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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訃告)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나는 1960년대 후반에 한 중앙일간지 특파원으로 미국에 왔다.
당시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로스에젤리스 타임즈, 시카고 티리뷴, 볼티모어 선, 보스턴 글로브 등 미국 주요일간지를 보고 놀란것은 많은 지면이였다. 주중에는 약 30면, 일요판은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여행, 부동산 등 색션(section)별로 200면이 넘었다.

그래서 일요판은 말 그대로 부피가 한 보따리가 된다. 약혼(Engagements)과 부고(Obituaries)란이 일요판 색션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약혼섹션과 부고섹션이 각각 10면 이상을 차지할 때가 많았다. 지금은 종이신문이 온라인에 밀려 약혼섹션은 자취를 감쳐버리는 경향이 있으며 부고섹션은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1960년대에 한국 중앙일간지는 주중 8면을 발행했으며 일요판을 따로 발행하는 신문사도 있었다. 서울신문이 발행한 ‘선 데이 서울’ 타블로이드 일요판은 20면쯤 됐다. 주로 연예 스포츠계의 소식으로 지면을 메웠다.

지금은 한국일간지들이 모두 섹션별로 발행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섹션별 지면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 각각 1면을 발행했으며 약혼이나 부고섹션은 아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유명인이 결혼하거나 세상을 떠날 때 사회면 또는 문화면의 한토막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미국 일간지 약혼섹션은 새로 약혼한 또는 결혼할 남녀의 사진과 함께 본인 소개는 물론 신부 신랑의 가족소개까지 곁들였다. 젊은 한 쌍이 희망과 행복이 가득찬 새로운 인생길을 시작하는 경사를 세상에 알리는 섹션이다.



반면 부고섹션은 인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여정을 남아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알리는 섹션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떠난 사람들은 부고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부고의 내용과 비문을 남겨놓기도 한다. 약혼섹션은 기쁨의 섹션인 반면 부고섹션은 슬픔의 섹션이라고 할 수 있다. 약혼섹션에서 부부가 같이 출발하지만 부고섹션에서 부부가 동시에 떠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미국 주요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지가 지난 19일자 일요판 부고난 16면에 3만 8077명의 부고를 실었다. 어떤 부고는 사진과 함께 어떤 부고는 이름만 실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희생을 당한 사망자들로 추정된다. 내가 알기로는 사망자 숫자로 보나 부고난 면수로 보나 역사적일 것 같다. 지난해 같은 일요일자인 4월 21일자 신문에는 부음이 7개 면뿐이었다고 보스턴글로브는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이날 부음면을 사진으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려 “이렇게 부음이 많은 것은 본 적이 없다”, “계속해서 집에 있자”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 신문에 부고란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독자들이 관심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왜 미국사람들은 부고섹션에 관심이 많을까?

대개 부고의 내용은 고인의 이름, 생년월일, 사망원인, 직업, 고향, 가족관계, 또 유족들이 고인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간단한 추모 문장과 고인이 사회에서 베푼 선행을 기술하는 문장, 그리고 “하나님 품에서 잠들다”로 끝을 맺는다.
독자들은 고인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다가 떠난는지를 부고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인의 삶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기회도 갖는다. 어떤 부고내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떻게 죽을 것이냐에 관심이 많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죽는다’를 ‘잠잔다’라고 말하고 있다.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8, 39)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등이 예들이다.
믿는 사람들은 ‘잠자다’가 부활의 몸을 입고 깨어나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들이 잠자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깨어날 것을 굳게 믿는다.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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