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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금지됐던 서울지하철 성·정치 ‘의견광고’ 다시 허용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12 11:03

6월부터 1~8호선 지하철에 금지된 의견광고
서울교통공사, 7일 심의회 열고 ‘재허용’ 결론
올해 안에 처음 개념 만들고 게시 기준도 마련
전문가들, “게시 원천적 허용 찬성” 하면서도
“타인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성숙한 사회 먼저”

지난 6월부터 금지된 1~8호선 서울지하철 내 ‘의견 광고’ 게시가 다시 가능해진다. ‘의견 광고’란 성·정치·종교·이념의 메시지가 담긴 광고를 가리킨다. 12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7일 열린 교통공사 광고심의위원회에서 의견 광고에 대해 ‘게시 허용’ 결정이 났다. 이 위원회에서 ‘의견 광고 금지’가 결정된 지 78일 만에 결정이 뒤집어진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12일 “의견 광고를 재허용하는 건 맞지만, 기준에 부합하는 광고만 허용하는 제한적 허용이다”고 말했다.

지난 6월초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 숙대 학생들이 내건 페미니즘 광고.[사진 서울교통공사]

교통공사는 올해 안으로 이 회의를 통해 ‘의견 광고’의 개념을 정립하고, 게시 기준을 마련한다. 이전까지 교통공사 내부적으로 의견 광고에 대한 명문화된 개념과 게시 기준은 없었다. 의견 광고는 이 기준이 마련된 이후에 재허용된다. 기존에 없던 개념과 기준이 생기면서 금지 이전보다 오히려 의견 광고 게시가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지 결정이 난 지난 6월 이전까지 ‘의견 광고’는 혐오·차별·음란·퇴폐 등과 같이 문제가 될만한 내용이 아니면 대부분 게시가 가능했다.


7일 회의에는 9명의 심의위원이 참석해 ‘의견 광고 재허용’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용하는 지하철역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광고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과 “의견 광고 금지는 표현의 자유를 억업하는 것이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게시 기준을 새로 만들어 이에 부합하는 의견 광고만 허용하자”고 결론 났다.

지난 6월초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 숙대 학생들이 내건 페미니즘 광고.[사진 서울교통공사]

서울지하철 1~8호선에 의견 광고 게시가 원천적으로 금지된 건 지난 6월 22일이다. 교통공사는 이날 심의위원회를 열고 “앞으로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 또는 성·정치·종교·이념의 메시지가 담긴 의견 광고를 역내에 내는 것을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지하철을 논란의 장으로 계속 끌어들이지 말라. 지하철은 모두에게 편안한 이동을 제공하는 것이지 논쟁의 공간이 아니다”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교통공사가 이 같은 규제를 결정한 이유는 ‘의견 광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아서였다. 지난 5월 숙명여대 중앙여성학동아리 학생들이 숙대입구역에 게시하려 한 페미니즘 광고 일부의 문구를 교통공사가 수정하도록 요구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광고 문구의 일부 수정을 요구하자 학생들이 광고를 자진 철회했고, 내용상 문제가 없는 숙대의 다른 페미니즘 광고들은 게시됐다”고 설명했다. 철회된 광고에는 ‘숙대 입구에서 하지 말아야 할 상식/ 허락 없이 몸에 손대지 말 것/ 몰래 촬영하지 말 것/ 무리하게 번호를 요구하지 말 것/ 위 사항을 지키지 못할 시 숙대 연못에서 물고기와 합석’과 같은 문구가 담겼다.

지난 6월초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 숙대 학생들이 내건 페미니즘 광고.[사진 서울교통공사]

또 지난 6월 한 청년단체는 교통공사가 판문점 선언 지지 광고를 승인해주지 않자 서울광장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 모임이 대통령 생일(1월 24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지하철역에 내걸면서 공공장소의 ‘정치적 중립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지하철역에 의견 광고가 실리면 교통공사에는 ‘그런 광고를 공공기관이 왜 받아주느냐’는 항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지난 6월 서울광장에서 한 대학생 단체 회원이 ‘판문점 선언’ 지지 광고를 지하철역에 걸지 못하게 한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교통공사의 이 같은 규제 결정이 알려지면서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시까지 나서 지난 7월 초 서울교통공사 관계자가 참석한 회의를 열고 이를 질책했다. 진성준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이 회의에서 “의견 광고에 대한 원천적인 금지는 과도한 규제”라며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크니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교통공사는 성·인권 분야 전문가 2명을 심의위원으로 추가 위촉해 광고심의위원회를 열고 의견 광고 게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 것이다.


지난 1월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가 실려있다.[뉴스1]

전문가들은 ‘의견 광고 재허용’ 결정에 대해 대체적으로 환영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논란이 우려된다고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가이드 라인을 촘촘히 만들어 의견 광고의 순기능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역시 “공공장소에서의 건전한 의견 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발상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다. 여론 전문가인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간은 정치적·이념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민주화된 사회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매체는 꼭 지하철역이 아니여도 얼마든지 많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공장소에 다양한 의견이 내걸리면 이를 본 시민들이 판단력·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건강한 토론의 장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와 다른 의견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휩쓸리지 않으려면 의견 광고를 봐도 자신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 먼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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