한 켤레. 이 높은 가지에 어떻게 신발을 올렸을까 궁금했다.





내가 걸은 갈리시아 지역은 숲이 고왔다. 생각보다 숲이 깊고 커서 즐거웠다. 해발고도 250∼700m 내륙 산간지역을 오르내렸는데, 높이 50m는 될 법한 거대한 유칼립투스 군락지를 지날 때는 눈 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광에 숨이 막혔다. 시골 마을 특유의 여유가 길에서 흘렀다. 길바닥의 소똥은 의외의 복병이었지만.



비가 막 그친 뒤 풍경. 마을에서 안개가 올라왔고 풀밭의 빗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비가 잠깐 그치자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길바닥은 질었지만, 걸음은 가벼웠다.





걷는 내내 비를 맞았다. 스페인 북부지역은 11월부터 3월까지 우기에 해당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우비를 입고 벗기를 반복하다, 11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건 우리네 사는 꼴과 꽤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종일 비가 내리는데 하루에 두어 시간은 꼭 볕이 들었다. 우비 뒤집어쓰고 터벅터벅 걷다가도 하늘이 열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두어 시간 덕분에 순례는 끝내 행복했다. “비는 산티아고에서 순례자의 친구”라는 미국 인류학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산티아고 성당 중앙 제단에는 예수 대신 성 야고보가 앉아 있다.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예의 순례자의 모습이다. 순례자들은 제단 옆으로 올라가 야고보를 등 뒤에서 안을 수 있다. 성인의 어깨를 만지고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 신자는 아니지만, 감히 의식에 동참했다.



스페인 서쪽 해안마을 묵시아. 피니스테레처럼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마을이다.





순례를 마친 이튿날. 스페인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 갔다. 순례자들이 이 해안에서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치렀다. 순례길에서도 누군가가 놓고 간 신발과 지팡이가 자주 보였다. 아직도 눈에 밟히는 건 가족사진이다.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십자가 아래에는 낡고 바랜 사진이 꼭 있었다. 나는 피니스테레의 해안 바위에 10년 가까이 쓴 손수건을 놓고 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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