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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음악가 구스타브 말러의 어린 시절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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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2/06 10:13

오스트리아가 배출한 작곡가며 당시 유럽 악단에서 이름을 떨쳤던 지휘자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10개의 심포니곡과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가곡들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사후 50년 이상 빛을 받지 못하다가 발굴되어 아르노트 쇤베르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벤저민 브리튼 같은 현대음악 대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20년 이상 샌프란시스코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들었는데 말러의 덕을 본 점도 있다. 그가 받은 그래미상 15개 중 7개를 말러 작품 연주로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지금 체코 공화국이 된 보헤미아 지역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언어나 인종 차별을 받았다. “나는 항상 이방인이었다. 동네 시골사람들에서는 체코 말이 서투른 외지인으로,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안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그리고 나중에 세상에서는 유태인으로. 어느 곳을 가나 나는 침입자였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부모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말러는 그들은 불과 물 같은 사이였다고 회상한다, 거칠고 야망에 찬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항상 힘없는 순교자였다. 할아버지는 떠돌아다니며 리본을 파는 행상으로 미천한 신분에 불과했지만 아버지는 넘치는 활력과 부지런함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마을에 술집을 차리고 성공해서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머니는 비누 제조업을 하는 부유한 집의 딸로 교육을 잘 받았고 섬세한 여인이었는데 아버지는 이런 배경의 차이를 참지 못하고 자주 부인에게 손찌검 질을 했다.

따라서 말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미워했고 어머니에 대해 고착이 될 정도로 애정을 품었으며 그녀를 이상형의 여인으로 여겼다. 어머니는 걸음걸이가 약했고 말러 역시 심장이 약해서 약간 발을 절었는데 그것까지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이라고 생각했다. 말러는 체력을 단련시키려고 어려서부터 걷기나 등산, 수영 그리고 자전거 타기에 몰두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체력, 임기응변, 넘치는 에너지는 아버지로부터 받을 유산이라고 간주했다.

그는 수많은 질병과 죽음을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했다. 12명의 형제자매들 중 5명은 어린 시기에 사망했으며 남동생 한 명은 자살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죽음에 대한 강박이 생을 지배했다. 후에 ‘죽은 아이를 위한 노래’와 ‘대지의 노래’를 지은 이 작곡가는 어려서부터 삶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이에 따른 피치 못할 죽음 사이에서 고민하며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다. 후에 작곡한 교향곡에는 자주 장송곡을 삽입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다. 4살 때 군대 막사 근처에서 살았는데 여기서 나오는 군대 음악, 그리고 체코 노동자들이 부르는 민요 등에 감명을 받고 이들을 아코디언과 피아노곡으로 연주하기 시작하더니 작곡에 손을 대었다.

10살에 자란 곳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했으며 음악성이 인정되어 15세에는 비에나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피아노 연주와 작곡으로 졸업장을 받은 후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작품 번호 1번으로 ‘탄식의 노래’란 극적 칸타타를 발표했고 이 야심작으로 작곡을 위한 베토벤 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물론 상금도 받지 못했다. 작곡만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음악가로 살아남기 위해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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