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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피로를 잊은 삶

남 철 / LA
남 철 / LA 

[LA중앙일보] 발행 2020/01/10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01/09 17:32

지난해 이맘때쯤 새벽 길을 달리던 기억이 새롭다. 고압전선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이 줄곧 고속도로를 따라온다. 철탑 사이마다 늘어져 배를 불린 고압선이 사막을 건너며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고등학교 역학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물체의 ‘처짐 현상’이 생각나 혼자 피식 웃는다. 줄을 더 팽팽하게 당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줄에 피로가 누적돼 얼마 안가 끊어지게 된다는 말에 학생들을 모두 소리내 웃었다. 무생물에 피로가 웬말이냐고.

그러나 선생님은 정색을 하며 아무리 철선이라도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피로가 쌓여 파괴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케이블카의 선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걷어내 피로해소를 위한 안식을 준다고 했다. 그 처짐의 크기를 계산해주는 물리학적 수학공식이 있는데 까마득한 얘기다.

우리 세대는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 시대를 보냈다. 거리의 신호등조차 눈을 흘기며 짜증스럽게 여기며 살아 왔다. 피로를 느낄 틈이 없으니 쉬어 가는 멋도 모를 수밖에. 하루의 피로는 저녁에 풀고 한 주의 피로는 주말에 푼다면 일생의 피로는 언제부터 풀어야 할까. 그런 규정이나 공식이 있는가 모르겠다.

우리는 다가오는 친구를 볼 줄 알아도 바로 눈앞에 걸린 안경은 의식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지내기도 한다. 가까운 만큼 잊고 사는 것들이 많다. 숨을 쉬는 공기도 그렇고 물도 그렇다. 늘 옆에 있어주는 사람도 신앙도 너무 가까이 있어 마음에 두지 않곤 한다.

그러나 피로를 잊고 살아온 날들이 고맙기는 하다. 잊은 것이 아니라 모르고 산 젊음, 그 싱그러운 시절이 좋았다. 혼자서 중얼거리다 문을 활짝 열고 나서니 시원스러운 바람이 가슴에 닿는다. 그새 봄바람인가 매화꽃망울이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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