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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을 봉사하며 4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교수 사회학박사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교수 사회학박사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9/09 08:01

1992년 봄에 모스코바개신교연합회에서 편지 한장이 벧엘출판사로 배달됐다.
편지 내용은 모스코바개신교 교인들이 한글-영어판 ‘오늘의 양식’을 받아보고 있는데 러시아어-영어판을 만들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를 묻는 편지였다. 벧엘출판사가 발행하는 ‘오늘의 양식’이 모스코바에까지 우송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너무 깜짝 놀랬다.

소련공산정권이 1991년 12월 26일 붕괴된지 1년 반 만이다. 나는 이 사실을 영어원본 Our Daily Bread를 발행하고 있는 Radio Bible Class 선교회측에 알렸다. 이 선교회의 요청으로 1992년 6월 첫 주일에 모스코바를 방문, 모스코바개신교연합회분들과 만나 벧엘출판사가 한글-영어판 ‘오늘의 양식’을 발행했을 때의 경험을 알려주며 의논을 했다. 그리고 내가 가져간 한영판 ‘오늘의 양식’을 그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러시아교인들이 한글은 읽지 못하지만 ‘오늘의 양식’을 통해서 성경공부와 영어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년 후 러시아어-영어판이 Radio Bible Class 도움으로 발행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모스코바의 일을 마치고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1992년 6월 말에 진행되고 있는 소련지하교회 교회지도자들의 선교대회에 참석했다. 이 선교대회는 소련 16개 공화국에서 60여년간 지하교회를 이끌어 온 교회 지도자와 교인 300여명, 그리고 미국 유럽 지역에서 선교사 목사 50여명이 자리를 같이 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그리고 발틱 3국(라트비아, 루티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에서 지하교회를 이끌던 분들의 간증은 장내를 눈물바다로 변화시켰다. 한국에서도 김의환 김명혁 목사 등 10여 명의 목사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이날 할례루야교회 담임 김상복 목사가 주제 설교를 맡았으며 40여 명으로 구성된 할례루야교회 여성합창단이 찬양을 하여 큰 환영을 받았다. 특히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가 함께 연합하여 다 함께 불렀던 찬송 ‘믿는 사람들은 군병같으니’가 끝난 후 모두 ‘아멘’으로 화답했던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지하교회 선교대회기간중 리가 시에 거주하고있는 고려인 3명이 우리를 찾아왔다. 이분들은 리가지역고려인회 임원들로 회장 의사인 최드미트리씨, 부회장 건축설계사 김씨, 총무 컴퓨터기술자 박씨였다.

300여 명의 고려인들이 라트비아에 살고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한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이곳 고려인들은 러시아 우즈백스턴지역에서 이주해 왔으며 3세 내지 4세로 한국말을 거의 알고 있지 못했으나 간단한 대화는 할 수 있었다.

김상복 목사, 모스코바한인선교사 피터 김 목사, 그리고 나는 최회장의 초청으로 그의 승용차를 타고 약 40분 동안 비포장 도로를 먼지속에 터덜거리며 달린 후 그의 집에 도착했다. 2층에 있는 그의 아파트는 부엌 거실 침실 등 3방 짜리로 딸 러시아인 부인 그리고 90이 가까운 노모 등 4식구가 살고있었다.

노모께서 정성드려 마련한 된장찌게 콩나물 시금치 뭍침 그리고 라트비아식 김치가 밥상에 올려졌다. 노모께서는 강한 함경도 사투리로 조선요리 솜씨 를 다 잊어버렸는데 제대로 맛이 날런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TV를 통해 한국 사람들을 본 후 남한에서 온 한국사람들을 평생 처음 직접 보는 이들은 너무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식사 후 다과가 나왔다. 그리고 돌아가며 식구 이야기들을 했다. 최씨는 우선 딸과 아내 자랑을 했다. 딸은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피아노 바이올린 등 음악에 뛰어났다고, 아내는 학교 선생으로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모스코바국립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리가에 직장이 되어 이곳으로 이사오게 되었다는 것. 식구들의 서투른 한국 말을 노모께서 일일이 통역을 했다. 마지막으로 노모 차례가 왔다.

노모가족은 원래 함경북도 희령에 살다가 일정시대에 러시아 땅 연해주로 이주,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고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1950년 6.25사변나던 해 스탈린의 쏘련정부가 연해주에 살고있는 수천명의 고려인들을 기차로 우즈배크스탄으로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는 것.

노모가족은 수백명의 고려인들과 함께 승객칸이 아닌 화물칸 기차에 실려 추운 겨울에 음식도 제대로 공급받지 않은 채 1주일 이상을 여행, 도중에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노모께서는 그 때 고려인들과 함께 기차안에서 불렀던 “조선아, 조선아, 너는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느냐”라는 애처러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노모는 죽기전에 크게 발전한 한국 땅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들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노모를 빼놓고는 모두 순순히 복음을 받아드렸다. 그런데 노모께서는 “죽으면 끝나는 것이지 무슨 다른 세상이 있느냐”라면서 완강히 거절했다. 김상목 목사가 쉬운 말로 차근차근히 예수님을 소개했다.

그리고 노모는 끝내 눈물로 예수를 영접했다. 피터 김 목사가 간절히 축도를 했다. 김상복 목사는 노모에게 한국에 한번 초청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해 할례루야교회는 최씨 가족을 비롯해서 고려인회 임원 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노모는 끝내 소원인 한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는 소식을 김상복 목사로부터 듣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지금도 그 때 만났던 고려인들과 최씨 가족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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