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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겨우 500달러’와 ‘절실한 500달러’

장수아 / 사회부 기자
장수아 / 사회부 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20/06/04 미주판 17면 기사입력 2020/06/03 18:57

“당장 내일 쌀 살 돈이 없어요.”

수화기 너머 음성에 온갖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라는 의심이 들려던 찰라 "불체자라서…”라는 답변은 많은 걸 납득하게 했다.

몇 주 전, 박모 할머니(79세)와의 취재차 통화는 그녀의 인생을 되짚느라 1시간을 넘겼다.

평범한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30대에 그녀는 남편, 아들 둘과 함께 미국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LA서 승승장구하던 남편의 사업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남편 도우려 일하던 식당에서는 영주권까지 해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주인이 바뀌면서 그것도 물거품이 됐다.

살아보려 ‘캐시잡’을 뛰었다. 청소부, 가정부 안 가리며 하루하루 버텼다. 그렇게 산 지 벌써 40여 년이다. 그런데 1년여 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집에 스스로를 가뒀다. 일하느라 집을 비운 사이 연로한 남편이 고통 속에 말 한마디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지만 가혹하게도 코로나19 감염 사태까지 터졌다. 불법 택시를 모는 아들 둘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월세 1000달러를 내고 나면 당장 내일 쌀 살 돈도 없다”는 그녀의 말은 현재 불체자들이 처한 현실의 단면이다.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불체자는 16만 5000여 명(2017년). 가주 내에는 5만여 명으로, 전체 1/3 수준이다. 최근 코로나19는 이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았다. 이민자 옹호 비영리단체 ‘메이크 더 로드 뉴저지’가 지난 4월 24개 도시 불체자를 조사한 결과 4명 중 1명만이 일을 하고 있었다. 76%가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고, 57%가 근무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었다. 10명 중 3명은 당장 렌트비가 없었고 86%가 다음달 렌트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부 불체자들은 코로나 19 기간, 주 정부의 강제퇴거금지 명령에도 건물주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응답자의 절반은 본인 혹은 가족이 아픈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 중 대부분이 코로나 감염 조짐을 보이거나 의사에게 양성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85%가 건강 보험이 없었다. 또 그들은 신분 노출 우려로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가주 내 불체자는 주 전체 노동력의 10%를 차지한다. 세금까지 꼬박꼬박 내지만 이런 코로나19 같은 사태에 이들의 몫은 가장 뒷전이다. 가주 정부는 5월이나 돼서야 불체자를 위한 현금지원프로그램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심지어 연방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1200달러 지급대상에서 불체자와 결혼한 이들을 제외하는 처사를 단행했다.

LA한인회는 지난달 불체자 대상 1차 구호기금 신청을 접수했다. 수혜금은 1인당 500달러였다. 405명 선정에 2073명이 몰렸다. 서류 심사 결과 신청자 중 1/3은 합법 체류 신분이었다.

콩고물이라도 나눠 먹자는 심산이었을까. 한인회에는 “우리도 힘든데 왜 불체자만 돕느냐”거나 “겨우 500달러 주면서 유세 떨지 마라”는 분노에 찬 전화가 오기도 했다. 어떤 이는 ‘겨우 500달러’에 고맙다며 눈물지었다. 나라가 등 돌린 이에게 그 돈은 희망이었다. 물론 남들 못지않게 사는 불체자도 여럿 있다. 하지만, 남들만큼만 사는 게 바람인 절박한 불체자가 우리 주변에 더 많다.

어둠을 겪어본 자만이 태양의 고마움을 안다고 했다. 도움의 손길은 내밀지 못할망정 누군가의 어려움의 크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속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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