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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스토리] 평일엔 택시기사…주말엔 목사님

[LA중앙일보] 발행 2020/02/22 미주판 1면 기사입력 2020/02/21 22:53

16년째 택시 모는 이희갑씨
LA한인타운 작은 교회 섬겨
극과 극 오가는 경계의 삶
기도 제목은 딸·아들 결혼

이희갑 씨가 모는 택시. 내부에 온통 수백장의 CD가 빼곡하다. 호기심에 묻는 손님들에게 찬양곡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이희갑 씨가 모는 택시. 내부에 온통 수백장의 CD가 빼곡하다. 호기심에 묻는 손님들에게 찬양곡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 삶이 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인생이다. 한쪽은 너무나 숭고하다. 한 올 티끌마저 흠이 될까 걱정이다. 다른 한쪽은 반대다. 늘 경계에 서야한다. 합법과 불법, 안전과 위험, 감사와 헐뜯음, 때로는 생과 사까지…. 그런 것들을 수시로 넘나드는 삶이다.

깔끔한 흰색 미니밴이다. 차 문이 열리자 눈이 부시다. 천장에는 수백장 CD가 빼곡하다. 물씬~. 예전 관광버스의 정겨움이 느껴진다. 스피커에서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찬양곡이다. 곧이어 인사가 들린다. 구수한 남도 억양이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이희갑 씨(63)는 택시를 몬다. 그러니까 LA의 택시기사다. 벌써 16년째 이 일을 한다.

사는 게 그렇다. 굴곡이 많다. 힘든 이민 초기였다. 함정 단속에도 몇 차례 걸렸다. 차를 뺏기고, 면허가 정지됐다. 꼬깃꼬깃 모은 수 천 달러를 박박 긁었다. 졸린 눈 비비고, 끼니 거르며 번 돈이다. ‘이 돈이면 아이들 좋아하는 짜장면이 몇 그릇인데.’ 압수된 차를 찾아오며 펑펑 울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텼다. ‘이제 좀 살만하네’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시 또 내리막이다. 우버, 리프트 같은 공유차량이 쏟아져나와서다. 매상은 말도 안되게 곤두박질이다.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하다하다 가상 화폐도 손을 댔다. 물론 손해만 잔뜩 봤다.

아내 볼 면목이 없다. 남편보다 더 고생이다. 식당을 전전하며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않는다. 요즘은 사우나 일도 한다. 그 힘들다는 세신사(때밀이)다.

영주권은 9년만에 나왔다. 그나마도 딸아이는 받지 못했다. 마음의 상처만 안은 채 귀국했다. 아들 녀석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결국 (미군) 입대를 자원했다.

하루 하루를 걱정하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며…. 그럼에도 그가 굳건해야하는 이유가 있다. 또 다른 ‘일’을 위해서다.

택시기사 이희갑 씨의 진짜 호칭이 있다. 목사님이다. 그는 LA 한인타운에서 작은 개척교회를 섬기는 ‘자비량’ 목사다. 그러니까 목회 사례비도 없이 자원봉사하는 셈이다. 고향에서도 비슷했다. 전주에서 목회를 하며, 택시도 몰았다. 그곳 성경 모임에서 LA의 어느 목사를 만났고, 초청받아 이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택시에 첫 손님이 되면 그런 질문을 받는다. “집사님이시죠?” 대답은 대개 두 가지다. 당황한 “네에?”. 아니면 간결한 “네에.” 후자와는 연결이 쉽다. 서로가 신앙에 대한 깊은 마음이 오간다.

반면 놀란 쪽은 다르다. 가급적 화제를 돌린다. 가벼운 일상 얘기다. 그러면서 차 안에 가득한 CD를 소개한다. 자신이 수집한 찬양곡들이다. 그러니까 택시는 곧 말씀을 전하는 공간이다. 그가 평생을 바치는 일이다. 그걸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비루함도 겁내지 않았다. 최근에는 개인방송(유튜브)도 운영중이다. ‘등경위에 빛의 소리’라는 채널이다.

한 때 택시 회사도 운영했다. 자신처럼 어려운 목사들만 모았다. 많을 때는 10명까지 됐다. 지금은 각자 흩어져 어렵게 지내고 있다.

“요즘 중요한 기도 제목이 있어요. 서른 넘은 두 아이들 결혼시키는 일이죠.” 그도 역시 가장이다. 아들, 딸에 해준 게 너무 없다는 게 마음 아프다. 어릴 때는 형편 때문에 공부도 쉽지 않았다. ‘애들이 자신감이 없어서 배우자도 못 만나는 것 아닌가.’ 그런 자책이 크다. 이제 짝이라도 찾아줘야겠다는 일념 뿐이다. 덕분에 단골 손님들 단체 문자방에는 연신 공개 구혼 글이 올라간다.

“혹시라도 기사가 나가고 나면 알아보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제 택시에 타는 분들은 운전이 좀 거칠고, 가끔 험한 소리 해도 이해 좀 해주세요. LA 운전이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자상한 시아버지, 장인이 될 수 있다고 믿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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