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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르포] '일본 최고 야경' 하코다테의 밤은 암흑이었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7 01:07

호텔 "손전등과 2리터 생수로 버티세요"
"전화 불통, 객실 예약 취소 전화 못받아"
겨우 문 연 주유소엔 1킬로 차량 행렬

진도7 아쓰마초 산사태 피해자들 오열
40미터 높이 나무가 들풀처럼 나뒹굴어

삿포로시 신호등은 중심부에

#1. "만실(萬室·빈방이 없음)은 아닌데 만실입니다. 죄송합니다."
강진이 홋카이도를 덮친 6일 오후 홋카이도(北海道) 남단 하코다테(函館)시 역 부근의 호텔 프런트 직원은 빈 방을 구하려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6일 밤 정전사태로 암흑이 된 하코다테의 야경(위). 아래는 일본 3대 야경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하코다테의 평소 야경. 두 사진은 같은 자리에서 촬영됐다. 아래 사진은 2015년 11월 촬영.[AP=연합뉴스]

이 알쏭달쏭한 말에 대한 직원의 설명은 이랬다. 홋카이도 전역에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전화 역시 불통이 됐다. 예약을 취소하는 전화 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방을 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하코다테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홋카이도의 관문’으로 불리는 신치토세(新千歲)공항이 폐쇄되면서 하코다테 공항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티켓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공항은 자체 발전기로 예비 전력을 투입해 어렵사리 운영됐다. 전광판도 멈췄고, 탑승수속도 모두 수기로 진행됐다.


6일 밤 정전된 하코다테 공항의 매점에 모여있는 승객들.[AP=연합뉴스]

‘만실이 아닌데 만실’이라는 웃지 못할 사정은 렌터카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산사태 피해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렌터카 업체를 방문했지만 "취소할 손님이 대부분이겠지만, 취소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아직은 내줄 차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두 번 세 번 찾아간 뒤 그날 밤 늦게야 어렵게 차를 배정받았다.

정전은 '일본 최고의 야경'으로 유명한 관광도시 하코다테의 밤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저녁 7시쯤 해가 저물자 도시는 암흑처럼 변했다. 낮 시간에 보였던 건물도 밤엔 보이지 않았다. 꺼진 신호등 대신 교통 경찰이 수신호로 차량을 안내했다.
평소 흥청대던 역 주변도 방이 날 때까지 호텔 앞에서 주저 앉아 기다리는 손님들로만 시끌시끌했다.
하코다테 역 안에는 여행객 200여 명이 있었다. 모두 열차 운행 재개를 기다리는 이들이다. 역무원들은 오후 8시 담요를 바닥에 깔아줬고, 이들은 밤샘 태세에 돌입했다.

정전 때문에 주유소들도 문을 닫았다. 자체 발전시설을 돌려 유일하게 문을 연 주유소엔 1km가 넘는 차량 행렬이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주유소 주인은 “20리터까지만 주유가 가능하다”고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운전자는 “두 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그나마 식료품이라도 사러 가려면 기름과 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변의 편의점은 오후 4시쯤 모두 영업을 마쳤다. 일찌감치 건전지와 생수, 식료품들은 동이 났다. 한 슈퍼엔 “휴대전화 충전기 다 팔렸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6일 밤 하코다테의 편의점에 "오늘은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하고, 휴대폰 배터리는 다 팔렸다"는 글이 걸려있다. 윤설영 특파원


취재팀은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역 주변 작은 호텔 방을 겨우 잡았다. 호텔 직원은 기자에게 손전등과 2리터짜리 물병을 건넸다. 그 물로 손을 씻고 화장실 변기에 쏟으라고 했다. "내일(7일) 저녁엔 전기가 복구될 것”이란 직원의 말과는 달리 바로 그날 밤 10시 기적처럼 전기가 들어왔다. 가동을 멈췄던 인근 화력 발전소가 복구돼 일부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된 것이다.

#2. "어머니~ 살아 계신거죠~."
종잇장처럼 구겨진 집 앞에서 목놓아 어머니를 부르던 60대 여성 다키모토는 끝내 바닥에 주저앉았다.전날 밤 겨우 빌린 렌트카로 7일 새벽 4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홋카이도 아쓰마초(厚眞町)의 요시다 지구. 취재팀을 기다린 건 90대 어머니를 찾는 60대 딸의 절규였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와 토사 붕괴가 가옥을 집어삼킨 홋카이도 아쓰마초. 윤설영 특파원


산사태에 쓸려내려간 집엔 3대가 함께 살고 있었다. 가족 중 두 명은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어머니 요시코(95)의 시신을 찾기 위해 소방대원과 자위대원, 경찰들이 밤새 수색활동을 벌였다.
탐지견까지 동원했지만 이틀째 소식이 없었다.



아쓰마초는 일본 기상청이 발표하는 진도(지진으로 인한 흔들림) 10단계 중 최대치인 7을 기록한 곳이다. 산사태로 토사가 무너져내리며 가옥을 덮쳤다. 새벽 3시 8분에 발생한 강진이었기에 대피할 틈도 없었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와 토사 붕괴가 가옥을 집어삼킨 홋카이도 아쓰마초. 윤설영 특파원


7일 오후 3시 현재까지의 인명피해 ‘사망 11명, 심폐정지 7명, 실종 22명’(NHK 집계)중 대부분이 이 일대에서 발행했다.

산사태 현장엔 "조금만 더 참아"라고 기도하며 가족들의 생환을 기다리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와 토사 붕괴가 가옥을 집어삼킨 홋카이도 아쓰마초. 아쓰마초 여기저기가 지진 피해를 입었다. 윤설영 특파원


"대규모 산사태의 원인은 대부분 화산재로 이뤄진 지층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군다나 지진 발생 전날 비까지 내려 지반이 더 약해졌다.


산줄기마다 메스로 도려낸 듯한 흙살이 드러났고, 흘러내린 흙더미와 나무가 뒤엉켜있었다. 키 30~40m 의 나무들이 들풀처럼 쑥쑥 뽑혀 나뒹굴었다.



아츠마초 초입에 있는 한 사찰. 돌로 된 문도 진도7의 강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윤설영 특파원

토사에 휩쓸린 집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본래 몇 층짜리 건물이었는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뒤집힌 자동차들은 진흙에 파묻혀있었다.


아츠마초 주민센터 입구의 타일이 무너져있다. 윤설영 특파원


#3 아쓰마초에서 삿포로 사이엔 토사 붕괴로 길이 군데 군데 끊겼다. 그래서 평소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지만 이날은 30분이 더 걸렸다.


삿포로 시내 중심부 주요 거리엔 신호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외곽쪽은 아직이었다. 교통 경찰들이 신호등 역할을 대신했다.

편의점과 마트 주변엔 일용품을 사기 위한 행렬이 여전했다. 두루마리 휴지와 물을 사려는 사람들이었다.

홋카이도에 체류 중인 한국인 관광객 수용시설 오도리 고등학교 체육관도 찾았다. 전날까지는 300여 명이 머물렀지만 7일 오후엔 100여 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경북 구미에서 마을 주민 25명과 단체 여행을 왔다는 김노미(63)씨는 “호텔 10층에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벽을 더듬으며 겨우 탈출했다”고 말했다.


아쓰마초 마을사무소에 마련된 주민대피소. 커다란 종이에 사상자 현황이 적혀있다. 윤설영 특파원

그는 삿포로시와 영사관측이 준비한 주먹밥과 물을 부어먹는 건조밥 등으로 하루를 버텼다고 했다.

늘어나는 인명 피해와 가족들의 오열을 뒤로 한 채 홋카이도는 지진의 충격에서 조금씩 헤어나오는 모습이다.

이날 오전 부분 정상화된 신치토세 공항은 ‘탈 홋카이도’인파로 북새통이 됐다. 신칸센 운항도 재개됐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와 토사 붕괴가 가옥을 집어삼킨 홋카이도 아쓰마초. 아쓰마초 주민센터에 마련된 주민대피소.윤설영 특파원

홋카이도 전역을 ‘블랙아웃(대정전)’패닉에 몰아넣었던 295만 세대의 정전 사태도 절반은 회복됐다.
7일 오전까지 절반을 조금 넘는 149만 세대에서 전기 공급이 복구됐다.



통신회사가 대여해 준 충전기에 휴대폰들이 매달려 있다. 윤설영 특파원

하코다테ㆍ아쓰마ㆍ삿포로=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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