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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의 슬픈 역사 간직한 원주민 마을

[LA중앙일보] 발행 2019/05/15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2019/05/14 20:57

스위노미시 인디언 보호구역

(1) 워싱턴주 피달고섬에 있는 스위노미시 인디언 보호구역. 미국의 어느 인디언 보호구역보다 경치가 아름답다. (2) 연어를 치켜들고 있는 스위노미시 인디언 토템. (3) 인디언 보호구역은 자치지역으로 주와 별개로 원주민들만의 행정부와 사법부, 의회가 있고 경찰도 있다. 이곳 스위노미시 인디언들은 어업과 카지노, 주유소, 골프장, 캠핑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4) 스위노미시 수로가 피달고섬과 육지를 경계한다. 다리 건너편에는 라 코너라는 조그만 백인 마을이 있다.

(1) 워싱턴주 피달고섬에 있는 스위노미시 인디언 보호구역. 미국의 어느 인디언 보호구역보다 경치가 아름답다. (2) 연어를 치켜들고 있는 스위노미시 인디언 토템. (3) 인디언 보호구역은 자치지역으로 주와 별개로 원주민들만의 행정부와 사법부, 의회가 있고 경찰도 있다. 이곳 스위노미시 인디언들은 어업과 카지노, 주유소, 골프장, 캠핑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4) 스위노미시 수로가 피달고섬과 육지를 경계한다. 다리 건너편에는 라 코너라는 조그만 백인 마을이 있다.

워싱턴주 피달고(Fidalgo Island)섬은 태평앙 바다에서 깊숙이 들어와 많은 섬과 반도가 있는 100여 마일의 퓨젯 사운드(Puget Sound)만 중심에 위치해 있다. 스위노미시 수로(Swinomish Channel)가 피달고섬과 육지를 경계한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건너편에는 라 코너(La Conner)라는 조그만 백인 마을이 있다. 그래서 이지역을 통칭해 라 코너라고 부르지만 다리 넘어 피달고섬은 스위노미시 인디언 보호구역이다.

900여명의 인디언들이 모여 사는 피달고섬 인디언 보호구역내 인디언 소유 RV캠핑장에서 늦여름과 초가을을 지냈다.

이곳은 인디언들이 수천년 동안 연어 등 물고기를 잡고 수렵 채취하며 사는 풍요로운 곳이다.

스위노미시 인디언을 비롯한 81개의 미국 북서부 인디언 부족들이 1855년 미국 정부와 맺은 포인트 엘리엇(Point Elliott) 조약으로 대대로 살던 넓은 땅을 백인들에게 내주고 한정된 곳에 살지만 피달고섬 스위노미시 인디언 보호구역은 여행을 하며 다녀본 미국 전국의 어느 인디언 보호구역보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영국인의 미국 이주는 16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1607년초 잡다한 영국인 144명이 수전 콘스탄트(Susan Constant), 갓스피드(Godspeed), 디스커버리(Discovery)호에 승선하여 영국을 떠났다. 1607년 4월 26일 지금의 버지니아주 체서피크만에 항해에서 살아남은 104명이 도착했다. 그들은 이곳을 영국왕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타운이라고 불렀다.

제임스타운은 영국 정부가 설립한 것이 아니라 몇몇 귀족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만든 주식회사 형태의 침략 집단이었다.

1620년대에는 청교도들이 보스턴 근처 뉴잉글랜드 지역에 정착했다. 영국인들은 습한 날씨와 혹독한 겨울을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견뎌내고 정착 할 수 있었다. 이후 이민자가 늘어나고 정착지가 필요해지자 원주민들과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 이전에 아메리칸 인디언 말살 정책을 추진했다. 워싱턴은 민병대를 동원해 인디언을 살상하고 초토화해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인디언들을 몰아냈다. 미국 독립 이후에는 넓은 땅을 찾아 백인 정착민이 서진하자 그곳에 사는 인디언은 저항을 하였고 미국 정부는 인디언 박멸 전쟁을 벌였다.

미국 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루 잭슨은 "인디언은 없어져야 할 열등 민족이다"라고 역설했다.

1830년에는 토머스 제퍼슨이 제창한 인디언 강제이주법에 서명하고 인디언들을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 시키는 인종청소 정책을 펼쳤다. 미국 남동부에 흩어져 살던 체로키족, 축토족, 치카소족, 크리크족, 세미놀족 등 6만여명의 인디언들이 우선 강제 이주를 당해 오클라호마로 이동했다.

약 1만7000명의 체로키 인디언은 4개월가량 1200마일을 걸어서 이동했다. 이동 중에 굶주림과 병으로 4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체로키족은 고난의 강제 이주를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부른다.

이후에도 30여 인디언 부족들이 오클라호마로 보내졌다. 1840년 이후 미시시피강 동쪽에는 인디언이 없게 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평원의 인디언들은 소탕되거나 보호구역에 수용되었다. 인디언 전쟁 중이던 1876년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중령과 제 7기병대는 수(Sioux)족, 사이엔(Cheyenne)족, 아라파호(Arapaho)족 연합 인디언들에 전멸당하기도 했다.

1890년 12월 29일 사우스다코타 운디드 니(Wounded Knee)에서 항복한 큰발(Big Foot) 추장과 350여명의 수족 인디언들을 무장해제하는 과정에서 한 인디언이 저향하자 포위하고 있던 제 7기병대가 인디언들에 총격을 가해 큰발 추장을 비롯 노인, 여자와 어린아이 146명이 사망하고 5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운디드 니 사건은 미국측에서는 운디드 니 전투(Battle of Wounded Knee)라 하고 인디언들은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 패배에 대한 보복 학살(Wounded Knee massacre)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은 대평원 평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미군은 운디드 니 전투를 인디언과의 마지막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1928년에서야 시민권을 얻었다.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은 567개 부족이 있으며 약 300만 명으로 인구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100만 명 이상이 원주민 보호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을 여행하며 여러 곳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다녔다. 오클라호마주 체로키 인디언 보호구역 탈레코아(Tahlequah)는 '눈물의 길'을 상기하고 있었고, 사우스다코타주 파인리지(Pine Ridge) 수(Sioux)족 보호구역은 미국 내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운디드 니 학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듯 우울하게 느껴졌다.

반면 미대륙 북서부는 적은 인구의 백인들이 늦게 정착했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좁은 보호구역에 살지만 대대로 살던 땅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본 북서부 인디언들은 시애틀 추장의 말처럼 '사슴, 말, 큰 독수리, 조랑말과 인간,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땅의 한 부분'으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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