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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칼럼] 어불성설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7/26 16:00

2009년 4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에서 40대 판사가 “어디서 건방지고 버릇없이 툭 튀어 나오느냐”고 변호사에게 소리를 지른다. 판사와 피고가 말을 주고 받는 중에 허락없이 끼어들었다고 면박을 주는데 변호사의 나이가 69세였고 이 판사의 나이는 42살이었다. 아들뻘이나 됨직한 젊은 판사로부터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심한 모욕감을 느낀 노장의 변호사는 피고의 변론을 제대로 할 기회를 얻지도 못했으며, 여기서 문제를 삼으면 판사의 미움을 받아 고객인 피고에게 불이익을 주게 될까 봐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다.

이해가 안되고 분을 참지 못한 노 변호사는 재판 두 달 후인 6월 경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오랜 검토 끝에 ‘버릇없다’는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버릇없다’는 말은 어른이 예의를 지키지 않는 나이 어린 사람을 나무랄 때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변호사가 법정 질서를 해치는 행동을 했기에 쌍방이 다 잘못한 것이다며 유야무야 시켰다. 노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이 어불성설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어불성설이란 직역을 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는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아서 말이 되지 않을 경우에 쓰이는 성어로 말이 사리와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한껏 자랑했던 한국 정부와 국방부의 작품인 마리온 국산 헬기가 지난 주 연습 비행을 하다가 추락하여 화염 속에서 귀한 해병대 장병 5명이 불타 죽었다. 자식과 손주를, 남편과 아빠를 잃은 유족들의 속 터지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더 괘씸한 것은 남의 일처럼 보는 정부와 국방부의 무관심한 태도였다. 정부는 조문은 물론 일체의 논평도 내 놓지 않았고 조화 하나만 보냈으며, 직속 책임자인 송영무 국방장관 역시 유가족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기 보다 국산 헬기가 세계최고의 수준이었기에 사고 원인을 지켜보겠다며 수수방관했다.

청와대가 이러하니 여당도 덩달아 일체의 조문을 하지 않아 국방의 의무를 지키려 군에 갔다가 산화한 고인들의 유가족들은 당연히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야당 의원들의 조문 행렬은 이어져서 정치권의 체면은 살린 듯하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송장관에게 유족들의 불만 소리가 커지는 이유를 묻자, 그는 유족들이 의전 문제에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난 것이라고 황당한 말을 했다. 또한 남들보다 뒤 늦게 사고 발생 4일만에 장례식장에 나타난 그에게 유족들이 “언제 우리가 경황이 없는 이 시점에 의전을 문제 삼았냐”고 따졌고 그의 무책임과 비상식적인 언행을 어불성설이라고 규탄했다.

송장관은 “내가 그렇게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냐”, “언론이 거두절미하고 오보를 낸 것”이라면서 오히려 유족들에게 항변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사고가 난 직후에도 7월20일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청와대의 유유한 모습이 세간에 회자되자 청와대는 7월23일 김현종 국방개혁 비서관을 보내 조문을 하려 했으나 공식 조문일정은 22일 끝난 상태이기에 유족들은 조문을 거절했다.

주동주 소설 ‘백정’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것은 자칫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조선격언과 같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의를 빙자한 교만이며 속임수일 뿐이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백정을 대하는 상전들의 언행은 어떠한 경우든 모두가 타당한 것이라는데 이는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이라는 말이다.

‘말만 하다 망한 조국’의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의 군화에 짓밟힌 조국 프랑스를 이렇게 한탄한 일이 있다. “히틀러의 침공을 눈앞에 둔 1939년의 프랑스. 그러나 정치가들은 서로를 향하여 중상과 모략으로 사분오열하면서 소모적인 말싸움으로 나날을 보냈고, 제3공화정의 비생산적인 말싸움이 결국은 프랑스 패인의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러시아 문제 학자 폴 홀랜더는 공산국에 대한 ‘신유토피아 환상 증후군’이라는 유행병을 분석해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서구 지식인들이 소련, 중국, 쿠바 등 이상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폐쇄적 나라들이 환상적 유토피아를 그리다가 환멸에 빠진다는 사례를 조목조목 적어 나가면서, “환상은 자유지만 다만 그 자유가 작금의 불안과 혼란을 빚고 있어서 문제”라고 지적한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주소를 보면 사사건건 포플리즘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정치인들의 어불성설이 난무하고, 정부와 각료들은 소신보다는 상전의 속마음을 읽으려 애쓰다가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어불성설로 사안을 묘하게 회피하려는 냄새가 물씬 풍겨 구린내가 난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포플리즘은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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