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77.0°

2019.10.15(Tue)

[커뮤니티 포럼] 트리플A 프로젝트는 미주 동포들의 행사

김창종 / 오픈 포럼 대표
김창종 / 오픈 포럼 대표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9/18 미주판 11면 기사입력 2019/09/17 18:04

트리플A 프로젝트 나도훈(왼쪽부터)·기효신·이햐안씨와 민병갑 교수. [사진 오픈 포럼]

트리플A 프로젝트 나도훈(왼쪽부터)·기효신·이햐안씨와 민병갑 교수. [사진 오픈 포럼]

"미국에 계신 여러분들이 제 한을 풀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본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배상을 해라, 배상을 해라!!"

2007년 7월 30일,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연방하원 연방의회에 통과되던 날 이용수 할머니의 외침이다.

벌써 12년 전 일이지만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기억

그냥 그 행사에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더라면 이토록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위안부' 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 다큐를 제작했고 풀뿌리 시민운동의 성과를 옆에서 지켜본 장본인이다.

이후 퀸즈보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시민참여센터와 한국 나눔의 집이 공동으로 진행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일년동안 기록한 다큐도 제작한 바 있다.

2011년 이용수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의 1000번째 수요집회가 UN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렸을 때도 그 현장에 있었다.

당시 두 할머니는 퀸즈보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홀로코스트 피해자분들과 아픔을 나누는 행사에 참석했고 팰팍 '위안부' 기림비 방문, 컬럼비아 대학교 연설 등 1주일간의 뉴욕 방문 기간 동안 나도 함께 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짧은 뮤직 비디오로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이슈를 미 전역에 알리기 위해 자전거로 대륙횡단을 한 트리플A 프로젝트 5기 청년들을 초대해 오픈 포럼을 열었다.

미 대륙횡단 내내 할머니들과 함께한 트리플A 프로젝트 5기 청년들이 두 달이 넘게 미국땅을 누비며 무엇을 느꼈는지, 현지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청년들의 경험담을 들어 보는게 이번 프로젝트의 피날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오픈 포럼을 주관하게 됐다.



트리플A 프로젝트의 탄생

'트리플A 프로젝트'는 독도 경비대 출신 백덕열, 심용석 두 청년에 의해 2015년 3월에 최초로 기획됐다. 처음부터 일본군 위안부 알리기가 목적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이 프로젝트의 동기를 찾을 수 있었다. 백덕열씨가 쓴 책 '독도경비대 두 청년의 미국 자전거 횡단'에 나오는 내용이다.

-심용석 "군대 절친한 선후임 사이였던 우리는 군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회에서 만났다. 전역 후에 미국 횡단을 계획하던 나는 이 친구와 함께 간다면 즐겁고 유익하고 뜻깊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난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제안했다."

-백덕열 "군대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선임이 있었다. 그런데 휴가를 나와서까지 연락이 왔다. 자기가 먼저 복귀를 하니 터미널에서 배웅을 해달라는 전화였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고속터미널, '으슥한 곳'으로 불러가더니 제안했다. '너 나랑 같이 미국 횡단할래? 자전거로'.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가겠습니다'."

이들은 대륙횡단의 명분을 찾고 싶었다. 독도 알리기였다. 그러나 전에 독도 알리기로 대륙횡단을 했던 선배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독도'는커녕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낮은 상황. 우리는 미국 주요 사이트에 독도 표기를 주장하며 횡단을 하려 했지만, 미국인들의 독도, 한국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노력해봤자 우리의 취지를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외교의 최전선인 독도에 근무하면서 관심이 커졌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려보자 결심했습니다. '독도'와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에 많은 분노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을 '창녀'라든지 단순 '인신매매의 희생양'이라는 식의 심각한 역사왜곡과 본질 흐리는 행태에 우리의 행동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싶었습니다. 독도라는 영토분쟁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굉장히 지엽적인 문제 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즉, 인권침해의 문제는 전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트리플A 프로젝트는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정(Admit)하고 사죄(Apologize)해야 하며, 할머님들의 뜻에 우리가 동행(Accompany)하고 함께 하자는 것이다.



모두 함께 만든 프로젝트

1991년 8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90년대 초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러차례 나눔의 집을 방문했던 퀸즈 칼리지 민병갑 교수를 청년들 옆에 앉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청년들의 짐을 덜어주김 위함이었다.

때마침 민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03명의 증언록을 토대로 한국과 해외 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각국 시민운동 등 위안부 운동사를 집대성한 영문서적 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영문으로 전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트리플A 프로젝트와 맥을 같이하는 일이었다.

오픈 포럼을 준비하면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동포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지난 1기때부터 꾸준히 후원하던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LA에서부터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청년들이 숙박장소를 찾고 있을 때에는 아는 지인을 통해 숙박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이 뉴욕에 도착해서는 언론사 방문과 수요집회, 뉴욕 관광까지 모든 일정을 준비하고 기금마련도 했다. 트리플A 프로젝트 지원 뉴욕.뉴저지 동포 모임이다. 단체나 직책을 앞세우지 않고 순수한 개인 자격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효신 학생은 지루하고 힘들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횡단 초기에는 한국에 두고온 생각 즉, 토익 시험 생각과 취업 준비 생각이 제일 앞섰다"고 했다.

나도훈, 이햐안 두 청년 또한 취준생들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에 서 있는 세 청년들은 남들과 다르게 미 대륙횡단을 선택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말이다.

횡단을 하면서 곳곳에서 만난 미국인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 얘기를 하면서 어쩌면 더 많이 배웠을 것이고 현지인들이 던질 질문에 답을 준비하면서 더 공부를 했을 것이다.

민 교수는 1990년대 초 한국에서 젊은이들을 만났을 때 '위안부' 이슈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싸늘했다고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30여 년이 흘러 '위안부' 이슈를 들고 자전거로 미국 대륙횡단을 마친 세 청년들이 얼마나 기특해 보였을까?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는다

커뮤니티 포럼을 준비하면서 이햐안.나도훈.기효신 이 세 청년들의 이야기를 줄줄이 열거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유는 독자들이 직접 들어보기를 바람는 마음에서다.

가짜뉴스는 대부분 출처가 불분명한 그 어느 곳에서 짜집기가 진행되고 재구성, 재생산돼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아주 나쁜 놈이다.

오픈 포럼은 이런 가짜뉴스와 싸우며 직접 보고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 청년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세 청년들과 민병갑 교수가 출연한 간담회 내용을 직접 확인해 보기를 권장한다. 오픈 포럼 웹사이트(www.openforumny.com),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c/openforum).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