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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슬프지 않기 위해서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1/13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1/12 13:02

위로를 이야기하다 보면 고통이나 슬픔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사는 게 괴롭고 슬프지 않다면 위로도 필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린 인생에 고통이나 슬픔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어차피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아프지 않을 수 없고, 죽지 않을 수 없고, 예기치 않은 일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사람과의 만남에서 갈등이 생기지 않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꼭 내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수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힘이 들 겁니다.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죠.

고통스러운 일이나 슬픔을 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막상 내 앞에 내 일로 닥쳐오면 참을 수 없습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나에게’라는 질문을 던지고 괴로워합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나에게 이런 잔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탄식과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 뜻밖의 순간에 밀려옵니다. 참 괴로운 일입니다.

우리말 ‘슬프다’의 어원이 ‘싫다’와 같다는 것은 저도 여러 번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슬픔과 싫음의 관계가 제 머리와 가슴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싫은 일이 생겼기에 일어나는 겁니다. 싫은 일을 줄이면 슬픔도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요. 한편 슬픔을 해결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슬픔도 사라지게 됩니다. 아니 좀 멀리 떨어져 있게 됩니다. 어떤 일이 하고 싶은가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요?

안톤 슈냑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참으로 우울한 글이었습니다. 우울하기는 하였으나 제 감정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춘기의 감정에는 양쪽의 모습이 있습니다. 한없는 우울함과 한없는 즐거움 사이에서 감정이 자리를 못 잡고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울한 순간을 떠올리며 우울하지 않은 시간을 고마워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후에 제가 중학생을 가르치게 되었을 때 작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써 보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저처럼 살면서 슬픔과 기쁨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슬프게 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하였습니다. 쓸 내용이 없다고 투덜대기까지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생활이 덜 슬펐기 때문에 슬프게 하는 것을 쓰는 게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기쁘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글을 길게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의 기억에는 슬픔이 쌓여갑니다. 기쁨도 있었겠지만 쌓여가는 슬픔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나의 슬픔도 있지만, 주변 사람의 슬픔도 내게로 와서 슬픔이 됩니다. 종종은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에서 슬픔과 싫음이 같은 어원이었겠지요. 하는 일이 좋다면 슬플 일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안톤 슈냑이 길게 썼던 슬프게 하는 일들은 달리 보면 삶의 한쪽 면이기도 합니다. 슬프게 바라보면 슬프지만 달리 보면 기쁨도 되고, 행복도 되고, 고마움도 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어 간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싫은 일은 줄이고, 기쁜 일을 늘려가는 일. 그리고 슬픈 일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그러나 지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슬기롭게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일 겁니다. 당연한 진실이지만 궂은 날씨가 지나가고 나면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때 알게 됩니다. 궂은 날씨도 나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 새벽에 파란 하늘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파란색이 마음을 편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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