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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된 집에서 피아노를…레바논 사람들이 베이루트 돕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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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8/06 13:03

레바논 시민, 자발적 복구 나서
피아노 연주·거리청소 등 도움 손길 이어져
생존자들 "여전히 충격에서 못 벗어나"
"무책임한 정부 대신 우리가 나서야" 분노도

대규모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도시는 폐허가 됐지만, 사람들의 마음만은 따뜻했다.

베이루트가 이웃들의 도움으로 복구에 들어갔다. 젊은이들은 빗자루를 들고 거리로 나와 청소를 했고, 사업가들은 집·음식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한 70대 노인은 폐허 된 집에서 피아노 연주로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랬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사는 메이 아부드 멜키(79)는 이번 폭발 사고로 집을 잃었다. 멜키는 아수라장이 된 집안에서 피아노 연주로 사람들을 위로했다. [트위터 캡처]






5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베이루트에 사는 메이 아부드 멜키(79)는 이번 폭발로 60년 동안 살아온 집을 잃었다. 폭발 지점에서 1.6㎞ 떨어진 곳에 있는 멜키의 집은 많은 곳이 무너졌다. 벽에는 구멍이 뚫렸고, 창문 유리는 모두 깨졌다. 가구들도 모두 부서졌다.

폭발 당시 외출 중이어서 화를 면한 멜키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피아노로 향했다. 멜키의 결혼 선물로 아버지가 주신 피아노였다. 다행히 피아노는 멀쩡했다.

멜키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로 알려진 스코틀랜드 가곡 '올드랭사인'. 이어 아랍 찬송가도 연주했다.




5일(현지시간) 자원봉사자들이 대규모 폭발 사고로 엉망이 된 레바논 베이루트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멜키의 피아노 연주에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함께 예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멜키의 딸과 손녀가 이 장면을 찍어 SNS에 올렸다. 네티즌은 레바논 시민의 끈기와 의지에 감동했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멜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집은 내전에 총알이 뚫고 들어와도 살아남았다. 몇 번이고 재건했다"며 복구 의지를 내비쳤다.


빗자루 들고 거리로 나온 청년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폭발 이튿날 아침 베이루트 거리에 청소부대가 등장했다. 빗자루 등 청소도구를 손에 쥔 청년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거리를 청소했다.

이들은 시멘트 가루·깨진 유리 등 거리를 뒤덮은 잔해들을 쓸어 담았다. 피 묻은 바닥도 직접 닦았다.

거리 한쪽에는 식사 테이블이 준비됐다. 테이블에는 물·샌드위치·스낵 등 봉사자들이 들고 온 음식들이 차려졌다. 리타 퍼즐리(26)는 재팬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집에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 도우려 음식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레바논 각 지역에서 베이루트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있다. 이웃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피해 지역을 청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피해자 숙소 마련에 발 벗고 나선 봉사자들도 있다. 베이루트 주민 대부분은 폭발과 함께 집을 잃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 소식을 들은 종교 시설과 학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임시 대피소를 만들었고, 일반 주민들도 자택을 숙소로 내놨다.

인테리어 업체들은 부서진 벽, 깨진 창문·문 등 건물 수리에 나섰다. 가격은 무료다. 베이루트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압도 아메르는 "나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베이루트의 경제난 속에 수리 비용을 받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재팬 타임스는 베이루트 거리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로 채워졌다고 전했다.

SNS 영상 속 주인공들 "저 살았어요"
생존자 사연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찍은 폭발 순간 영상은 SNS에서 화제가 됐다.




베이루트의 한 광장에서 웨딩 촬영 중 폭발이 일어나 긴급 대피한 이스라 세블라니. 세블라니의 웨딩 촬영 카메라에는 폭발 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베이루트의 한 광장에서 웨딩 촬영 중 폭발이 일어나 긴급 대피한 이스라 세블라니의 사연을 소개했다. 긴박했던 폭발 순간은 웨딩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결혼식을 위해 3주 전 베이루트에 왔다는 세블라니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사고로 레바논 거주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출산 중 폭발 사고를 겪은 임신부의 사연도 전해졌다. BBC에 따르면 엠마누엘 네이서는 세인트조지 병원 분만실에 들어가자마자 폭발이 일어났다. 그 충격으로 병실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




레바논 베이루트 한 광장에서 웨딩 촬영을 하던 이스라 세블라니의 카메라에 폭발 순간의 모습이 담겼다. [SNS 캡처]






폭발 장면은 아내의 출산 장면을 찍던 남편 에드먼드의 카메라에 모두 찍혔다. BBC에 따르면 네이서는 폭발 후 약 1시간 30분 뒤 아들을 출산했다.

이번 사고는 인재…정부에는 분노
레바논 시민은 정부에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폭발을 일으킨 질산암모늄이 항만 창고에 방치돼 있었던 걸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거리 청소 자원봉사자인 후삼 아부 나스는 "정부가 잘했더라면 지금 이 거리엔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음식 지원에 나선 봉사자는 "정부가 이 일을 맡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그들은 복구 대책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못하니 우리라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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