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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평창 개막식은 '볼륨 끄고' 보련다

[LA중앙일보] 발행 2018/02/05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8/02/04 14:31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 1.

한국민 대다수가 기억하는 유치환의 '깃발'. 청마는 깃발을 아우성이고 손수건이자, 순정과 애수라고 노래한다.

사실 깃발은 처절한 몸부림이다. 휘펄럭이며 상승 기운이 용솟음치는 모양새. 하지만 푯대 끝에 매달려 있어야만 깃발이다. 사실 그 모습이 깃발의 팔할이다. 손수건에 불과한 천 조각은 푯대에 얽매여 있어야 비로소 깃발이 된다. 서글픈 운명.

힘차고 자유로운 '의지'이지만, 슬프고 애달픈 '표상'이다. 깃발에는 이상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이, 싸우듯 아우성치고 몸부림치고 있다.

# 2.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사마란치 위원장은 "남북 공동입장 때 IOC기, 태극기, 인공기 등 3개의 국기를 들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다. 김운용 위원과 북한 장웅 위원은 '분단의 고착'이라며 막판 결사 반대, 우리는 그날(9월15일) 올림픽 사상 최초의 한반도 기 아래 남북 동시입장을 보게 됐다.

깃발은 하나가 됐지만, 선수들의 '단복'이 문제였다. 개막 이틀을 앞두고 남북 각각 90명씩 180명의 단체복을 마련해야 했다.

추석 명절이 겹쳐 대부분 상점이 휴점한 악조건에서 발품을 팔며 양복 300벌을 구해 시드니로 공수했다. 시드니에서는 선수들이 양복 가슴에 한반도 기를 직접 바느질했다. 그들은 국가대표였고, 개인의 영광, 이해보다 국가를 위하는 수고가 큰 자랑이고 행복이었다.

# 3.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시인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는 깃발이란 단어가 없지만, 우리 모두는 깃발을 본 듯하다. 그런데 왜 주저앉는다고 했을까. 깃발은 날아갈 듯 힘차게 펄럭이는 데.

# 4.

이번 주 평창 겨울 올림픽을 개막(9일)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깃발 올림픽 전쟁 중이다. '북한을 품자' '핵 미사일 위협을 하는 자들이 주인이 됐다' '고생한 선수들이 기회를 박탈당했다'. 3개의 깃발은 푯대처럼 날카롭다. 예리한 날 끝의 논리에 찔려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고 사마란치 위원장 말마따나 3개의 깃발을 들고 입장해야 하는 것인가.

# 5.

청마는 '펄럭임'과 '매어 있음'이라는 깃발의 부조리를 들여다 봤다. 그러곤 마지막 행에서 물었다.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깃발)을,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누구냐고.

시에서 안 보인 '그'가 요즘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깃발을 단 그들이 아우성이다. 어느 깃발이든 올림픽이 끝날 즈음, 혹은 끝난 이후 '거 보라'며 제 각각의 합리적 아우성을 쏟아낼 태세다.

깃발을 들어올린 자들이여! 깃발의 한 면은 푯대에 묶여야만 하고, 다른 쪽은 풀려있어야만 한다. 상반된 입장의 한 묶음이야말로 깃발의 숙명이자 철학이다. 반대편에 있는 면을 향해 무지막지한 비난을 쏟아낼 일이 결코 아니다.

깃발은 '소리없는' 아우성이고, 그래야 한다.

(한반도 기는 남북 동시입장할 때와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을 땄을 때만 올라가고, 아리랑 음악이 나온다. 다른 모든 종목에서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따로 올라가고 각각의 국가가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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