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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억류됐다 극적 석방 유나리씨 "클린턴이 구했지만 지켜준 건 가족들이죠"

[중앙방송] 기사입력 2010/11/04 18:32

“추운 겨울 탈북 취재원을 보호하기위해 연락처가 적인 메모가 담긴 코트를 강물에 벗어 던졌죠, 추워보였던지 북한군이 군복을 벗어주더군요” <br><br>유나리씨는 4일 오전 중앙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사람들도 ‘사람’ 이었다고 증언했다. <최인성 기자>

“추운 겨울 탈북 취재원을 보호하기위해 연락처가 적인 메모가 담긴 코트를 강물에 벗어 던졌죠, 추워보였던지 북한군이 군복을 벗어주더군요”

유나리씨는 4일 오전 중앙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사람들도 ‘사람’ 이었다고 증언했다. <최인성 기자>

2009년 3월 17일.

올해 서른 일곱, 한 아이의 엄마인 유나 리(37)씨에게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씨는 바로 이날 부터 141일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나라이자 적대국인 북한에 억류돼 고통의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당장 내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한치앞도 볼 수 없었던 지옥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북한에서의 억류생활 이후 '더 큰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석방 이후 1년여 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회고록 집필에만 몰두해 왔던 이씨가 한인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중앙방송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펴낸 회고록 'The World Is Bigger Now' <이제 더 커진 세상:브로드웨이 북스> 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그의 생생한 경험은 세상의 가치를 더욱 크고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다음은 유나리씨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 북한 국경에서의 체포 당시 상황은.

:미국 '커런트 TV'의 기자로 동료인 중국계 미국인 로라 링 기자, 미국인 프로듀서와 함께 탈북자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기자라는 신분을 알리면 사실상 취재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중국 입국시에는 이를 숨겼다. 두만강 인근에서 조선족 안내인의 도움을 받으며 취재를 하던 중 탈북자들이 기거하는 임시 비밀 거처에 가게됐다. 취재에 열중하다 순간적으로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처에서 빠져나와 다시 두만강을 건너던 중 소총으로 무장한 북한군의 추격을 받았다. 정말 안간힘을 다해 뛰었다. 문득 로라링과 뛰면서 총에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인 링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 도와주려던 순간 북한군에게 체포됐다.

-체포됐을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을 텐데

:탈북자 취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것이 탈북자들의 신변보호였다. 탈북자들은 북송되면 강제노동에 처해지거나 처형 될 수도 있다. 때문에 탈북자 취재원의 신분을 보호하는 것은 기자로서의 중요한 의무다. 그런데 체포 당시 코트 주머니에 탈북자들의 연락처가 들어 있었다. 체포 됐다는 두려움 보다는 이들의 연락처가 노출되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먼저였다. 북한군이 몸을 잡아 끌어 당기는 과정에서 가까스로 코트를 벗어 두만강 얼음판에 버렸다. 신기하게도 극단적인 상황이 되니 오히려 침착해 졌다.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심정을 말해달라.

:일부러 변호사 선임을 거부했다. 하나님이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형벌이 내려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2년 선고를 받고 처음으로 대성통곡했다. 끝내 북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딸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해 석방됐다. 당시 상황은

:북측 관리들이 미국에서 '중요한 사람'이 온다고 해서 평양의 모 호텔로 만나러 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왔을 것이라고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문이 열리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이제 살았구나!' 안도했다. 품에 안기는 순간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갖었다. 클린턴 전대통령은 "아직 여러 회의가 남아있지만...집에 갈 수 있도록 해보자"고 말했다. 다시 살아난 것이다.

-4개월여 만에 가족들과 극적으로 상봉했을 때 느낌은

:딸이 처음에는 안기기를 주저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린아이에게 4개월이 넘는 시간은 너무 길었던것 같다. 잠시 주저했던 딸이 품에 안기고 가족을 다시 만났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나를 힘들게 했던 상황, 억류기간 동안의 고통 등 미워했던 모든것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교육을 마치고 미국(96년)에 왔다. 반공교육 세대인데

:어릴때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포스터와 만화 '똘이장군' 도 기억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나고 감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보니 달랐다.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억류당시 북한 여성 2명에게 24시간 감시를 받았는데 화장품, 남자친구, 헤어스타일에 대한 대화를 하더라. 60년 동안 분단돼 있지만 아직도 북한에는 한국과 같은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뻥튀기를 보고 반갑기도 했다. 책을 쓰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많이 느꼈다. 북한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억류전과 후의 삶의 변화가 있다면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는 항상 일이 먼저였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이 먼저다. 사실 클린턴 대통령이 구해줬지만 북한에서 내내 나를 지켜준 것은 미국에 있던 우리 가족이었다.

-회고록 'The World Is Bigger Now' <이제 더 커진 세상>는 어떤 책인가

:가족에 대한 사랑,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억류기간동안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141일 동안의 억류생활과 조사과정, 북한 탈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노력, 억류중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 등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억류기간동안 취조를 받을때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또한 재판당시 반역죄인으로 몰려 스스로가 변하는 것을 느끼며 고통을 받았다.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정신이 황폐해 졌지만 가족과 신앙이 이런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북한억류기간 동안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이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희망을 찾고 위로 받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얼마전까지 일하던 커런트 TV에 사표를 냈다. 새로운 일을 찾고 싶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소망과 의무감이 생긴다. 더 큰 세상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뜻있는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찾아볼 생각이다.

중앙방송 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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