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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험한 신앙 모델들 3

허종욱 /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 박사
허종욱 /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 박사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23 13:33

‘가난과 신실이 전 재산’ 스톤브레이커목사 (David Stonebraker)

새로 지은 교회 건물(1992년)

새로 지은 교회 건물(1992년)

나는 나의 믿음 생활에 전환점을 불어 넣어 준 스톤브레이커목사님을 1970년 겨울 피츠버그대학 교정에서 만났다. 당시 목사님은 이 대학에 유학 온 학생들에게 복음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는 필라델피아 U. Penn.대학원에서 Communications를 공부하다가 U. of Pittsburgh 대학원으로 전학, 살 아파트를 찾고 있었다. 목사님은 유학생들이 함께 살고있는 아파트가 있으니 와 보라고 해서 며칠 후 그곳을 찾아 갔다. 목사님이 유학생들을 위해 허룸한 집한 체를 세를 낸 아파트였다. 그 집에는 한국 학생 4명, 그리고 인도 그리스 나이제리아 등 10명의 유학생들이 살고있었다. 아파트 세는 다른데 비해 반값도 안됐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입주조건이 있다. 수요일 저녁에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당시 웨슬리안 감리교회(Allegheny Wesleyan Methodist Church) 담임목사로 목회를 하고있던 스톤브레이커목사님은 이 아파트에 사는 유학생들을 위해 수요일 저녁 성경공부를 거의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성경공부내용은 이 교단에서 새 신자들을 위해 마련된 ‘기초성경공부’(The Basic Bible Study)를 기준으로 한 신앙의 기초지식들이었다. 입주 유학생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성의껏 참석했다. 한국 유학색생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이 성경공부를 통해 나이제리아와 인도에서 온 2 유학생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1971년 봄 필라델피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있던 아내가 피츠버그로 와서 우리 부부는 아파트를 따로 얻어 나갔다. 그리고 스톤브레이커목사님이 시무하는 웨슬리안 감리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한 70명 쯤 모이는 작은 교회다. 아내가 오기 전까지는 반공포로 출신으로 목회자가 된 현순호목사님이 담임한 피츠버그한인교회에 출석했다.

웨슬리안 감리교회 교인들의 보수적인 생활과 간증으로 시작하는 주일 예배는 나의 신앙에 큰 도전을 주었다. 교인들은 여름에도 짧은 바지나 셔쓰를 입지않고 TV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교인들의 대화속에는 유행적인 사회 이야기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주일 아침 예배는 한 20분간 간증의 시간으로 시작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은혜로운 경험, 고통을 당한 경험, 기도를 부탁하는 간청으로 간증의 시간은 이어졌다.

나는 이 교회와 교인들을 통해 믿는 성도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 할 때에 교인들은 쓰던 세간살이를 모아 주었다. 이 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래서 담임목사의 사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교회 비서는 목사 사모가 맡았으며 교회 청소는 담임목사가 맡았다. 나는 스톤브레이커목사님이 자동차 휴발유를 만 탱크 체우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나는 1960년대 후반 필라델피아에서 유학생활 동안 미국이민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이민 초기에는 걸어서 갈수있는 거리에 있는 미국장로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믿음은 별로 없고 더구나 직장과 공부때문에 몸이 핀곤한데도 아내 등살에 할수없이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이상 걸리는 필라델피아 최초 한인교회인 필라델피아한인교회(담임 오기항목사)에서 예배를 드렸다. 토요일 저녁만 되면 다음날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로인해 부부싸움도 가끔 했다. 그 때만해도 내가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 보다 예배후 친교실에서 식사를 하고 유학생들과 환담하고 탁구를 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피츠버그로 이사를 하면서 신앙에 변화가 온 것이다.

나는 피츠버그에서 공부를 마치고 취직이 되어 1971년 겨울에 볼티모어로 이사를 오고 아내는 석사학위를 마치기 위해 그곳에 남아 있어서 이산가족이 됐다가 1972년 재회를 했다. 1974년 봄 스톤브레에커목사님으로 부터 교회 건물을 신축한다는 소식이 왔다. 우리는 본당 긴 의자 하나를 헌납했다.

우리 부부는 완성된 한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교회 건물을 1992년 봄에 방문했다. 스톤브레이커목사님은 우리 부부의 명패가 붙어있는 의자를 보여주면서 눈물이 글썽했다. 목사님을 통해 구원받은 유학생들이 모임을 갖고 뉴스 레터를 발간했다. 목사님은 1992년 74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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