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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곳이 얼굴 아니라 다행" 초긍정 마인드의 힘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8 17:01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11)

폭우가 쏟아지는 산막. [사진 권대욱]


산막에 터 잡은 지 오래 되다 보니 사건 사고도 많다.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지난 주말 산막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산막 생활을 하며 얻은 영광의 상처가 많은데, 그중 엔진톱 쓰다가 발을 잘라 생긴 상흔은 노병의 훈장처럼 아직도 선연하고 비 올 때마다 쑤신다.

어릴 때 병원에 문병을 가면 입원해 있는 아저씨·아주머니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사회에 나와서도 격무에 시달리거나 정말 복잡하고 안 풀리는 일이 있어 도망이라도 치고 싶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라도 아파 입원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바람이었다. 이 바람이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다가 산막 생활로 인해 현실이 됐다. 그 경험을 풀어볼까 한다.

4년 전 엔진톱에 왼쪽 발등 찢겨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不入亂邦不居)라 했던가. 2014년 봄 산막 인근 야산에서 나무를 정리하다가 왼쪽 발등을 엔진톱에 찢기는 사고를 당했다. 급경사지에서 충분한 작업자세를 확보치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병원 응급실에 가 5시간 동안 사진 찍고, 주사 맞고, 꿰매고, 기다리다 돌아왔다.


엔진톱(좌). 2014년 인근 야산에서 나무를 정리하다가 왼쪽 발등을 엔진 톱에 찢기는 사고를 당했다(우). [사진 권대욱]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는데 절뚝거리고 다니니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이실직고했다. 언젠가 아내가 화상 입었을 때 그랬듯 모든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인대나 신경이 끊어지지 않아 다행이고, 이웃집 하 원장이 마침 옆에 있어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고, 오른발 아닌 왼발이라 문제없이 운전할 수 있어 다행이고, 상처 부위가 꽤 높은 발등이라 신발도 신을 수 있어 다행이고, 좋은 의사 선생 만나 처치 잘했으니 다행이었다. 조금만 깊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간 너무 과신한 것 같았다. 좀 더 겸허하고 두루두루 살피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건강은 잃어봐야 느낀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며칠 지나면 좋아질 것이고 비록 다리는 절뚝거려도 할 일은 다 하고 살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가장 다행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하동주 원장(성남 장수당 한의원)이 산막에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대강 소독약 바르고 붕대 처매고 다음 날 새벽에 서울로 왔을 것이다. 많이 아프지만, 진통제 몇 알 먹고 버텼을 것이다. 내가 좀 그랬다. 병원서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내가 무식했는지 알겠더라. 엔진톱, 기름, 톱밥 찌꺼기 그것들 그냥 뒀다면 파상풍이라도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 원장, 원주병원 선생님들, 간호사분들 정말 감사했다.

‘궁즉통’ 진리 깨달아
이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고 궁즉통 (窮則通), 궁하면 통한다는 세상 진리가 새삼 깨달아지는 사건이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이 모른다. 내가 사고를 당할 줄도, 목발을 짚는 신세가 될지도 누군들 알았겠는가. 그저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분수를 알고 겸손해야 함을 배웠다. 샤워를 안 할 도리가 없고, 구두도 신지 않을 수 없고, 걷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비닐봉지에 발싸고 테이핑하기, 목발 짚기, 크고 부드러운 구두 신기였다. 마침 그런 구두가 있어 다행이었고, 목발 빌려주는 후배 의사가 있어 다행이었다. 따지고 보면 다행 아닌 게 없다. 움직이지 못하니 입으로 다했다. “아프기도 하지만 편하기도 하구나. 세상에 마냥 좋기만 한 일도 없고 마냥 나쁘기만 한 일도 없구나.” 좋음이 있으면 나쁨이 있고, 나쁨이 있으면 좋은 일도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러니 담담해야 하는 것이다.


궁즉통의 시간을 보내던 때의 깁스 사진. 초기 수술에서 있던 실수때문에 2차 감염이 생겨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재수술을 받았다. [사진 권대욱]


이런 안도도 잠시, 2차 감염 염증으로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재수술받는 것이 결정되고야 말았다. 겨우 발 부상으로 입원이라니 좀 아쉽긴 하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모든 것이 편안했다. 큰 병원 왔으니 안심하고 빨리 모든 것이 잘 되길 바랐다. 검사도 많고 수속도 복잡하지만, 소원 성취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이 사고가 장기화·복잡화한 것은 전적으로 1차 응급치료 시의 불완전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이물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봉합해 2차 감염 발생이 일어났던 것이다(봉합 부위를 다시 째고 보니 엔진톱 날 조각 등 이물질이 나왔다). 결국 재수술에 이르러 고통과 시간, 비용 손실이 생기고 최악의 경우 골수 관절로의 감염으로 심각한 사태에 이를 수 있었다(내 말이 아니고 의료진의 이야기).

이 경우 1차 의료진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알린다면 어떻게 알리는가, 그 밖에 취해야 할 조치는 없는가 고민이 많았다. 나름 고생하고 최선을 다했겠지만, 사람의 몸과 생명 앞엔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다. 이런 사태가 재발하면 곤란할 것이란 생각인데, 이 와중에도 들은 풍월은 있어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다.
② 들추어내는 걸 정직으로 착각하지 말라.
③ 남의 나쁜 점을 말하는 자를 미워한다.
④ 허물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이 정말 큰 잘못이다.

결국 의료진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또 다른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애써달라. 당부하며 마무리했다.

차원 높은 아내의 ‘다행타령’

아내의 '다행타령' 덕분에 빠른 극복을 할 수 있었던 시절. [사진 권대욱]


참고로 아내의 ‘다행타령’은 한 차원이 더 높다. 오래전 어머니 제사를 어느 사찰에서 모셨는데 끓는 물이 아내 다리에 쏟아져 심각한 화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그때 병원에 입원하면서 했던 다행타령이 그렇다.

여름 아니라 겨울이어 다행이다
얼굴 아니라 다리여서 다행이다
일요일에도 화상전문병원이 집 가까이 열려있어 다행이다

이런 다행타령이 이어지다 급기야는 ‘손님 아닌 내가 다쳐 다행이다’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 다행타령에 나도 아내도 멀쩡하게 나아 잘살고 있다. 긍정의 힘은 이렇게 크다. 산막은 긍정을 가르친다.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totwkwon@amba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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