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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수능 국어 지문은 왜 어려울까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10 08:22

기고 이승호 한국교육평가인증 대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국어 영역에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독서 분야의 지문 읽기다. 특히 과학과 기술, 경제와 관련한 지문은 전문적인 내용까지 다루는 경우가 있어 읽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독해가 어려운 건 내용이 전문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어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감안해 지문을 만든다. 즉 내용의 깊이보다 독해를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깔아둔 장치가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 분야의 지문은 일반 문학과 다르게 문제를 내기 위해 쓴 글이다. 모든 문항에는 보기(선지)가 다섯 개씩 주어지는데, 정답에 대한 근거는 지문에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문제는 지문을 참고해 다섯 개 보기 중 적절한 것을 고르게 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게 한다.)

근거가 있는 위치는 ‘근거지점’이라고 부르며 각 보기의 근거지점이 비슷할수록 정답을 찾기 수월하다. 다른 문단까지 모두 이해하지 않고도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문항의 다섯 개 보기 중 두 개가 근거지점이 동일하고 내용이 상반된다면 둘 중 하나가 정답이 되는 ‘매우 쉬운 문제’가 돼버린다. 그래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근거지점이 중첩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출제한다.

중첩을 피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되는 정보가 지문에 골고루 녹아 있어야 한다. 지문에 포함된 문제가 세 개(보기 다섯 개씩)라면 열다섯 개의 보기에 해당하는 근거지점을 모두 다른 위치에 배치해야 하는 식이다. 게다가 짧으면 1200자, 길면 2500자라는 한정된 양의 지문에 모든 근거를 담아야 하므로 글은 매우 압축적일 수밖에 없다. 수능의 국어 영역 지문이 일반적인 교양서처럼 친절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이유다. 실제로 출제자들은 내용 이해와 무관한 수식어는 금기어로 여기고 독자를 잘 이해시키기 위한 부연 설명도 극도로 자제한다. 구체적인 예시도 필요한 만큼만 단출하게 제시한다.

한 대상을 세부적으로 묘사해 서술한 글도 학생에겐 어렵게 느껴진다. 2017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 출제된 지문(37~42번 문항)이 좋은 예다. 이 지문은 ‘보험’을 설명한 글이었는데 그다지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험생 사이에서는 어려운 지문으로 꼽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일반적이지 않은, 생소한 서술 형식에 있다. 이 지문은 보험 제도가 운용되는 방식을 면밀하게 따져 논리적인 빈틈이 없도록 기술된 글이었다. 대개 보험 제도를 설명하려면 간단한 도표나 도식 등으로 보험료율이나 보험금 총액을 정리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지문에서는 문장으로 길게 서술해 정보를 전달했다. 학생들은 같은 콘텐트여도 평소 접하지 못했던 형식으로 설명하면 익숙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낀 것이다. 이를 두고 ‘낯설게 하기’ 효과라고 한다.

‘낯설게 하기 효과’는 특히 기술과 관련한 지문에서 두드러진다. 기계의 작동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문장으로 촘촘하게 묘사하면 어렵게 느껴지는 효과는 배가된다. 서술 형식으로 기계의 작동 과정을 묘사한 글이 거의 없고 기계의 작동 과정이란 콘텐트마저 생소하기 때문이다. 기계 전문가도 낯설게 느낄 것이다.

이처럼 수능 국어의 지문은 개성이 없고 불친절해 보이지만 압축미(?)와 낯설게 하기라는 고도의 미학적 원리에 의해 쓰인 독특한 글이다. 이런 글의 특성에 익숙해지면 문제를 푸는 능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모든 판단의 근거가 지문에 있으니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원이 만든 독서 지문을 열심히 읽고 분석하는 것, 그리고 평가원의 독서 지문과 흡사한 글을 많이 읽고 분석하는 것. 그 외에 다른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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