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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험한 신앙의 모델들 1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 박사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 박사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12 13:18

1. ‘한국의 데마안’ 이경재 신부

나는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서울 영등포구(현재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명수대교회에서 교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중학생인 주일학교 선생으로부터 예수님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교회생활은 신앙 쪽 보다는 예배 후 동무들과 어울려 노는 쪽에 더 흥미를 가졌다.

그러다가 중학 1학년 때 6.25전쟁이 일어나 교회생활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직후 1954년 봄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흑석동에 있는 명수대성당(현재 흑석동성당)을 나갔다.
27세의 청년 이경재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담임 목사)로 임명을 받고 본당 건물이 없어서 신부관에서 미사를 드렸다. 신자들이 터를 닦고 벽돌을 나르는 일을 도와 본당 건물이 2년만에 완성되었다.

나는 매주 토요일 저녁 이 신부가 인도하는 교리공부시간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당시 이경재 신부는 나에게는 살아있는 신앙의 모델이었다.
그는 신자 개개인의 아픔을 경청하고 기도의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신부는 개신교 목사는 결혼도 하고 가정을 갖는데 이 신부는 27세의 청년으로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너무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신부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성 라자로 마을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명수대성당 주임신부로 오기전 1952년 3월서부터 2년동안 경기도 의왕시 몰압산기슭에 있는 성라자로 마을 원장을 지냈다.

한센인(당시에는 나병환자라고 불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이 신부는 1951년 4월 서울가톨릭대학을 졸업, 신부서품을 받고, 성라자로 마을에 들린적 있다. 이 신부는 그때 만난 한센인들을 마음속에서 지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이 신부는 명수대주임신부 7년, 미국주재 천주교 서울 대교구연락책임 신부직 6년을 마치고 1970년 성라자로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28년 동안 한센인들과 동고동락했다.
그는 1998년 5월 11일 72세를 일기로 직장암으로 선종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벨기에 출신 다미안신부(1840-1889)를 생각했다. 다미안신부는 하와이 몰로카이섬에서 29년 동안 700여명의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본인도 그 병에 걸려 49세를 선종했다.

다미안 신부가 모로카이섬 한센인들 묘사이에서 잠들고 있는 것 처럼 이경재 신부는 성 라자로 한센인 묘지사이서 잠들고 있다.
1970년 겨울 내가 피츠버그대학원에서 석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이경재 신부를 만났다. 이 신부는 수원 성 나자로 마을 건립을 위한 모금 켐페인차 이곳에 들린 것이다. 당시 한국사회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모금이 거의 불가능했었다.
나는 10여 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얼마간을 모았다. 나는 이 신부와 15년 만에 만나 옛날 명수대성당 이야기로 꽃을 피었다.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신부는 ‘네 이웃을 돌보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붙들고 살다가 아름답게 생을 마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이 신부의 모습을 그려보며 내 믿음을 비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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