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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3월에 듣는 친일파들의'잡소리'

황상호 / 사회부 기자
황상호 / 사회부 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19/02/28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02/27 18:27

기자 초년생 때 과로에다 짜증이 쌓여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면 '홍삼'보다 약발이 잘 받는 것이 있었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였다. 진행자의 예리한 질문과 전문가의 통찰력 있는 분석을 듣고 있노라면 일을 '잘'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이것도 만성이 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1년 대선 출마 연설을 찾아 들었다.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외침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라고 말했던 부모님을 거역하는 역성혁명이었다.

최근 가슴 철렁한 글을 읽었다. 김흥식 작가의 책 '원문으로 보는 친일파 명문장 67선'.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 67명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쓴 글이다. 친일파들은 청년을 위무하는 척하며 대동아 단결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전장으로 내몰았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의 글이다. "지금까지의 반도 청년은 쓸쓸하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지 않을 충성된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기에는 그 장소가 너무나 좁았다. (중략) 대동아 건설을 위하여 동아 10억의 민족을 저 앵글로색슨의 손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김활란은 조선 청년을 세계화에 뒤처진 루저로 규정하고 은근히 위로하는 척하며 전쟁터로 등 떠밀었다. 섬뜩하고 잔인한 논리 전개다.

소설가 이광수다. 그는 창씨 개명에 대해 역차별론을 주장했다. "내선일체를 국가가 조선인에게 허락하였다. (중략) 차별의 제거를 위하여서 온갖 노력을 할 것밖에 더 중대하고 긴박한 일이 어디 또 있는가." 그는 여러모로 편리한 창씨 개명을 부득이 안 하는 모습이 어리석다고 지적하고 있다.

작곡가 홍난파다. 중일전쟁 후 쓴 글이다. "베토벤의 대작인 '영웅교향곡'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명작 '1812 서곡' 등은 모두 전란에서 받은 인상이나 감격을 토대로 하여 작곡된 것이다. 이것이 세상에 발표되기는 전란이 종식된 후의 기념품으로 탄생하였으니, (중략) 이번 사변(중일전쟁)에서 어떠한 대작 명곡이 나온다면 이것은 차라리 성전의 목적이 관철된 후의 기념 산물이 아니고는 가망이 없으리라." 거칠게 요약하면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전쟁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22일 LA시의회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일 선포식이 열렸다. 흰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3·1여성동지회 회원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배석한 시의원들이 만세를 합창했다. 지난 6일에는 성 노예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추도행사가 같은 자리에서 열렸다.

지금 한국에서는 여전히 청년을 앞세워 갈등을 조장하려는 정치 세력이 활개치고 있다. 친일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국회의원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또 다른 100년 뒤에는 변화가 있을까. 3·1운동 100주년이 있는 이번 한 주만큼은, 친일파의 글을 (조롱하듯) 본 따 이렇게 외치고 싶다.

"반도 청년들이여, 3월 한 달은 잡소리 격파에 일로매진해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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