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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런스 데이를 앞두고 열린 참전 군인들의 모임

[중앙방송] 기사입력 2010/11/10 09:56

<앵커맨트>
미국에서는 매달 수십만명의 참전군인들이 명예와 긍지를 지키기위해 모임을 갖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남가주에서도 이런 모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특히 한국전에 참전해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은 청춘을 바친 전쟁을 생의 중요한 부분을 여기며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베테런스 데이를 앞두고 열린 참전 군인들의 모임에 최인성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녹취 비지로>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사한 동료들을 생각하면 이들의 눈가는 어김없이 젖어온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미국내 생존한 한국전 참전 군인은 약 3만여명.
실제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은 당시 어리게는 17살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2010년 11월 11일 베테런스 데이를 맞이하는 이들은 이제 여든살에서 아흔살의 증조할아버지들이 됐다.

하얀 머리에 모두들 하나같이 보청기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눈빛은 아직 60년 전의 기상 그대로다.

JBC 중앙방송은 베터런스 데이를 이틀 앞두고 풀러턴에서 열린 참전군인들의 모임에 함께했다.

캘스테이트 풀러턴의 노인대학 프로그램에서 열린 한인참전군인들의 모임과 로컬 참전군인 142지구 모임이다.

해군출신인 리 컬트 중사에게 한국전쟁의 의미를 물었다.

<녹취1>

참전용사 대부분은 '포갓튼 워' 즉 잊혀진 전쟁이라는 데 동의했다.

중국이 대대적 공세를 폈을 때 대부분의 군인들은 투르먼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그랬던 것 처럼, 북한에 대한 핵공격을 바랐다고 한다.

북한 지역의 주요 발전시설을 공격함으로써 적군을 마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고 한다.

하지만 2차대전 직후, 국제적 비난을 의식했던 미군은 적극적인 공세보다는 38선의 분할을 사실상 용인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마무리 했다고 믿고 있었다.
돈 다튼 중위의 목소리다.

<녹취 2>

실제 미군은 당시 전쟁을 벌였다기 보다는 공산주의의 창궐을 막기위한 치안 활동으로 한국전에 파견됐다.

이런 공산주의의 창궐에 대항한 국제적 치안 업무로 한국전을 간주했던 미군은 여러가지로 전략상 한계를 노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참전 군인들의 설명이다.

당연히 이들에게는 한국전쟁이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전에 참가한 네일 라이크 해병대 소령이다.

<녹취 3>

그렇다면 목숨을 담보로 인천상륙작전에, 서울 수복에 나선 미군들은 지금까지 어떤 헤택을 받았을까.

사실상 부상을 입은 군인을 제외하고는 지원은 없었다. 그나마 부상을 입지 않거나 회복한 군인들에게는 '지아이 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려웠던 불황 이후 교육만이 출세의 길로 여겨졌던 퇴역군인들에게는 좋은 종자돈이 됐다는 것이다.

한국전 참전 군인들 대부분은 한달에 110여달러에 남짓했던 학비와 생활비 지원으로 대학을 마치게된다.

참전군인들의 모임은 60년 전의 포성이 무색하리 만치 평온하고 정겨웠다.

모임에 나온 대부분의 역전노장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군인들이다.
전쟁이후 상처와 부상으로 모임이나 공개석상에 나서지 못하는 군인들이 여전히 더 많다.

리컬트 중사는 잃어버린 전우들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목이 메인다.

<녹취 5>

명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전사한 군인들은 물론, 전쟁과 전투의 깊은 상처로 세상과 담을 쌓고 우울한 여생을 마감한 군인들은 부지기수다.

아흔을 넘긴 이 '운 좋은 군인들'은 먼저간 청춘들을 항상기억하겠다는 다짐으로 모임을 시작하고 끝맺는다.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도 수많은 군인들이 지구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청춘을 바칠 것이다.

동시에 한 군인의 말처럼 지구촌이 평화를 지킬 능력이 없는 한 전쟁을 계속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참전 군인들의 보이지 않는 피와 땀은 기억될 것이다.

JBC 뉴스 최인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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